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Mar 11. 2022
위기십결에는 '버리라'는 사자성어가 셋이나 있다. '기자 쟁선' '사소취대' '봉위수기'가 그것이다. '버림'을 이토록 강조하는 건 끊임없이 비우고 새롭게 채우기를 반복하는 자연의 섭리 때문 아닐까 싶다.
춘추시대에 사업으로 큰 부를 쌓아 천하에 이름을 드높인 '범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 가서 살인죄를 짓고 그만 옥에 갇혔다.
"살인을 했으니 죽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며 범려는 "마차에 황금을 가득 싣고 가서 형을 구해오라" 막내한테 지시한다.
그러자 큰 아들이 나섰다. 장자인 자기를 두고 막내를 보내는 것에 항의하면서 이것은 필시 아버지가 자신을 어리석게 여긴 거라 항변하면서 목숨을 끊겠다고 한다.
"막내가 간다고 둘째를 살린다는 보장도 없는데 믿음직한 큰 애를 보내라"고 옆에 있던 아내가 거들자 범려는 꺼림칙했지만 큰 아들을 보내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인 '장생'에게 편지 한 통을 써서 큰아들에게 건네며 "초나라에 가면 장생에게 편지를 건네고 무조건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일렀다.
그런데 큰아들이 장생의 집에 도착해 보니 너무 초라해서 순간 "저런 사람이 무슨 힘으로 동생을 살릴 수 있단 말이지?" 의심이 들었지만 아버지 뜻대로 행했다.
편지를 읽은 장생이 큰아들에게 "자네는 어서 이 나라를 떠나게. 그리고 동생이 풀려나온다해도 절대 그 연유를 묻지 말게" 주문한다.
장생은 형편이 곤궁했지만 성품이 곧고 청렴한 사람이며, 초나라 왕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튿날 장생이 조정에 나가 왕에게 아뢴다.
"폐하, 하늘의 별이 움직이는 게 심상치 않습니다. 필시 이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입니다" 그러자 왕이 "그렇다면,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장생이 "사면령을 내려 온 나라에 덕을 베푸는 것이 최선"이라 아뢴다. 한편, 장생을 신뢰하지 않던 큰아들은 초나라 귀족을 상대로 물밑작업을 하던 중 곧 사면령이 내려질 거라는 소문을 듣게 된다.
내일이면 동생이 석방된다. "그렇다면 쓸데없이 장생에게 황금만 갖다 바친 꼴이 되겠군" 하면서 장생에게 급하게 달려갔다.
그러자 장생이 "여태 떠나지 않고 뭘 하고 있었나?" 묻자 핑계를 대며 "내일 사면령이 내려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하자 장생은 순간 장남의 의중을 간파했다.
그리고는 장생이 받았던 황금을 내주자 큰아들은 재빠르게 이를 챙겨 떠나 버렸다. 이에 치욕을 느낀 장생은 즉시 초나라 왕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범려의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혔는데 그의 큰아들이 돈을 뿌려대며 대신들을 매수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면령은 범려의 책략으로 대신들이 왕을 움직여 사면을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라고 아뢴다.
이 소리를 들은 초나라 왕이 크게 분노하며 범려 아들의 목을 치라 명하고, 큰아들은 죽은 아우의 시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본 가족 들은 대성통곡한다.
하지만 범려만은 의외로 태연했다. "내 정녕 아우를 죽게 할 줄 알았다. 너는 젊어 나와 동고동락하며 재물의 귀함을 잘 알고 있다. 네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그 돈이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막내는 돈을 쓸 줄만 알지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모른다. 해서 돈에 미련이 없는 막내를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모두 내 잘못으로 어쩔 수가 없구나!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위기 상황일수록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생각해 봤으면 싶다.
"위기에 처하면 버리라"는 뜻으로 '봉위수기'는 바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격언 한 토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