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은 무지하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일 때가 많다.
지적 수준이 높고 학력이 뛰어난 사람조차 사이비 종교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외 유명 사이비 종교 집단의 신도 가운데에는 의사, 교수, 변호사, 공무원, 엔지니어 등 고학력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사실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첫째, '지능'과 "비판적 사고력"은 다르다
우선, 똑똑하다는 것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르다. 높은 IQ나 학문적 성취는 분석력이나 기억력, 논리적 사고를 뜻할 수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자신의 믿음을 검증하거나 외부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의심하는 능력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이비 종교는 이 틈을 파고든다. 그들은 초반에 교리를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지적인 퍼즐"처럼 보이는 담론으로 접근한다.
은유와 상징, 과학과 종교를 교묘히 엮으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세상의 모순과 기존 종교의 한계에 실망한 지성인일수록 이러한 메시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둘째, 합리성은 믿음을 방어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
놀랍게도 지성인은 믿음을 포기하기보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데 지성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고 부른다.
즉, 어떤 신념을 먼저 정하고 나면, 그 신념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이비 교단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예언자가 있다"라고 주장하면, 지성인은 그 예언자의 말이 과학적 혹은 철학적으로 가능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논리를 구축해 간다.
오히려 자신의 지적 능력을 "신념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다.
셋째, 심리적 허기, 존재론적 갈증
지성인도 인간이다. 이 말은,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공허와 불안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은 많은 것을 알게 하지만, 동시에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는가?" "왜, 세상은 이렇게 불완전한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기존 종교나 세속 사회가 이 질문에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할 때, 사이비 종교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확신에 찬 해답을 제시한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있다." "이 집단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같은 말은 혼란 속에 있는 사람에게 큰 위안을 준다. 특히 실패, 상실, 중년의 위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 지적 능력과 무관하게 심리적으로 무장 해제되기 쉽다.
넷째, 엘리트 의식과 특별한 진리의 유혹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많은 사이비 종교가 자신들의 교리를 "선택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지적인 우월감을 자극한다.
"대중은 이 진리를 알 수 없어, 당신처럼 열린 사고와 고차원적 인식을 가진 사람만이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있지."
이러한 메시지는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이나 자의식이 강한 지성인에게 특히 강하게 작용한다. 엘리트 의식은 때때로 자신이 대중과 다르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틈을 사이비는 파고든다.
다섯째, 지식은 많지만, 관계는 빈약한 사람들
오늘날 전문직 종사자나 고학력자들 가운데에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좁거나 인간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바쁘고 고립된 생활,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의 부재는 내면의 허전함을 만든다. 이때 사이비 종교가 "가족과 같은 공동체"와 "절대적 소속감"을 제공하면, 그 매력은 매우 강력해진다.
똑똑한 사람도 결국, 정서적 지지와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을 우리는 잊기 쉽다.
* 사이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몇 가지 태도를 생각해 본다.
1. '지능'보다 '겸손한 회의'가 필요하다.
나는 틀릴 수 있다는 태도, 믿음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진정한 방패다.
2. 비판적 사고는 외부를 향한 칼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거울이다.
남의 논리를 해체하는 데만 비판적 사고를 쓰지 말고, 내 신념을 돌아보는 데에도 사용해야 한다.
3. 진리는 단순하지 않다.
모든 질문에 쉬운 답을 주는 체계는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 '확신'보다 '성찰'을 더 신뢰하라.
4.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맺어라.
외로운 사람은 더 쉽게 어떤 "의미 체계"에 포획된다. 정직한 대화와 온전한 관계가 최고의 면역력이다.
결론적으로, 똑똑하다는 건 지식이 많다는 뜻이지, 진리를 불멸할 능력이 반드시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그 지식이 오히려 자기 확신이라는 이름의 덫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머리'보다 '마음'이다.
겸손하고, 성찰하고, 의심하고, 질문할 줄 아는 태도 - 그것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사회를 사이비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