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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생, "악어의 눈물"

공정의 잣대는 누구에게나 같아야 한다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역사 속 인물들이 늘 흑백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이면에 약점이 숨어 있고, 추락한 자의 기억 속에도 교훈은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과거를 통해 오늘의 위선을 본다.


조선시대 선비 조말생의 이름 앞에 붙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조롱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조말생은 조선 초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외교관이었다. 외세에 당당히 맞서고, 왕권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던 강직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그는 또한 부패 혐의로 귀양을 간 인물이기도 하다.


정치적 음모였든 실제 비위였든, 그가 유배를 살았던 사실은 분명했다. 그 후 세종의 부름을 받아 복직했고, 다시 관직의 중책을 맡았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조말생의 아들이 '사헌부'에 들어가려 하자, 선비들이 들고일어났다. 사헌부는 당시 조선의 '감찰기구', 즉 권력자의 비리를 감시하고 탄핵하는 직책이었다.


그런데 부패 혐의로 귀양을 갖던 인물의 아들이 감찰 기관에 들어가려 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조말생은 이에 대해 "내 유배는 억울한 음해였다"는 식의 항변을 했다. 자신의 과거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포장하며, 마치 잘못은 없었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려 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사람들은 그의 해명을 향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조말생, 악어의 눈물"


그렇다면, 그 눈물은 정말 억울한 사람이 흘린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권력의 논리에 순응해 살아온 자가 다시 한번 그 논리를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순간, 가면처럼 쓰인 눈물이었을까?


이 이야기는 결코 먼 시대의 일화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권력자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공정한 시스템"을 피해 가고 "조용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위를 자식에게 전가하고, 과거의 잘못은 '음해'라고 치부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정의 자리로 자녀를 밀어 넣는다.


그런 행동이 반복될수록, 사회는 청렴의 가치를 잃고, 국민은 정의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결국 위선은 권력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갈아먹는 독이다.


공정은 말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 조말생이 진정으로 부당한 음해를 받았다면, 그는 오히려 아들의 진로에 있어 더 엄격했어야 한다.


"나는 의심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니 내 자식은 다른 누구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통과해야 한다." 만일, 이런 태도였다면, 조말생의 눈물은 조롱이 아니라, 존경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조말생'들과 마주하고 있다. 말로는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눈물 속에 어떤 계산이 숨겨져 있는지를 우리는 너무 자주 목격한다.


정치인이든, 고위 관료든, 사회 지도층이든, 진정한 개혁은 "내 자식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조말생의 눈물은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의 눈물은 진심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악어의 눈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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