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패튼'과 '이준석'

살며 생각하며

패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이크 비니어드'에서 1885년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스코틀랜드 계열로 대대로 군인이었으며, 조부는 남북 전쟁당시 남군 기병대 대령으로 활약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미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했며 동기생으로는 제이콥 데버스, 로버트 에이첼버거, 윌리암 후드 심슨 등 모두 2차 세계대전 당시 상급부대 지휘관으로서 활약한 인물들과 동시대 인물이다.


패트한테는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으며 욕설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소위 활화산 같은 성격의 사고뭉치 지휘관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롬멜과 비교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패튼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북아프리카, 시실리, 프랑스, 독일에서의 전투를 지휘한 미국 육군대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프랑스 북부에서 저돌적인 작전으로 하루에 10km를 진격하기도 한 기록을 갖고 있다.


패튼은 아이젠하워보다 일찍 부임하였지만 진급심사에서 그에게 밀렸고 또한 유럽 전선에서는 아이젠하위의 지휘를 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언급했듯이 그는 행동과 언행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강렬한 성격과 대담한 결정은 때로는 과도한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사용하는 특유의 언어는 동맹군과의 관계를 끊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과 비판들은 결국 그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더 나은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어쨌든 패튼의 불굴의 정신과 용기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리더십과 가치관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래서 그가 역사 속에서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각인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패튼이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독일을 매우 혐오했지만 종전 이후 모든 힘을 잃고 무력해진 독일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배려로 미국 워싱턴 정계와 자주 대립하기도 했다.


언급했듯이 조지 패튼은 철저한 군인이었다. 정치가로서의 면모도 가졌던 명장인 더글라스 맥아더와 달리 전쟁 이후 친나치적인 행보로 해임을 당하는 등 정치적인 부분은 지나치게 호전적이고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곧장 미군에서 해임을 당했다. 불굴의 전사로 불리던 패튼은 1945년 12월 9일 자동차 사고로 독일 하이델 베르크 병원에서 사망하게 된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막무가내로 나갔던 패튼의 행보 덕분에 어떤 호사가는 시대를 잘못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차라리 패튼이 19세기 프로이센의 기병 장군이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조지 패튼에 관한 전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모습이 겹쳐서 보이는 건 왜일까? 성향을 바꾸는 게 쉽지 않겠지만 반면교사 삼길 권고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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