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딩 증후군' 고찰

미끄러지는 삶의 감각

요즘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냥 조금씩 밀려났다"라고 말한다. 직장에서, 관계에서, 삶의 중심에서.


이 미묘한 퇴행의 감각을 우리는 이제 "슬라이딩 증후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슬라이딩 증후군은 한 번의 큰 실패로 무너지는 상태가 아니다. 해고 통보나 파산처럼 극적인 사건도 없다. 대신 조금씩, 서서히, 눈치채기 어렵게 미끄러진다.


직함은 그대로인데 역할은 줄어들고, 관계는 유지되기만 기대는 사라지며, 삶은 이어지지만 "나의 자리"는 옅어진다.


문제는 이 미끄러짐이 외부보다 내면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체념, "괜히 나섰다가 민폐 되지 않을까?"라는 자기 검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잖아"라는 조용한 자백, 슬라이딩 증후군은 이렇게 자존심뿐만 아니라 '존재감'까지 갉아먹는다.


이 현상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다. 끊임없이 성과를 갱신하라고 요구하는 사회, 속도에서 밀리면 바로 '구형'이 되는 구조, 쓸모를 숫자로만 판단하는 시스템 속에서 많은 이들이 의도치 않게 미끄러지고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라 불렀다. 모든 것이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안정은 예의가 되고 불안이 기본값이 된 시대.


슬라이딩 증후군은 바로 이 액체 사회가 개인에게 남긴 가장 일상적이고 조용한 상처다. 특히 중년 이후의 세대에게 이 증후군은 더욱 선명하다.


아직 현역이지만 중심은 아니고, 경험은 많지만 결정권은 줄어들며, 젊은 세대와 비교당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낮춘다.


문제는 이 "자발적 후퇴"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착각으로 굳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슬라이딩이 반드시 추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미끄러진다는 것은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뜻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조절하고, 새로운 지면을 찾을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사람을 단선적인 성과 곡선으로만 평가하지 않는 것, "지금 무엇을 해내는가?"뿐 아니라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가?"를 함께 존중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조용히 삭제하지 않는 용기다. 슬라이딩 증후군의 가장 큰 위험은 미끄러지는 중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이게 내 자리겠지"라고 체념해 버리는 것이다.


삶이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들 때, 그 감각을 문제 삼는 순간부터 미끄러짐은 멈출 수 있다.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너무 오래, 조용히 밀려났을 뿐이다. 그리고 밀려났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다시 중심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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