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노새' 신세 일까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요즘 중년의 아버지들을 바라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 앞에서는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요구받고, 뒤에서는 "이제 그만 쉬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듣는다.


회사에서는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의 자리에서는 조용히 밀려난다. 가정에서도 자녀는 독립했고, 부모 부양의 부담은 남아 있다.


이쯤 되면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존재일까?"


이 질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비유가 있다. 바로 '노새'다. 노새는 말과 당나귀의 장점을 모아 태어났지만, 역설적으로 번식 능력은 없다.


힘은 세고 성실하지만, 혈통도 미래도 없다. 쓰임은 분명하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요즘 아버지들의 처지가 꼭 그렇다.


말처럼 속도를 요구받고, 당나귀처럼 묵묵히 짐을 지길 기대받는다. 그러나 "아버지 다움"은 더 이상 존경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꼰대'라는 말로 쉽게 치환된다.


권위는 사라졌지만 책임은 남아 있고, 역할은 줄었지만 부담은 줄지 않았다. 사회는 이들을 "노련한 인력"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비용과 효율의 계산표 위에 올려놓는다.


이 상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했고, 세대 간 가치와 기술의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커졌다.


아버지 세대가 평생을 바쳐 익힌 방식은 어느새 '구식'이 되었고, 경험은 데이터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회사에서는 후배들을 책임지라 하고, 가정에서는 마지막 안전망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사상가가 있다. 2,300여 년 전 중국의 사상가 '장자'다. 장자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오래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휘어지고 뒤틀린 나무는 재목으로 쓰이지 않아 베이지 않고, 그래서 끝까지 그 자리에 남는다. 반대로 반듯하고 쓸모 있어 보이는 나무는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


오늘의 아버지가 어떤가? 너무 쓸모 있었기에, 너무 성실했기에,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모두 수행해 왔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와서는 그 '쓸모'가 애매해졌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노새처럼 느낀다. 그러나 노새의 문제는 노새 자신에게 있지 않다.


노새를 그렇게 만든 구조에 있다. 아버지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역할 중심으로 인간을 평가해 온 사회의 한계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 묻고, "어떤 존재인가?"는 묻지 않았던 사회 말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미 충분히 해낸 사람인가?" 아버지가 노새처럼 느껴지는 순간, 사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의 무게와 통찰이 있다.


그것은 보고서로 환산되지 않고, KPI로 측정되지 않으며, 회의실에서도 박수받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조직을 붙잡고, 가정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힘은 대부분 이런 축적된 시간에서 나온다.


노새 신세라는 자조에는 두 가지 감정이 섞여 있다. 하나는 억울함이고, 다른 하나는 쓸쓸함이다.


사회가 이 감정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더 큰 공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경험이 단절되고, 세대 간 이해가 끊기며, 중간 허리가 사라진 사회는 생각보다 취약하다.


아버지를 다시 '주인공'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노새로만 보지 말자는 것이다.


짐을 지는 존재가 아니라, 길을 알고 방향을 아는 존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어디가 위험한지 알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요즘 아버지들이 스스로를 노새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해 왔다는 증거다.


이제 사회가 할 일은 그들에게 또 다른 짐을 얹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일일지 모른다.


노새는 말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역할을 한 결과로 그 자리에서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는, 앞만 보고 달리는 말이 아니라, 묵묵히 길을 지켜온 노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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