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친구의 성공, 동료의 성과, 이웃의 넉넉한 삶을 보며 흔히 자극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동기 부여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교가 자극을 넘어 시기심으로 변질될 때다. 남의 잘됨이 곧 내 불행으로 느껴지고, 타인의 성취가 나의 실패처럼 여겨질 때, 마음은 서서히 병들기 시작한다.
시기심의 무서움은 조용히 번진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불편한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상대의 잘됨을 바라보며 "왜 나만 안될까?" 하는 피해의식으로 변한다.
결국은 타인을 끌어내려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위험한 심리에 갇히게 된다.
직장에서 동료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뒷말, 가까운 사이에서조차 나타나는 질투의 말 한마디는 관계를 갉아먹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불씨가 된다.
여기에 독선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독선은 자기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고 믿는 태도다.
다른 의견은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무조건 틀렸다고 단정한다.
작은 모임에서조차 독선적인 리더가 등장하면 분위기는 경직되고, 조직 전체가 침묵에 빠진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자가 독선에 빠질 때,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잃고 결국 한 방향으로만 굴러가다 큰 위험에 부딪히게 된다.
역사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수많은 비극이 지도자의 시기심과 독선에서 비롯되었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자리에는 독선적 권위가 자리 잡았고, 그 결과 공동체는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시기심이 남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면, 독선은 나 아닌 다른 길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감정은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마음, 가족의 성취를 두고도 은근히 비교하는 시선, 회의 자리에서 상대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반박부터 하는 태도, 사실 우리는 순간순간 시기심과 독선의 덫에 걸린다.
문제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익숙한 습관처럼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위험한 감정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성찰이다. 남의 성공을 부러움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내 삶의 자극과 배움으로 전환하는 태도, 내 생각이 옳을 수 있지만 동시에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 이 두 가지가 뿌리내릴 때, 시기심은 영감으로 바뀌고 독선은 열린 대화로 녹아든다.
시기심은 개인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독선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작은 질투가 증오로 번지지 않게, 작은 오만이 독선으로 굳어지지 않게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결국 건강한 공동체는 경쟁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성취를 기뻐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내 생각만이 답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남을 끌어내리는 눈길이 아니라, 함께 높아지려는 시선, 독선이 아닌 경청과 존중의 태도다.
시기심과 독선이 아닌 겸손과 공감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