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즐거움" 이란

살며 생각하며

우리는 흔히 즐거움을 "내가 느끼는 기분"으로 정의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때 느끼는 만족감.


이처럼 즐거움은 철저히 주관적인 감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모든 즐거움은 같은 무게를 가질까? 잠깐의 쾌락과 오래 남는 충만감은 같은 말로 불릴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떠오르는 개념이 바로 "객관적 즐거움"이다. 객관적 즐거움이란 단순히 "느껴지는 기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즐거움이다.


그것은 순간의 자극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삶의 밀도를 높여주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을 쾌락이 아닌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에서 찾았다. 이는 잘 사는 삶, 즉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즐거움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덕에 따른 활동에서 오는 기쁨만이 참된 즐거움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가 인간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가가 즐거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 '존 스튜어트 밀' 역시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모든 쾌락이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며 "질적으로 높은 즐거움"과 "낮은 즐거움"을 구분했다.


단순한 감각적 쾌락보다 사유하고, 공감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가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하루 종일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느끼는 재미와, 어렵지만 의미 있는 글을 읽고 사유하며 얻는 만족은 같은 즐거움이라 부를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즐거움을 지나치게 즉각적이고 소비적인 방식으로 정의한다. 알고리즘은 빠른 웃음과 분노, 자극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 순간은 즐겁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공허함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주관적 즐거움일 수는 있어도, 객관적 즐거움이라 부르기가 어렵다.


객관적 즐거움은 대체로 불편함을 동반한다. 배우는 과정은 어렵고, 관계를 돌보는 일은 에너지를 요구하며, 책임을 지는 선택은 자유를 제한한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삶은 단단해진다. 즐거움이 "지나간 기분"이 아니라 "남는 의미"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객관적 즐거움은 질문을 요구한다.


1) 이 즐거움은 나를 성장시키는가?

2) 이 기쁨은 타인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가?

3) 이 만족은 시간이 지나도 후회가 아닌 감사로 남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 "재미있다"는 말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나를 진짜로 기쁘게 하는지, 그리고 그 기쁨이 삶 전체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물어야 한다. 즐거움을 선택하는 기준이 곧 삶의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객관적 즐거움이란, 기분이 아니라 삶을 기준으로 한 즐거움이다. 그것은 즉각적이지 않지만 오래가고, 화려하지 않지만 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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