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솔(1995년생)은 북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아들로, 김정일의 손자이자 김정은의 조카다. 마카오에서 태어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에서 성장했으며,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2012년 핀란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고 북한 복지 향상과 인권 증진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2017년 아버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후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이때 '천리마민방위'라는 조직이 그를 보호했다고 주장하며 등장했다. 천리마민방위는 이후 '자유조선'으로 명칭을 바꾸고 북한 반체제 활동을 표방하고 있다. 김한솔은 2017년 이후로는 공개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그를 둘러싼 여러 의문과 논란이 이 글의 주요 관찰 대상이다.
김한솔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저 또 한 명의 북한 지도자 일가의 후손이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보여준 행보와 여러 사건들, 그리고 남긴 말들이 단순한 혈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2012년 10월 16일, 핀란드의 한 방송국에서 국제 연합의 사무차장이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인권 특별특사였던 엘리자베스 렌과 나눈 인터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북한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싶고, 세계적인 인도주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권 증진과 평화 구축에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의 출신과는 별개로, 세계시민으로서의 포부와 책임감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 파격적이었던 건 그가 숙부인 김정은의 독재와 철권통치를 직접 비판하고, 북한 주민들이 처참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언젠가는 북한에 돌아가 인민을 돕고 싶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상과 포부는 2017년 김정남 암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전혀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아버지가 독살된 이후, 김한솔 역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는 언론과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바로 이 순간 등장한 것이 천리마민방위다. 이 조직은 그를 안전하게 보호했다고 공표했고, 이후 '자유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드러냈다. 마치 한 사람의 삶이 여러 이해관계와 국제 정치의 교차로에서 거대한 스토리텔링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김한솔 자신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져간다는 점이었다. 2012년의 김한솔은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였다.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북한의 미래를 고민하는 능동적인 청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천리마민방위의 보호 아래 놓인 이후 그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졌다. 이제는 그를 둘러싼 이야기만 남고, 본인의 목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계획이나 꿈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양한 세력과 언론이 그를 해석하고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2012년의 능동적 주체가 2017년 이후에는 보호받아야 할 피동적 객체로 변모한 것이다.
천리마민방위가 보여주는 방식도 2012년 김한솔의 투명성과는 정반대였다. 이 조직은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누구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지 등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할리우드 수준의 영상 제작과 서구 언론과의 매끄러운 연결, 그리고 철저한 익명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폐쇄성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어쩌면 더 교묘한 불투명성으로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김한솔을 비롯한 몇몇 인물의 보호와 망명 스토리로만 존재감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이 정교하게 연출된 서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천리마민방위가 사용하는 '구출' 담론이다. 이들은 김한솔을 구출의 대상으로, 일반 북한 주민들도 구출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 하지만 이는 2012년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준 관점과는 정반대다. 당시 그는 언젠가 북한에 돌아가 인민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도움을 주는 주체로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리마민방위의 내러티브에서는 오히려 구출되어야 할 수동적 존재로 포지셔닝된다. 이 구조에서 구출의 주체는 서구적 가치관을 앞세운 조직이고, 김한솔이나 북한 주민들은 구원의 대상으로만 남는다. 주체적 의지와 구체적 현실이 점점 더 흐릿해지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언어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김한솔이 2012년에 사용한 언어는 '북한 인민'이었다.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하지만 천리마민방위는 '자유조선'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차이가 아니다. '인민'은 구체적인 사람들을 지칭하지만, '조선'은 추상적인 국가 개념이다. 김한솔의 원래 관심사였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이 추상적인 국가 담론으로 대체된 셈이다. 마카오와 보스니아에서 주로 성장한 그에게 '북한'은 혈통으로만 연결된 추상적 개념일 수 있는데, 천리마민방위는 바로 이 '추상성'을 활용하고 있다.
천리마민방위와 서구 언론의 관계를 보면 이런 변화가 더 명확해진다. 2019년 스페인 북한 대사관 침입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폭력 행위였는데도 서구 언론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교적 우호적으로 보도했다. 김한솔이 2012년에 이야기한 '인도주의적 접근'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만약 그가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런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구체적인 북한의 현실과 거리가 먼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서구가 원하는 '이상적인 북한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북한의 현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서구의 환상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일련의 흐름을 보고 있으면 한 개인의 주체적 목소리가 어떻게 상징과 이미지, 그리고 정치적 담론 속에서 소멸해가는지, 그리고 실제 변화의 가능성이 어떻게 추상적 언어와 기대 속에 머물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김한솔은 기존 권력 구조에서 탈주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권력 구조에 포획되었다. 북한 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서구 세계의 기대와 환상 속에 갇혔다. 2012년의 그가 꿈꾸던 '북한 인민을 돕는' 일이 실현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는 영원히 상징의 감옥에 갇혀 있게 될까? 김한솔의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고, 또 언젠가는 다시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만으로도, 이 한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우리 시대 정치와 서사의 복잡함, 그리고 변화를 둘러싼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