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금속 수저를 만드는 이유

작지만 단단한 존재감

by Sam Lee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면서

한국 문화를 담은 도구를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 쇠의 숨결과 손의 기억으로 만들다.


아침 여섯 시, 아직 햇살이 공장 창문 위로 넘어오기 전.

철제문을 열면,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금속의 냄새가 먼저 나를 맞이한다. 기계는 아직 잠잠하지만, 손끝은 이미 준비를 마친 듯 분주하다.


나는 수저를 만든다.

정확히는 금속 숟가락과 젓가락, 서양식 커트러리를 만든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공산품일 수 있고, 산업화된 제품군의 일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쇳덩이가 사람의 입에 닿기까지의 여정이자, 손의 감각이 가장 섬세하게 녹아드는 작업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디자인’은 스케치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금속 커트러리를 만드는 내 작업은 다르다. 스케치보다 먼저 손이 기억한다.

곡선을 접고, 굴곡을 만지고, 금속의 표면에서 오는 작은 떨림을 느낀다. 손은 도면보다 정직하고, 정직하기 때문에 때로는 잔인하다.


이건 손에 쥐었을 때 불편할 것 같아.

너무 얇아.

입에 닿았을 때 너무 거칠어서 불편할 것 같아

나는 아직도 연마가 완료된 볼을 손끝으로 만져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누구의 입 안에서, 또 어떤 음식을 떠서 먹느냐에 따라 금속 수저의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그 작은 미세한 차이를 나의 손은 기억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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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구는 말을 하지 않지만 감정을 남긴다.


수저는 그곳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한결같이 놓여 있다가, 식사가 끝나면 조용하게 제자리에 돌아간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수저를 통해 감정을 기억하곤 한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 사용하던 묵직한 놋수저

첫 독립을 하며 동네 마트에서 구입했던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저.

누군가의 기념일 선물로 받은 골드 도금의 수저까지.

사람들은 도구로 식사를 하지만 기억과 감정은 오랜 기간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표면이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수저를 넘어서, 사용자에게 좋은 기억의 의미를 남길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싶었다.


감정을 담는 도구. 실용성과 미감 사이에 숨은 이야기를 가진 수저.

사람의 입에 닿은 물건이고 하루에도 여러 번 손이 가는 물건.

그렇기에 기계적 공정에서 만든 단순한 공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손에서 직접 형태를 감각하고, 곡선을 하나하나 다듬고 정제하여 만든 수저는 디자인이자 식문화이다.


resize_IMG_7021.jpg 한식수저 - 놋수저(방짜유기)


3. 한식문화 속 수저의 의미


나는 한식 식문화에서 우리 수저가 갖는 위치를 긴 시간 고찰해 왔다.

서양의 포크와 나이프, 손과 젓가락, 나무와 도자기 등

그 수많은 도구 중에서 한국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유독 조용하고 단아하다.


좌식 문화의 우리 식탁 위에 놓은 수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절이고 질서였다.

식탁에 가지런하게 놓은 두벌의 수저는 자리에 대한 배려가 있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였다.

다른 사람보다 수저를 먼저 들지 않은 오래된 습관과 국을 먼저 뜨는 손길, 숟가락과 젓가락을 교차하여 사용하는 이 모든 행동은 우리 문화 속에 오랜 기간 쌓여온 절제와 조화의 미학인 것이다.


나는 그 조형적 원리를 한식 수저의 디자인에 담고 싶었다.

기능적인 구조를 넘어서, 한식 특유의 사용 방식과 동작의 흐름을 한식 수저의 형태 안여 녹여보고자 했다.

예를 들자면 숟가락의 볼은 깊고 둥글어야 하지만, 한식의 주가 되는 반찬과 국물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곡률이 부드럽고 입에 닿는 면은 얇아야 한다.


젓가락은 균형감 있는 길이와 두께를 갖고 있어야 하며, 손에 쥐었을 때 미끄럽지 않은 마찰감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재료의 선택이 아니라, 비례와 형태의 조형미와 사용자의 습관과 감감 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전통이라는 단어의 무겁고 깊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전통은 오늘이라는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 있다.

한식의 수저는 그 전통을 잘 이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저를 만든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 오늘도 우리 옆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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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브랜드보다 기억에 남는 물건을


사람들은 수저를 구입할 때 촉감을 먼저 기억한다.

무게감과 손에 쥐었을 때의 균형.

브랜드의 제품보다 기억에 남는 물건을 구입한다.


나는 해외 전시회에 나가면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디자인이 예쁘네요, 한국에서 만들었나요.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고마움을 느낀다.

디자이너로서 제작자로서도 그리고 이 수저를 매일 만드는 사람으로서도.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우리의 하루 중 가장 인간적인 순간입니다.

말없이 식탁 위에 있는 밥을 떠먹고, 반찬을 골라 집어 올리고, 모든 동작 속에 우리의 습관들과 감정이 묻어나고 한다.

수저는 그 시간을 함께하는 도구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식사 그 자체보다 오래 기억되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내가 만드는 수저가 꼭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대신 어떤 사람의 식탁에서 오래도록 쓰였으면 한다.

선물로 받고 처음엔 아껴두다가 어느 날 꺼내어 쓰게 되었을 때,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게 해주는 물건.

그게 내가 원하는 수저의 모습이다.


디자인은 기능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기억을 담는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그런 수저를 만들고 있다.

이름보다 감각이 먼저 기억되는 수저.

브랜드보다 감정이 남는 물건.





5. 작은 공방에서 세계의 식탁으로


내가 처음 수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이 도구가 해외 박람회에 나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손에 꼭 맞게 다듬은 수저가 누군가의 식탁 위에 올라가고, 또 다른 나라의 바이어가 그 형태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순간들이 지금도 낯설다.


처음엔 작은 공방 수준의 공장이었다.

기계 소리가 울리고, 철가루가 떠다니는 그 안에서 수십 번씩 곡선을 다시 잡고, 도면을 고치고, 연마를 되풀이했다.

효율보다 정확을 먼저 생각했고, 빠르기보다 의미를 앞세웠다.

그 방식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내 손은 정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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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메종오브제 전시장에서 누군가 수저를 들고 말한다.

한국은 왜 이렇게 얇고 가벼운 젓가락을 쓰는 거죠.

나는 그 질문이 고맙다.

단지 식기 하나로도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해나갈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수저는 작지만, 숟가락 젓가락을 가지고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언어가 달라도 감각은 통한다.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균형, 입에 닿을 때의 온도, 그 작지만 확실한 감각은 국경을 넘어 전해진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배운 짧은 서양의 언어와 이 작은 도구를 통해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

어떤 때는 무언으로, 어떤 때는 눈빛과 손짓으로.

그 모든 대화가 모여 하나의 디자인이 되고, 하나의 철이 사람의 기억이 된다.



6. 오늘도, 수저를 만든다


모든 날이 특별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매일 똑같은 공정 속에서도 한 가지 다른 마음이 있다.


수저를 만들면서 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어떤 이는 국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비빔밥을 잘 비빈다.

어떤 이는 젓가락을 짧게 쥐고, 어떤 이는 손가락 전체로 감싸 쥔다.

그 수많은 손과 입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나는 그에 어울리는 곡선과 무게를 찾아낸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좋은 느낌과 좋은 감각은 있다.

그 감각을 믿고, 나는 오늘도 무딘 쇠를 잡는다.

기계는 익숙해졌고, 손끝도 둔해지지 않도록 날마다 새롭게 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직하고, 튀지는 않지만 오래 남는 물건을 만든다.

누군가의 식탁에서 아주 조용히 존재하며, 그 하루를 함께하는 수저.

그 수저를 나는 오늘도 만든다.


언젠가 내가 만든 수저가 누군가의 인생에서 한 끼를 따뜻하게 기억해 주고.

어릴 적 외할머니가 먹여주던 그 따뜻한 손이 되어 주는 숟가락과 젓가락.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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