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탁에서 가장 오래된 도구에 대한 생각
쇠젓가락을 만들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실생활에 쓰여온 도구인데, 우리는 왜 이 젓가락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금속 젓가락 공장을 시작하던 당시,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다.
세계 각국에서의 한국 문화 행사나 K-food 행사에 비빔밥을 홍보하는 공식적인 자리도 늘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현장에서 음식을 먹는 도구는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나무젓가락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우리 음식이 세계로 나간다면,
우리 음식에 가장 어울리는 도구도 함께 소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이 내가 금속 재질인 우리의 쇠젓가락을 다시 바라보게 된 출발점이었다.
쇠젓가락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가장 오래, 가장 자주 사용되어 온 도구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탓에 그 의미나 가치는 쉽게 지나쳐왔다.
일회용이나 업소용 기준으로 보면 플라스틱 젓가락이 저렴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하는 환경을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쇠젓가락은 쉽게 닳지 않고, 위생 관리가 용이하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단순히 비싼 젓가락이 아니라, 오래 쓰는 도구에 가깝다.
무엇보다 한국의 식문화는 밥보다 반찬이 중심이 된다.
국물, 무침, 찜, 볶음처럼 질감과 형태가 다양한 반찬을 다루는 식탁에서
섬세하게 집을 수 있는 도구는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쉽게 변형되는 나무나 플라스틱 젓가락보다
금속 젓가락이 더 실용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쇠젓가락은 재질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의 손 사용 방식과 식사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금속 젓가락이 사용되어 왔다.
다만 그 시기의 젓가락은 청동이나 은처럼 비교적 가공이 쉬운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원형이나 마름모, 직사각형 등 형태도 다양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젓가락과는 재질도, 생산 방식도 전혀 다르다.
지금의 납작한 스테인리스 젓가락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 속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제강 기술이 도입되고 스테인리스 소재가 국내에서 생산·가공되기 시작하면서
젓가락 역시 대량 생산에 적합한 형태로 표준화되었다.
스테인리스강은 강도가 높아 입체적인 형태로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판재를 절단해 만드는 납작한 형태는 생산 효율 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기에 빠른 생산과 공급을 중시하던 사회 분위기가 더해지며
형태의 다양성은 점차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이 굳어졌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았다.
한국의 금속 젓가락은 오랜 역사에 비해
너무 단순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한국의 금속 젓가락은 정말 이 모습이 전부일까.’
삼국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젓가락처럼,
금속 젓가락은 원래 다양한 형태와 미감을 가질 수 있는 도구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단순해진 형태를
지금의 기술과 감각으로 다시 해석할 수는 없을까.
쇠젓가락을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한국의 식문화와 생활 태도를 담은 도구로 다시 정리하고,
그 형태와 사용 경험,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싶었다.
이 생각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중심에 있다.
스테인리스 쇠젓가락은 구조적으로 매우 내구성이 높은 도구다.
정상적인 사용과 세척 환경에서는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교체 시점은 사용 기간이 아니라,
표면 상태나 변형 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더 맞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대를 이어 사용하는 도구로 인식해 왔다.
숟가락을 놓는 순간 생을 마감한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식도구는 삶과 아주 가까운 존재였다.
오늘날에는 디자인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확산되면서
테이블웨어를 교체하는 시점에 젓가락을 함께 바꾸는 선택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쇠젓가락을 쉽게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오래 쓰고 관리하는 도구로 바라보는 태도다.
쇠젓가락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손의 감각, 생활의 태도를 함께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게 된다.
쇠젓가락은 정말 이 모습이 전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