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바보" 고찰

생각하지 않는 선의는 누구를 돕는가

"나는 좋은 뜻으로 한 일이다"


이 말만큼 위험한 변명도 드물다. 선의는 언제나 무죄처럼 보이지만, 생각 없는 선의는 타인의 계산 속에서 가장 값싼 자원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유용한 바보의 정체다.


첫째, 누군가에는 '유용한' 이유


"유용한 바보"라는 표현은 흔히 "블라디미르 레닌"에게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의도는 단순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신념과 선의로 행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권력의 목적을 돕는다.


그들은 거짓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거짓을 더 그럴듯하게 전파한다.


이들의 가치는 순수성에 있다. 이해관계가 없기에 의심받지 않고, 계산이 없기에 신뢰를 얻는다. 그래서 선동자는 직접 나서지 않는다.


대신 선의의 얼굴을 빌린다. 메시지는 그 얼굴을 통해 퍼질 때 가장 멀리, 가장 깊이 도달한다.


둘째, 생각하지 않는 도덕


유용한 바보의 핵심 특징은 도덕적 확신과 인식의 빈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분명하다고 믿지만, 왜 옳은지, 그 결과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질문은 불편하고, 회의는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비판은 "나쁜 편"의 공격으로 규정된다.


이 순간 도덕은 판단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스스로는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전략을 윤리로 포장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선의가 멈추는 지점에서 사고도 멈춘다.


셋째, 군중 속의 안락함


유용한 바보가 되기 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소속의 안락함이다. 다수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분노를 공유하면 안전하다.


반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문제적 인물"이 된다.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편이 훨씬 쉽다.


이때 개인은 책임에서 벗어난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는 문장은 판단을 외주화 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그렇게 책임은 증발하고, 메시지만 남는다. 그 메시지를 누가 설계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넷째, 유용한 바보는 악인이 아니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유용한 바보는 대게 악인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 열의가 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악인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선의는 환영받는다. 비판의 면역을 획득한 선의는 가장 오래 지속되는 오염원이 된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검증의 부재다. 의도가 아무리 순수해도, 결과가 해롭다면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몰랐다"는 말은 무죄의 증거가 아니라, 사고를 멈췄다는 증거일 뿐이다.


다섯째, 벗어나는 방법: 질문의 윤리


유용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식이 아니다. 단 세 가지 질문이면 충분하다.


1) 이 주장은 누가 이익을 보는가?

2) 반대 근거를 공정하게 검토했는가?

3) 내가 분노하거나 감동한 이유가 사실인지 서사인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도덕의 소비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판단자가 된다.


질문은 불편하지만, 불편함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유용한' 존재가 된다.


여섯째, 선의의 의무


선의에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가 따른다. 그 의무란 생각하는 것이다.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멈추는 것이다.


정의의 편에 서고 싶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일을 대신해 주고 있는가?"


유용한 바보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포기할 때, 우리는 잠시 편해지고 오래 이용당한다.


선의가 진짜로 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끝까지 놓지 않는 사고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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