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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만나

꽃과 나와 편린들 1-해당화

by 고훈실




짠내와 바람, 그리고 어딘가 흐릿하게 남아 있는 풀꽃 향기.

그 가운데서도 유독 기억을 끌어당기는 건 해당화다.

나는 종종, 아무 이유 없이 그 꽃을 떠올린다. 마치 멀리 떠났던 마음이 걸음을 되돌릴 때, 그 길목마다 피어 있는 붉은 기척처럼.



















해당화는 모래와 바람 사이, 뿌리 내릴 데 없어 보이는 길목에서도 꿋꿋이 피어난다.

송정해수욕장에서 기장 쪽으로 가는 큰길에서 맞은편으로 틀면 강처럼 깊이 들어온 바다가 있다. 그 바다옆 화단에 해당화가 흐드러졌다. 화단 맞은편엔 횟집과 민박 보신탕 집 등등이 있었다.


6월의 보신탕집과 마주한 해당화. 수육백반을 앞에 두고 바라본 해당화가 컹컹 짖었던가.

반려견과 식용견은 다르다며 애써 목구멍에 면죄부를 주듯 욱여넣었던 개고기가 해당화 앞에서 무람했다.

나같은 사람들이 코를 들이댈 때마다 해당화는 모로 방향을 틀었겠지.


하지만 몇 해 전, 해당화가 모조리 뽑히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화단을 없애고 길을 넓힌 것이다.

해당화가 있던 자리엔 번들번들한 자동차들이 그득했다.

문명이란 이름의 불도저는 꽃을 짓밟고 시멘트를 퍼붓고 향기를 내몬다. 고작 그렇다.

나는 참담하여 그 자리를 맴돌았다.

기억 속의 해당화를 소환하려 애썼지만 금세 날아가버리는 향기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그때부터 해당화는 나에게 ‘머무르지 못한 마음’의 냄새로 남아 있다.


넌 빠진 나사처럼 헐겁게

내게서

툭 떨어진다


휘발성의 하루가 머저리처럼 서 있다



고훈실 시- 봄 중에서



문득 내게서 헐겁게 떨어져 나간 존재들의 향방이 궁금해진다.

바닷가 절벽 끝, 경사진 오솔길, 또는 땅끝에 발을 대고 있더라도

해당화처럼 다정하기를

황홀의 정수리를 가졌기를

오늘의 계절을 빚어내기를



완전히 떠난 적도, 완전히 남은 적도 없이 돌아가는 길목에 흐드러진 꽃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우리, 거기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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