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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가, 사마의

살며 생각하며

사마의(179년~251년)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대표적인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결국 삼국을 통일해서 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기다리는 인내의 미학"을 실천한 인고의 지략가, 사마의(사마중달)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마의 생애와 업적


1. 조조와의 시작

원래 학자로서 조조에게 등용되었으나, 조조는 그의 야심을 경계해 중요한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 하지만 조조 사후, 조비가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다.


2. 제갈량과의 대결

1) 제갈량과의 북벌 전투에서 승리

제갈량이 촉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지속적으로 위나라를 공격하자, 사마의는 수성 전략과 보급로 차단을 통해 제갈량의 군대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방어에 성공했다.


2) 빈 성 계책의 상대

제갈량이 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문을 열어두고 태연히 거문고를 타며 적을 유인하자, 사마의는 "제갈량이 이런 행동을 할 리 없다"라며 의심하여 철군했다.


특히, 제갈량 사후 촉나라로부터 위협이 줄어들자 위나라 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더욱 굳혔다.


3. 정변을 일으켜 실권 장악

당시 위나라의 실권은 조조의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사마의는 고평릉 사건(249년)을 일으켜 황제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 씨 일족을 숙청하고 실권을 잡았다.


그 후 그의 아들 사마소와 손자 사마염이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진 왕조를 세우며 삼국을 통일했다.


둘째, 사마의 대표 전략과 일화


1. 철저한 수비 전술

제갈량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버티며 촉나라를 쇠퇴하게 만듦


2. 장기적인 안목

제갈량 사후에도 조 씨 정권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며 신중하게 행동


3. 고평릉 사건으로 권력 장악

군사 반란을 통해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 결국 삼국통일의 기틀 마련


셋째, 사마의 유산과 평가


1. "이길 수 없다면 기다려라"

장기적인 시각에서 정치와 전쟁을 바라보는 뛰어난 지략가


2. 제갈량과의 라이벌 관계

동양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 중 1명인 제갈량과 끝없는 대결을 펼친 인물


3. 진나라의 실질적 창업자

직접 황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후대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면서 그의 전략이 완성됨


이처럼 사마의는 인내와 계책을 통해 최후의 승리를 거머쥔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후세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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