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 시저 (Hail, Caesar!, 2016)_코엔 형제]
어렵고 까다로운 수학공식을 영화로 풀어내면 재미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듯이 아무리 재미있는 영상적 장치를 한다 해도 그 본질 자체는 별로 재미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공식보다 더 난해하고 어려운 것이 인간의 삶이고, 그 삶에서의 유의미한 선택이 영화적 주제라고 하면, 그것을 영화로 풀어내는 것은 훨씬 더 재미없는 일이 아닐까?
그들에겐 그렇지 않다. 우리 삶의 지나온 시대적이자 정황적 단면인 과거라는 기억을 날카로운 영화적 사시미칼로 난도질해서 산뜻하게 초밥으로 제공해주는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저 입에 침이 먼저 고여버리고 만다.
코엔 형제의 영화적 주제는 현재가 아닌 과거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시리어스 맨' 그리고 '파고' 시리즈가 그렇듯이 당대에는 현실적 가치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적 난감함이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그저 부조리한 일상의 한 단면들이었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코엔 형제가 16년 간 묵혀낸 묵은지 시나리오를 현대적 시각으로 구현해 낸 또 하나의 걸출한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본인들의 영화 '시리어스 맨'의 주인공이 다시 영화 현장이라는 무대에서 부활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감독은 거기에 당시 미. 소 냉전 현상의 부조리함과 찬란했던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오마주 형태로 부활시켜 놓았으며, 특히 '포켓 트립(극 안의 극)' 형태로 당시의 영화적 제작현장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당대 영화산업의 향수를 직접적으로 자극시키고 있다.
코엔 형제의 영화적 테마는 부조리한 일상이다. 그 부조리가 영화라는 필터링을 거치면서 판타지로 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희로애락을 이 영화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 필터링 과정 속에 등장하는 놀라운 영화적 장치들은 관객들에게 기막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주인공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가 자신이 평생 몸 바쳐 일한 영화판을 떠나려고 하는 설정에서부터,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시나리오 작가 무리들에 의해 납치된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촬영 현장에서 '인간의 정신에서 논리를 찾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열연하는 냉소적인 장면이나.. 가편집 중인 필름을 시사하다가 편집에디터(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스카프가 필름에 말려 들어가 영화가 추상적으로 바뀌는 장면에는 참을 수 없이 웃기지만 정작 웃을 수 만은 없는 짠한 삶의 페이소스가..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 채 죽어있는 생선의 비늘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를 골몰하게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영화는 코엔 형제가 스스로 자신들이 그동안 추구해 온, 또한 좋아하는 영화라는 장르가 무엇인지를 그냥 서커스처럼 찬란하게 보여주는 것 이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살아가는 이유이고, 지나온 과거조차 아름답게 비추어 주는 삶의 거울인 것이다. 그것을 차마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짧은 러브레터다.
그리고 코엔 형제가 비수처럼 날리는 엔딩 메시지... 마지막 장면쯤에 납치돼서 돌아온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십자가 앞에 묶인 예수를 바라보며 대사를 하다가 마지막 한 마디가 생각 안 나서 버벅거리는데... 감독이 '컷'을 외치며 한심한 듯 한마디 한다.
"믿음이라고.... 믿음.....!"
p.s 사실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큰 웃음을 준 것은.. 주인공 배우가 납치되어 엑스트라들이 십자가에 한참을 묶여 있었는데... 스태프가 예수 역을 맡은 엑스트라에게 다가가 점심으로 뭘 먹을 거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대답이 정말 가관이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