동시성 이론, 뭘까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어떤 책을 우연히 펼쳤는데, 바로 어제 친구와 나눈 대화와 똑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온 경험이 있는가?


혹은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마침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적은? 이런 일들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다음 한켠에 이상한 여운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동시성'(Synchronicity)이란 개념으로, 우리 삶에 의미 있게 다가오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1. 칼 융과 동시성


'동시성'은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우리가 겪는 어떤 우연한 사건들이 단순히 "확률적 일치"가 아니라, 의미 있는 연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관계가 아닌, "의미의 연관성"으로 설명되는 세계다. 융은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와의 교류 속에서 이 개념을 정립해 나갔다.


두 사람은 심리와 물리, 화학과 신비,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대화를 통해 인간 경험의 또 다른 층위를 탐색했다. 융에게 있어 동시성은 무의식이 외부 세계와 맞닿는 방식이었다.


2. 인과가 아닌 의미의 세계


전통적인 과학은 사건을 인과관계로 설명한다. A가 B를 일으킨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성은 다르다.


어떤 사건들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는 없지만, 그것들이 내면의 상황이나 정서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심리적 의미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이를 '동시성'이라고 느낀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꿈에서 나비를 보고 다음날 미술관에서 같은 이미지의 그림을 본다면, 과학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녀에게는 깊은 통찰이나 감정의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 융은 이를 "세계가 하나의 패턴으로 짜여 있다는 증거"로 보았다.


3. 동시성은 내면의 거울인가


동시성은 때로 우리에게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된다. 어떤 책, 어떤 만남, 어떤 풍경이 문득 나를 건드릴 때, 그것은 외부 세계가 우연히 내 내면을 비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융은 이것을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 그리고 세계의 깊은 구조가 연결된 결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우리 각자의 삶은 겉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깊은 차원에서는 서로 얽혀 있으며, 동시성은 그 얽힘의 흔적이 표면에 드러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4. 현대인의 삶과 동시성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 논리, 인과의 세계 속에 산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직관과 상징, 무의식의 언어로 움직이기도 한다.


특히 전환의 시기 -새로운 길을 선택하거나, 삶의 의미를 되묻는 순간들- 에 우리는 동시성 신호를 민감하게 감지하곤 한다.


어쩌면 동시성은 말한다. "삶은 단지 논리의 결과가 아니라, 깊은 대화와 상호 작용의 그물망 속에 있다"라고. 그것은 우주의 은밀한 속삭임, 혹은 무의식의 작은 반짝임일 수 있다.


5. 우연에 귀 기울이는 삶


동시성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 경험에서 얼마나 깊고 실제적인 울림을 주는지를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우연의 연못을 지나며, 그 속에서 의미의 돌멩이를 던진다.


삶은 때때로 퍼즐처럼 구성된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조각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로 맞춰질 때, 우리는 동시성의 신비를 체험한다. 어쩌면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당신에게도 그런 우연 하나가 다가온다면,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라, 그 안에 당신의 무의식, 그리고 삶의 깊은 흐름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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