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내내 들었던 노래가 ‘너는’ 이란 뜻을 가진 에레스 뚜다. 스페인판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냥 스페인을 너라고 칭하며 들었다.
질문 하나. 너는 여전히 희망인가? 공원에서 반려견과 노는 아이들과 개똥을 치우지 않고 산책시키는 사람들. 바닥까지 잎이 내려온 겹겹의 침엽수 안에 둥지를 튼 노숙자와 그가 건 해먹 때문에 가지가 부러진 나무, 도심 곳곳에 진동하는 지린내와 아랑곳없이 주변 까페서 담소하는 사람들. 혼돈의 카오스가 희망이라면 너는 여전히 희망이 맞다.
너는 또 약속과도 같다. 말라가 해변에 정박 중이던 중세풍의 크루즈선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언젠가 꼭 승선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또 하게 했다. 지중해의 수평선을 찢고 떠오르는 해를 배 위에서 맞이하는 순간이란! 생각만으로 뭉클하고 가슴이 뛰었다.
말라가는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최애 도시이기도 하다. 자꾸 약속을 하게 만들었다.
너는 따가운 오후 4시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을 돌아보는데 한낮의 열기가 대단했다. 무어인들이 조각하고 다듬은 대리석과 나무는 천년을 건너와 나그네에게 폭풍 감동을 안겼지만, 더위 탓에 그마저 퇴색하는 듯했다.
그때 정원에서 불어오던 바람! 팔을 벌리고 눈 감고 즐풍을 만끽했다. 소설 ‘파과’에 나오는 늙은 여자 킬러 조각이 클리닝 업무를 마치고 길을 나설 때 이런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너는 여전히 화로의 불이고 빵의 밀이다. 불과 밀은 본질을 뜻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덜 고민하고 더 느끼며 더 많이 사랑하라는 삶의 본질에 충실한 것 같다. 거리마다 가득한 인파는 고민하기보다 충만한 표정이 많았다.
내가 떠난 하루 뒷날 터진 스페인 대정전에서 그들은 절망과 분노 대신 연대와 유희를 택했다. 길에서 함께 춤추고 담소하며 느긋하게 휴식하는 모습이 마치 한편의 시처럼 감동적이었다.
질문 둘. 너는 여전히 지평선을 꿈꾸는가? 세계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기억을 어떤 용기에 보관하고 있는가. 부디 투명하고 깨지기 쉬우며 윤슬처럼 빛나는 그릇이기를. 도처에 나뒹구는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기를. 시들어가는 생화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조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유한하고 무해하기를.
환하게 웃는 마지막 그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