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오십 고개를 넘다
빨리 도는 시계추 ──
우리는 나이 60을 ‘이순’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귀가 순해진다’라는 비유의 표현으로 나이 60이 되면 누가 나한테 욕을 해도 화가 나는 게 없어야 하고, 이해 않되는 것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삼라만상 우주 만물의 조화까지도 다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나이 값을 해야 한다”라는 의미 다름 아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양한 요소에 기인한다고 본다. 어르신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얼마 안있어 언제 점심 먹냐? 묻는 게 이상하게 들리던 것이,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이해가 간다. 그래서 세월이 가는 속도가 자신의 나이와 비례한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은 상대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인 인식이라고 본다. 실제로는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지만,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는 경험과 기억의 양 때문이다. 어린 시절은 많은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쌓게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과 기억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일상적인 활동들이 더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루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둘째는 지각된 비율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은 주어진 시간에 대한 경험적 비율에 따라 변한다. 어린이의 경우, 한 해가 전체 생애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한 해가 전체 생애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차지하게 되므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게 된다.
셋째는 주목의 집중 때문이다. 어릴 때는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한 환경과 기술을 사용하는 데 더 적은 주의가 필요하므로, 주목의 집중이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시간이 더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사유들로 인해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변하지 않으며, 이것이 주관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은 불변의 진리다. 나이가 들면 점점 경험이 쌓이고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일상적인 활동이 반복되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이에 따라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또한, 더 많은 경험과 기억이 쌓여서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더욱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개인의 우선순위와 목표가 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과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거나 건강과 안녕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고, 시간의 한계성을 더욱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인간은 존재의 한계성과 죽음의 불가피함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시간의 소중함과 유한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며, 삶의 목표를 달성하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사회적인 압박과 예측 불확실성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의 빠른 흐름을 더욱 강조할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가족적인 책임과 압박은 시간에 대한 더 큰 부담을 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요소들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흐른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는 인간의 한정된 시간을 더욱 귀중하게 생각하고, 삶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려는 동기와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고독과 친구처럼 ──
고독은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것과 같은 차단이 되어 있거나 고립되어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고독은 상황에 따라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둘 다 있다고 본다. 특히 단기적 고독은 방해받지 않고 일하거나 생각하거나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하므로 친구처럼 지내면 어떨까 생각되며, 고독은 사생활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장기적 고독은 관계 파괴,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숙고가 필요한 선택, 전염병, 정신질환, 일주기 율동 수면장애, 고용환경 및 상황 환경 등으로부터 유래하기도 하므로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고독과 외로움이 각각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고통을 의미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어떤 일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본다.
TV ‘자연인’을 시청하다 보면 그 사람들의 하루 일상이 거의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데 그들은 한결같이 환한 미소를 띠면서 일상을 소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송인 걸 감안하더라도 혼자서 꽤 유쾌하게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연인 흉내 내겠다는 50, 60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보도마저 있다. 어떤 삶인들 그 안 깊숙이 들여다보면 불편한 점이 꽤 있겠지만 자연인의 삶을 동경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싶다. 자연인이 반드시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면서 고독을 벗 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행복 중 하나 아닐까 싶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 혼자가 된다. 그래서 혼자 여행도 하고 혼자 노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혼자 있는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하여 고독과 친구처럼 지내는 방법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외로움을 덜 느끼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을 참고한다.
첫 번째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해보는 것이다. 내면의 감정과 생각을 탐색하고, 자신과의 소통을 통해 내면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일기를 쓰는 것이나 명상, 명상 또는 글을 쓰는 등의 방법을 통해 내면을 조명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식 중 하나라고 본다.
두 번째는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의 취미와 관심사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 읽기, 그림 그리기, 음악 감상, 요리, 정원 가꾸기, 운동 등 자신이 즐기는 활동에 시간을 투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를 통해 자기계발과 창의성을 향상할 수 있으며, 보람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는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역 사회 센터나 다양한 동호회에 가입하여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울러,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역 사회의 이벤트에 참여하여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다. 인터넷은 혼자 있는 시간에 사회적 연결성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관심사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토론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즐길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과 친구를 만들 수도 있다.
다섯 번째는 자연과의 교감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은 고독과 친구처럼 지내기에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산책이나 하이킹을 통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져본다. 자연은 우리에게 평온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힐링 요소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사색하며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 아닐까 싶다. 필자는 틈이 날 때마다 팔당 예봉산 자락에 만들어 놓은 조그만 오두막을 찾아 색소폰 연주를 하고 밭도 가꾸고 산책도 하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가치 있게 여기고 활용한다면 외로움을 덜 느끼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자신을 내려놓아야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네빌 고다드’는 자신의 욕심과 지혜를 내려놓아야 자연과 가까워지며 “우리의 상상이 자연스럽게 펼쳐질 때 현실이 된다”고 주장한다. 자존심과 열등감에 가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원하는 것이 있어도 나는 안될 거라는 자진 포기로는 시작도 하지 못한다.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고 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진정 원하는 것을 상상할 때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피터 셍게’는 저서 <미래, 살아있는 시스템>을 통해 경제도 바닥을 끝까지 내려가 봐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바닥으로 내려가 봐야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절망에 자살까지 생각하고 죽으려고 하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여 성공했다는 성공스토리를 많이 들어왔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숨 쉬는 것조차 행복이 된다는 뜻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자아와 정체성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아와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경험, 가치관, 역할, 목표 등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아와 정체성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정체감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고정된 사고와 행동 패턴을 형성하여 성장과 발전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첫째,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이러한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묶음을 풀어주는 것이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완화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세상과의 상호 작용에 더 열려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신을 내려놓고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믿음 체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본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창의성과 혁신을 통해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해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종종 자아와 정체성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한다면, 좀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넷째,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성장과 학습을 위한 기회를 열어준다. 우리가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에 도전한다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인지적, 감정적, 심리적 성장에 도움을 주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겸손하고 자아를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자존감을 높이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섯째,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개인적인 성장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통해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갖게 되며, 새로운 경험과 관계, 그리고 성장의 기회를 열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겠다고 하면서‘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어낸 용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소확행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 즉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적게 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젊은 층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소확성’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 경험 또는 성실한 수행’이라고 정의하면서, 작은 성취 경험이 쌓이고 땀과 열정을 담은 성실한 수행은 개인에게 나타난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내공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생각이 습관화되면 사람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자리, 생활, 가정, 인간관계 등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 삶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감, 즉 요즘 세태에 맞는 트렌디한 단어가 바로‘소확행’ 아닐까 싶다. 내리는 커피 향을 맡으며 –잠시 멍 때리면서- 홀로 행복감을 느껴 보거나, 또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서 책을 읽거나, 드라마 시청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 또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장을 찾아보면 어떨까? 이렇게 각자만의 소확행 거리는 주변에 항상 널려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 혼자 편하게 누리는 소소한 행복감,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삶은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가끔은 집시맨 처럼 전국 투어도 해보고, 또 때로는 장봉도를 찾아 옹암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도 내보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형편은 어떤가? ‘최저임금’ 문제로 자영업자는 폐업을 한다느니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임금으로 오히려 일자리가 더 없게 됐다느니 하면서 폭염 보다 더 힘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등심은 차치하고 소소하게 돼지 껍데기라도 먹으면서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따라서 이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손에 무엇인가를 한 움큼 쥐고서 또 다른 것을 쥘 수 없듯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쥐고 싶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많은 욕심 꾸러미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행복이라는 소중한 보따리를 쥘 수 있다고 본다.
과거는 잊어야 한다 ──
정신과 의사들은 강조하고 있다.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과거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지나간 일인데 마치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앞에 어떤 행운이 지나가는가, 어떤 즐거움이 지나가는가 등 전혀 앞을 볼 수가 없게 된다. 반면에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다가올 것을 가상해서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만일 그게 온다면” 그것을 전제로 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니까 얼마나 고민스럽겠는가? 지적하면서 “지난 일에 대해서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면서 이 두 가지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법륜’ 스님은 ‘희망편지’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것이든,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직 이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며 여기서부터 우리의 미래가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한편, 과거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과거에 얽매여 고통을 받는 것은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일상적 현상이다. 그렇다고 과거를 잊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삶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사건과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 따라서 과거에 얽매여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의미한 과거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는 우리가 배운 교훈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잘못된 선택이나 실패로부터 배우고, 앞으로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지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과거에 집착하고 고통에 사로잡힌다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을 갖게 된다. 집착과 후회는 우리의 마음과 에너지를 과거에 묶어놓고, 현재의 가능성과 행동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잊는 것은 우리에게 성장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연다.
과거를 잊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핵심이라고 본다. 현재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최대한 살아가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또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는 우리가 가진 가능성과 목표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다.
과거를 잊는다는 게 고통스럽고 많이 힘들 수는 있지만,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필요한 단계이다. 그래야 우리가 과거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여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노인의 도시 ──
우리나라 고령 인구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고 한다. 2050년이 되면 세계 2위 고령 인구 국가로 등극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보도가 있다. 아울러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노인을 위한 국가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노후 대비는 나 자신의 몫”이라는 영화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추세이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고령화 경향이 서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도시 중심의 경제 발전이다. 서울은 한국의 경제 중심지로서 일자리와 경제 활동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오는 젊은 세대의 유입이 많고, 도시의 발전으로 인해 여러 편의 시설과 서비스가 집중되어 있다. 이로 인해 노인들도 이러한 편의 시설과 서비스에 접근하기 쉽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가족 구조의 변화이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인 3세대가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 형태가 핵가족으로 또는 1인 가구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가치 변화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노인들도 독립적으로 생활하거나 부부 둘만이 생활하는 세대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아울러,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서울에서 노인들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첫째, 거주 환경의 개선이다. 고령자들을 위한 적합한 주거 시설을 확보하고, 주거 환경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 친화적인 주거 시설과 공동체 생활을 지원하는 주거 형태를 유도하는 정책이나 지원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복지 서비스 강화이다. 노인들의 건강과 복지를 지원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 관리, 의료 서비스, 문화 및 활동 지원, 심리적 지원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노인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노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자원봉사나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 및 재능 공유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등 사회 참여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교통 및 이동성을 지원해야 한다.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 시스템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도보 환경을 개선하는 등 이동성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다섯째, 사회 인식과 문화 변화이다. 노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사회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나이에 따른 차별 없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노인들의 기여와 가치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대중 매체를 통해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시행한다면 서울은 노인들에게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로 발전해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귀 둘, 입 한 개 ──
경청의 사전적 정의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 그 내면에 숨어 있는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하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경청 관련 연구소, 교육원 등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것은 경청이 생각하는 것 보다 많이 어렵다는 증거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입 1개, 귀 2개”라는 속담이 생겼을까 싶다.
경청을 가장 잘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 법정 스님이 아닐까 싶다. 스님은 상대방이 말할 때 자신의 몸을 기울여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대화가 끝나면 피로감에 휩싸였다는 후문이다. 경청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자식에게 물려 준 마지막 말이‘경청'이었다고 할까 싶다. 이건희 회장이 부회장이었던 시절 이병철 회장은 ‘경청’이라는 휘호를 직접 써서 아들에게 건넸다고 전해진다. 아마 리더의 덕목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를 강조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처럼 ‘경청과 목계’가 시대 흐름에 맞춘 삼성 변신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경청을 잘하기 위한 스킬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감을 준비한다.
- 대화를 시작할 때 먼저 내 마음속에 있는 판단과 선입견, 충고하고 싶은 생각들을 모두 비운다.
둘째, 상대를 인정한다.
-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인정한다.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해야 진정한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셋째, 말하기를 절제한다.
- 말을 배우는 데는 2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 걸린다고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앞서기 때문에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해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상대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넷째, 겸손하게 이해한다.
- 겸손하면 들을 수 있지만 교만하면 들을 수 없다고 한다. 상대가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해도 들어줄 줄 아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상대의 감정에 겸손하게 공감하며 듣는 사람을 '경청의 대가'라 부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고 자기를 존중해 주며 이해해 주는 것 아닐까 싶다.
다섯째, 온몸으로 응답한다.
-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게 아니다.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고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경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경청도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상대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누구든 나를 존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청이라는 게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전달받고 이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청은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된다. 누군가가 내 얘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준다면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얻게 되고 감정적 지지를 받는 느낌이 들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경청하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인간이 귀가 2개, 입이 1개인 것은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대방과의 대화는 상호적 소통의 과정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전달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두 귀를 가지고 있으므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상대방의 의도와 감정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보다 듣는 것은 새로운 정보와 관점을 습득하고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의 의견, 경험, 지식을 듣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강한 인간관계의 기반이 된다. 특히 듣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상대방에게 진정한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신뢰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상대방이 말하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좀 더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들으면서 이해하고 고려하는 자세를 갖는 것은 논쟁과 갈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대화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상호 간의 이해와 조화를 도모하여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귀가 2개이고 입이 1개인 것은 대화에서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듣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배우고 성장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갈등을 예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혀끝을 조심하라”하는 문구가 있다. 이것은 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라는 경고 아닐까 싶으며, 아래와 같은 다양한 교훈을 담고 있다.
첫째로, 말은 상당히 강력한 도구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을 너무 경솔하게 사용하면 다른 사람을 상처입힐 수 있고,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말하기 전에 말의 영향력과 결과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둘째로, 말하기 전에 여러 번 생각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말은 순간적으로 내뱉을 수 있지만, 그 말의 영향력은 오랜 시간 동안 남을 수 있다. 따라서 말하기 전에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말의 내용과 효과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여러 번 생각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린 뒤에야 비로소 말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혀는 우리가 말을 할 때 사용하는 주요한 기관 중 하나이며, 이 표현은 말하기 전에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자기표현을 적절하게 조절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혀끝을 조심하라”하는 말의 힘과 영향력을 인식하고, 말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기 통제력을 가지며 행동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건강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
법정 스님은 말씀하신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우리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법정 스님이 설법하신 이유와 의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변화의 자연법칙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말은 변화의 자연법칙을 강조하는 말이다.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고 노화하며, 모든 상황과 경험은 언젠가는 지나가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태도이다.
둘째, 일시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일시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재물, 지위, 명예, 인간관계 등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고 변할 수 있다. 이러한 일시적인 것들에 의존하거나 집착하는 것보다, 그것들을 감사하고 즐기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삶의 불안과 해방에 관한 내용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삶의 불안과 해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삶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화하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해 더욱 유연하고 견뎌낼 수 있는 자세를 갖출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넷째, 인생의 무상함과 순간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말은 인생의 무상함과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순간들도 모두 언젠가는 지나가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귀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인생을 경험하는 동안 더욱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내가 볼 때 단지 반추의 대상일 뿐이다. 한때 잘했던 공부가 또 지금까지 사회에서의 완장이 나이 먹은 지금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70세가 넘으면 세상에서의 지위 따위는 다 필요 없고 지금 음식을 잘 씹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것은 이처럼 우리가 현실적인 관점에서 변화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태도를 촉진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아파서 누워있으면 천만금이 내게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90세 노인의 인생 조언 ──
한 남성이 70세가 되고 나서 느낀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자 기자가 “70세가 되니 어떠신가요?”라며 노인에게 묻는다. 그러자 69세 때보다 1년 더 늙은 느낌이다. 그러자 “69세 때는 어땠는데요?”라며 다시 묻는다. 그러자 이번에도 “68살 때보다 1살 더 먹은 거죠”라고 대답한다. “나이 들수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떠세요?”라며 기자가 묻자, 남성은 “변한 거 없이 그대로인 거 같지만 사람들은 나를 완전히 다르게 볼 겁니다. 그러면서 특히 요즘에는 쓸모없는 것처럼 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더라도 나는 변한 것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볼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모래밭에 물이 스며드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어느새 물에 흠뻑 젖어있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감각이 무디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90년을 넘게 살고 있다고 하는 어느 분은 90년을 살아보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걸’하면서 “삶을 살다 보면 순탄하지 않다고 하면서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노인이 되면 마주하는 2가지 감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지나갔던 세월에 대한 아쉬움, 즐거움 등에 대한 느낌에 대한 감정,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 보다 남은 기간이 짧다는 데서 오는 불안한 감정이 있다고 한다. 만일 요양원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한테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첫 번째가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 즉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두 번째는 좀 풀면서 살고 싶다. 즉 정서적, 감정적으로 맺힘이 없이 살고 싶다. 세 번째는 나누고 살고 싶다.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90세의 노인이 100세가 넘은 김형석 교수처럼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후배들을 향해 조언하고 있다. 물론 삶을 회고하며 후배들에게 전하는 인생 조언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지침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 조언들이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고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을 주는 일부분이다. 자신의 장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개선하며 자기 존중감을 가져야 한다.
둘째,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삶을 채우고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자신의 열정과 관심사를 찾고, 그것들을 추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어떤 꿈이든지 이룰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과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셋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는 성장의 기회이다.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성공을 이루는 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실패할 때마다 얻는 교훈을 받아들이세요.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여정의 일부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인간관계를 강화하고 상호 작용을 향상하는 데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도와주고 지지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건강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건강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핵심 요소이다. 몸과 마음을 돌보며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해야 한다. 올바른 식단과 운동, 충분한 휴식과 잠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여섯째,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생명의 선물과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향하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감사의 태도는 우리의 정서적 안녕과 만족감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곱째, 결혼과 가족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결혼과 가족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야 한다. 가족은 우리의 지지체계이며 우리가 힘들 때 우리를 격려해 줄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이러한 인생 조언들은 90대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기반으로 한 내용으로, 후배들에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유용한 지침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각각의 인생은 개인에게 맞는 독특한 여정이며, 각자가 자신만의 지혜와 경험을 발견하고 배워야 가면 어떨까 싶다.
죽음은 어디서 ──
90세가 가까워지니 죽음의 불안이 찾아왔다면서 죽음은 나이에 무관하게 두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워있지 말고 일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의사 김현아 선생은 “병원에서는 죽음을 치료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병원에 오지 말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지 죽음의 모습만 바뀐다는 것이다. 2017년 데이터를 보면 한국인 100명 중 76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10년 만에 16%가 증가했는데 많은 사람에게 내가 어디서 죽는 게 가장 바람직한지 물었더니 임종 희망 장소로 가정 57.2%,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 19.5%, 병원 16.3%, 요양원 5.2%, 기타 1.8%이다. 즉 57.2% 이상이 집에서 사망하기 희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큰 문제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서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비율이 유난히 높다고 한다. 말기 암 환자 340여 명과 사별 가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병원이나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삶의 질이나 신체적 편안함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가정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간 애도 장애라는 것은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데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남겨진 다른 가족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애도 장애는 병원에서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집에서 사망하게 될 때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 임종을 희망하는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몇 가지 주요한 이유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자신의 집은 친숙하고 안전한 장소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임종하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대신 자신의 침대에 누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둘째, 가족과 가까이 있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자기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족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줄 수 있는 소중한 지지체가 될 뿐만 아니라, 함께 이별의 시간을 보내면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나누며 위로를 받게 된다.
셋째, 개인의 의지와 자율성이다. 자기 집에서 임종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자율성을 존중하는 선택이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는 제한된 환경과 규칙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서는 개인의 선호와 편안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개인의 가치관과 선호를 존중받는 환경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넷째, 특별한 추억을 갖게 한다. 자기 집에서 임종하면 그곳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나눈 대화, 이야기, 웃음소리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이러한 추억은 가족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뿐만 아니라,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다섯째, 개인적인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개인의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자기 집에서 임종을 희망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적인 신념이나 신앙은 임종을 어떻게 희망하는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신앙을 따르며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자기 집은 신앙 실천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위의 사유들은 물론 개인의 선택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한다. 따라서 각자가 자신의 상황과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결정은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 삶의 목표는 뭘까 ──
우리는 살면서 "내 삶의 목표는 뭘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은 행복한 건가? 그리고 향후 어떤 삶을 그려가려고 하는가?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점점 어지럽게 한다.
국어사전에서‘삶'을 검색하면 "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흔히 ‘삶의 괘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삶과 연관된 용어로는 삶의 의미, 인생, 삶의 질 등이 있다. 특히 삶의 의미는 주변과 트러블이 생길 때 혼자 소주잔 기울이면서 푸념할 때 등장하기도 한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하면서 ‘인생 별건가' 한잔 들이키세! 하면서 철학자들이 똥폼을 잡을 때 사용되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똥오줌 가리는 게 자랑거리, 3세 때는 이가 나는 게, 그리고 12세 때는 친구가 있다는 게, 18세 때는 운전할 수 있다는 게, 2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35세 때는 돈 많이 버는 게 자랑거리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오래 살게 되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고 한다. 즉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아 거꾸로 달리는 것 같다. 언급하면 “60세에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0세는 운전, 75세는 친구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85세 때는 똥오줌 가릴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너나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복잡한 여러 항로를 항해하면서 때로는 자랑도 하다가 죽음 직전에는 여지없이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한다.
삶의 괘적을 단순화하면 태어나면서 곧 죽음의 항해가 시작되지 않나 싶다. 결국 죽으면 먼지가 될 텐데 뭘 그리 전전긍긍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할 수도 있다. 그러다 생각이 깊어지면 속세를 떠나기도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런데 10대 때는 시간이 지나치게 느린 속도로 가는 것 같았는데, 60 고개를 넘기 무섭게 속도가 무척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공평하다고 하는 시간이 왜 달리 체감되는 걸까?
현자들은 말씀하신다.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일이 과연 있는가? 당신이 꿈꿔온 삶의 방식은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시오. 지금 하지 않으면, 대체 언제 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또 그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생의 25%는 자신을 찾는 데 쓰시오. 그리고 남은 75%는 자신을 만들어 가는 데 집중하시오” 왜냐하면, “나를 찾아내지 못하면, 또 나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립니다”라고 말이다.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마라. 성공에 초점을 맞추면 그것에서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이나 행복은 의도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그것이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성공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윗글은 100명이 넘는 현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대목이다. 또 현자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시오. 그리고 좋은 날을 하나씩 쌓아 좋은 인생을 만드시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조언하고 있다.
‘톰 피터스’는 저서 <리틀 빅 씽>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비즈니스 맨이라면 누구든 블루오션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최고의 자리'가 붐비지 않는 유일한 시장이기 때문이다”라고. 인생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다른 하나를 오랫동안 돌아다보게 된다. 우리는 흔히 원숭이를 이기려고만 한다. 하지만 원숭이를 이기려 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제어한다면 어떨까? 또 세상의 모든 직업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CEO로 일하는 직업과 CEO를 위해서 일하는 직업” 말이다. 특히 당신이 20, 30대라면 이 선택에 대해 시간을 들여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우리 삶에는 많은 선택이 있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길 권유한다. “지금 이 순간 더 어려운 선택은 무엇이고, 더 쉬운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숙명론자의 속삭임을 거부하시라. 만일 쉬운 선택을 집요하게 권하는 숙명론자가 이긴다면, 당신이 처한 상황은 악화되고 삶의 질도 추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간혹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은 이들은 왜 한번 중독되면 치유가 아주 힘들다는 험한 길을 자청해서 들어가는 걸까? 이들의 심리는 뭘까? 궁금하다. 파랑새를 찾겠다면서 먼 길을 나서 길을 헤매다 지쳐 ‘파랑새는 없다'라고 푸념하며 귀가하다 자기 집 처마 밑에서 짹짹거리는 파랑새를 발견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평생을 경쟁하면서 적극적인 선제공격을 통해 한발 앞서가는 방법을 연구한 ‘애덤 로빈슨'은 “타인의 중요성을 인정하면 세상이 바뀔 뿐 아니라 즐거워진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이 무거워지고 삶이 힘겨워질 때는 "매일 당신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8만 6,400초의 시간과 8만 6,400번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념과 목적이 뚜렷한 삶을 흔히 성공적인 삶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내 삶의 목표는 뭘까? 문득 이런 글귀가 떠오른다.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