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누적되면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누군가의 문 앞에 조용히 놓인 택배상자, 지하철에서 무심히 열린 자리,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더 챙겨주는 마음, 일상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작고 사소한 배려들.


그 배려가 단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되고, 쌓이고, 축적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한 도시 전체가, 아니 사회 전체가 "배려의 누적"을 가치로 삼는다면 어떨까? 이기심보다는 양보가, 비판보다는 이해가 먼저 작동하는 사회 말이다.


그 사회는 아마 겉보기에는 이전과 다르지 않아 보일 것이다. 도로 위의 차들도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고, 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여전히 붐빌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에는 분명 어떤 여유가 깃들고, 눈빛에는 경계 대신 신뢰가 자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배려가 누적된 사회"의 풍경이다.


배려는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배려는 그 특성상 티가 잘 나지 않는다. 배려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진다.


그래서 "배려가 쌓인 사회"란 곧, 조용히 잘 굴러가는 사회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따뜻하고,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힘이 흐르는 사회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릴 때는 배려를 "착한 행동" 정도로 배웠지만, 살아가면서 배려는 그저 착한 성품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성숙의 징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팀 프로젝트를 시킬 일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은 종종 갈등을 겪었다. "누가 일을 더 많이 했느냐" "누구는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냐" 하는 불만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처음엔 불만이 많던 팀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안정되고 협력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면 대개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불만도 있었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다 보니, 결국 같이 하게 되더라고요" 작은 양보가 반복되고, 사소한 배려가 쌓이자 협력의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배려는 한 번으로는 힘이 약하지만, 누적되면 분위기를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결국 문화를 바꾼다"는 사실을.


배려가 누적되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말의 톤이다. 같은 말을 해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표현이 부드러워진다.


다음은 행동이다. 상대의 입장을 미리 고려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행동의 방식이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변하는 것은 구조다. 배려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게 되고, 결국 사회는 그 기대를 반영해 제도와 규범을 재설계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의 진화이며, 배려가 이끄는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변화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경쟁적이고, 때로는 무례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배려는 약한 사람의 선택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배려란 상대를 위하기 전에 자신이 단단해야 가능한 태도다.


자신의 여유를 덜어내 타인에게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배려를 실천하게 된다. 그것은 "져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에 더 가깝다.


배려가 누적되면, 그 공간은 점점 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말한다.


"이곳은 공기가 다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런 공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나이 들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배려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미덕이 아니라 기술이다.


그 기술은 훈련으로 길러지고, 반복으로 다져지며, 결국은 인격으로 자리 잡는다. 세상은 아직 거칠고, 차갑고, 조급하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배려를 누적시켜 간다면, 언젠가는 그 온기가 사회의 기본값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변화는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결코 휘발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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