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책임'과 '염치'

정치는 책임지는 용기

정치는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공적 행위이다. 그만큼 정치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과 내린 결정에 대해 국민 앞에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책임은 실종되고, 그 자리를 변명과 책임 전가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 실패가 분명해도 "나는 몰랐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사회적 혼란이 명백히 특정 세력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는데도 "상대 탓"으로 돌리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정치 풍토가 이어지는 한, 국민의 정치 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또한 '염치'의 영역이다. 염치란 단순히 체면을 차리는 수준이 아니다. 사회적 규범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타인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돌아보는 성찰의 힘이다.


정치인에게 염치란 곧 자기 절제의 덕목이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권은 종종 이 염치를 잃어버린 듯하다. 잘못을 지적받으면 겸허히 인정하기보다 "내로남불식" 궤변으로 넘어가고, 사과를 하더라도 진심보다는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국민은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정치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존경받는 정치인은 능력보다 먼저 책임과 염치를 앞세웠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희생 앞에 "책임은 내게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처칠은 전쟁의 실패가 드러나자 단호히 자리를 내놓았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부끄러운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권력자의 한계를 성찰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는 책임지는 용기"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남긴 울림은 화려한 업적보다도 국민 앞에 진솔하게 책임지고, 부끄러움 앞에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태도였다.


책임과 염치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책임 없는 권력은 독선으로 흐르고, 염치없는 권력은 뻔뻔함으로 굳어진다.


책임과 염치가 결합할 때 정치인은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고, 국민은 정치를 신뢰하게 된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정치인의 마음속에서 책임과 염치가 사라지면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정치가 바로 서려면, 각 정치인이 먼저 자기 내면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염치를 지키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권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모든 정치인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근본적 질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추석 떡값 명목으로 이번에도 425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웬만한 서민 한 달 월급보다 많다. 요즘 국회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나라 살리는 게 아니라 망치는 집단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급여도 챙기고 명절이라고 떡값까지 거액으로 챙겨간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진영 싸움에만 몰두한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돈 받아 들기 부끄러워야 하는 거 아닌가? "개혁, 개혁 떠들기 전에 제발 너희들 양심부터 개혁하라"는 국민의 외침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국민 피땀으로 세금 걷어 만들어진 돈, 더 이상 탐욕으로 축내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거창한 구호보다 국민 앞에서 책임지는 태도와 염치 있는 언행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정치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 미래 세대에게 당당히 물려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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