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 vs '수다'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많은 사람이 "구라와 수다"라는 단어를 가깝게 하면서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말이 많으면 수다쟁이, 공갈이 심하면 구라쟁이라 부르면서 말이다


사전에서 '구라'는 거짓말이나 가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을 의미하고, '수다'는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구라를 찾는다면 아마 작가 황석영, 재야 운동가 백기완, 경복궁 수문장을 지낸 전설의 주먹왕 방동규 씨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자리를 넘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어령, 김용옥, 유홍준 씨가 바로 그들이라고 한다. 이 사람들을 흔히 '교육방송용 구라쟁이'로 표기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구라쟁이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설교나 웅변조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매우 재미있는 얘기 하듯 대화 형식의 화법을 쓴다.


둘째. 대화 소재가 단순한 신변잡기에서 비롯되더라도 동서양의 고전을 아우르는 박학다식을 기반으로 감동을 준다.


셋째. "10초 이상의 침묵은 방송사고"로 간주하리만치 어색한 침묵을 용납하지 않는 다변가이다.


달변과 다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그들의 구라에는 언제나 재미와 감동이 있다. 특히 그들은 자신이 학습한 정보의 총량을 적절히 배합하는 탁월한 기술로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


무엇보다 대중이 원하는 점을 신속하게 파악해서 OEM 공법의 새로운 상품으로 재생산해낼 줄 아는 특출한 능력의 소유자로 좌중을 압도하는 리더십을 갖고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말 잘하는 것과 말이 많은 것은 별개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라쟁이한테는 배울 것이 있지만 수다쟁이를 만나면 많이 피곤해진다.


왜냐하면, 수다쟁이의 특징이 상대의 반응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의 관심사나 인지능력, 공감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줄기차게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는다.


게다가 상대의 발언을 끊기 일쑤이며 상대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이런 부류를 TMT(Too Much Talker)라 부르며, 자기애가 강한 속성을 갖고 있다.


타인이 궁금해하지 않는 내용조차도 굳이 자신이 먼저 나서서 필요 이상의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정치와 시사 등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고 편협하게 반응하며, 편향에 찬 자신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수다쟁이의 특징은 '삼사일언' 하듯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을 하면서 다른 줄거리를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주제에 일관성이 없고 언어가 종과 횡을 넘나들어 지나친 장광설을 나열하기 일쑤이다.


구라와 수다를 변별해 본다면 구라쟁이의 달변은 배울 것이 있는 유쾌한 일로 여길 수 있지만 수다쟁이의 다변은 분위기를 깨는 낭패, 민폐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필자가 모 국립대학교 졸업식 행사 후 (문화재청장, 총장, 기성회장)이 오찬 하면서 담소 중에 "유 구라라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물었더니 호탕하게 웃던 유 청장 모습이 문득 회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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