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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과 아내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우리가 자동차 시동을 켜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아마 내비게이션 작동이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인지 내비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괜히 마음이 편하고 든든하다.


그 후부터는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그냥 운전하기만 하면 된다. 내비가 알아서 척척박사가 돼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비에 길들여지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내비가 고장이라도 나는 경우에는 정신이 혼돈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내비가 운전자를 길치로 만들어서 생긴 업보 다름 아니다. 감내해야 한다.


휴대폰에 길들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많게는 백 여개 씩 암기했던 지인들 연락처를 요즘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휴대폰이 다운되는 경우에는 전전긍긍하게 된다. 휴대폰에 기대고 살고 있어 겪어야 하는 편리함과 불편함의 증명 다름 아니다.


아내도 비슷한 경우라고 하면 지나친 걸까? 나름 열심히 해놓은 설거지, 청소 상태를 놓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 "괜히 했나?" 후회가 된다. 그러면서 또 하게 되는 사내들의 '삶'


퇴근해서 귀가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잔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잔소리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마치 하루 종일 잔소리 거리를 준비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이런 저런 잔소리에 길들여진 소위 "집에서의 피동적 삶"을 살다 보면 아내 없이 독립적 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생겨난 신조어가 "내비게이션과 아내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비가 간혹 엉뚱하게 길 안내하는 경우에는 투덜대기라도 하지만, 아내의 경우는 천만의 말씀이다.


"뭐 뀐 놈이 성질낸다" 말을 실감하게 하지 않나 싶다.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이 용어를 가슴에 안고 새벽 운동 마치고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연다. 곧 듣게 될 잔소리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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