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먼로주의'

고립이 아니라 재편이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외교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먼로주의"다.


일각에서는 이를 19세기식 고립주의 부활로 해석하지만, 트럼프가 호출하는 먼로주의는 과거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이는 미국 패권 전략의 축소가 아니라 재배치에 가깝다.


첫째, 먼로주의란 무엇이었는가?


먼로주의는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천명한 외교 원칙이다. 핵심은 단순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 개입하지 말고, 미국 역시 유럽의 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상호 불개입 선언이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신생 공화국 미국이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어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먼로주의는 시간이 흐르며 변질되었다. 20세기 들어 미국은 이를 근거로 중남미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했고, "아메리카의 문제는 미국의 문제"라는 패권 논리로 확장시켰다. 즉 먼로주의는 고립이 아니라 지역 패권 선언으로 진화해 왔다.


둘째, 트럼프가 말하는 '먼로주의'


트럼프가 말하는 먼로주의는 이 역사적 맥락을 선택적으로 차용한다. 그의 외교 노선은 흔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요약되지만, 이는 미국이 세계에서 물러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미국의 개입 비용 대비 효용을 철저히 따지는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 했다.


트럼프식 먼로주의 핵심은 다음 3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의 "무조건적 보증자"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2) 미국의 직접적 국익과 무관한 분쟁에는 개입을 최소화한다.


3) 대신 경제•군사적 압박 수단을 활용해 상대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이는 국제주의의 후퇴라기보다는, 선별적 개입 전략이다.


셋째, 고립주의라는 오해


트럼프의 먼로주의를 고립주의로 보는 시각은 절반만 맞다. 그는 다자주의와 국제기구를 불신했고, 자유무역 질서에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관세, 제재, 군사력 시위 등 미국이 가진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고립주의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동아시아, 중동,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가치와 규범"을 앞세우던 기존 외교 대신, 거래와 압박이라는 언어를 선택했다.


넷째, 국제 질서에 남긴 파장


트럼프식 먼로주의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불확실성이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재검토하게 되었고, 경쟁국들은 미국의 개입 의지를 시험하게 되었다.


이는 단기적으로 미국의 부담을 줄였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국제 질서의 예측 가능성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이 불확실성은 이미 시작된 변화의 징후이기도 하다. 미국이 모든 지역에서 모든 문제를 떠안을 수 없는 시대, 먼로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21세기형 패권 조정의 은유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다섯째, 한국에 주는 함의


한국에게 트럼프의 먼로주의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동맹의 가치가 "당연한 전제"가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되는 순간, 외교와 안보는 훨씬 더 냉정한 계산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미국이 어디까지 관여하고, 어디서 손을 떼려 하는지 읽어내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트럼프의 먼로주의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이상에서 거래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문제는 그 변화가 끝났는지가 아니라,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전격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우면서 먼로주의 용어가 다시 급부상하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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