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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부님의 주례사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신랑 신부 둘 다 천주교 신자여서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통한 결혼식에 참석했다. 건축한 지 얼마 안 된 시골 성당이라서인지 아담하고 멋스럽다.


신부님께서 신랑 신부한테 "결혼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생각을 각자 적어서 와라"며 가볍게 얘기했는데, 정말 숙제를 해 왔다면서 웃음을 유도하신다.


신랑과 신부가 정성을 다해 작성했을 다짐을 상대방 그리고 부모와 처가 시댁 어른을 향해 낭독하는 모습이 정말 경건하기까지 해서 하객들은 흐뭇하다.


내용은 신랑의 아내에 대한 다짐과 부모에 대한 아들의 도리 그리고 장인 장모에 대한 사위 도리, 신부의 남편에 대한 사랑과 친정 부모에 대한 딸의 도리, 시부모에 대한 며느리 도리이다.


내용은 모범 답안임을 감안하더라도 숙제하는 과정에서 몇 번씩 고치면서 고뇌했을 모습이 떠오른다. 약효가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지속되길 고대해 본다.


덧붙여 여리지 나무를 예를 들어가면서 하는 부부간 사랑의 의미를 담은 주례사는 만일 필자가 주례를 부탁받는다면 활용하고 싶을 정도의 맛깔스러움이 있다.


1시간에 걸친 성당 예식이 다소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은 신부님의 재치 있는 입담과 진행 덕분인지 오히려 짧은 느낌이 있었다.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선남선녀가 새로운 짝을 선보이면서 결혼식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환한 미소 띠면서 해는 중천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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