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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Dec 27. 2015

중국! 그 넓은 대륙을 적시던 문명의 비를 따라

서호에서 저우좡까지 짧은 답사 기록  


중국.. 면적이 한반도의 44배, 인구는 12억 8천만, 55개의 소수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  상식적으로 다가오는 수치의 느낌만으로도 그 대륙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고 직접 가 보아도 그 속의 역사를 대략이나마 짐작하기도 힘든 거대한 문화의 나라.  그것이 바로 나에게 다가온 중국의 첫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런 대륙의 거대함을 느낄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친절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3가지를 해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그 3가지 중 첫 번째는, 자신의 나라 음식을 다 맛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의 나랏말을 다 듣고, 말하고, 배우지 못하고 죽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의 나라 땅을 다 돌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라 한다. 


이런 것이 가능한 나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일일생활권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얘기만 들어도 허탈함이 밀려오는 속담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지금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역시 중국은 그렇게 거대한 나라인 것이다.           


X-pan / 45mm Fujinon / E100vs, 상해


하물며 턱없이 짧은 일정으로 그  거대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기란 애초부터 쉬운 일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를 편의상 토막 내어  그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륙의 한 부분만을 접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상해, 항저우, 쑤저우 그리고 9백 년 역사의 운하도시 저우좡까지… 




비록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나마 일정 내내 비가 흩뿌리고 지나가 대륙의 무게는 체감적으로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물론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미처 다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도 상해에서 줘우지앙까지의 일정은 우리 일행에게 참기 힘든 묵직한 문화적 충격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주마간산식의 단출한 답사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었던 서호에서 줘우지앙까지의 답사 기록을 다시 펼쳐본다. 

   



저우좡에서만난 한 아주머니가 일행들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내리던 비 마저 아름다운 고향! 서호(西湖)

일행이 중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호이다. 항주(杭州)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서호는 한나라때 명성호라고 불렸으나 당나라 때부터는 도시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호(西湖)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호는 원래 항주만을 통해 바다로 흘러 나가는 전당강(錢塘江)의 포구였던 곳이었지만 송나라 시대에 진흙과 모래로 막아  인공호수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인공호수를 만들 당시 노역하던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서호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호수 끝을 잘 보여주지 않는 다고 한다. 날이 좋지 않아 비가 흩뿌리는 와중에 누가 비 내리는 서호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해주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서호에 배가 지나가는 모습




마르코폴로가 극찬한 도시 항주(抗州)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저장성의 성도(城都)로 7대 고도의 한 곳이다. 또한 지금도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동양의 베니스 저우좡의 골목을 따라 


짧은 중국 여행 일정 중 가장 감동적인 곳은 단연 저우좡이었다. 상해에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9백 년 역사를 지닌 동양의 베니스 저우좡은 중국 현지인들도 평생 가장 가 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라고 한다.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수로도시는 끝이 없는 골목과 당송시대의 고가구와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도 아주 높은 지역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센과 치이로의 모험>에 나오는 골목들은 아마도 이곳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와 인간이란 상관관계를 내내 생각하게 했던 진한 감동의 현장이었다. 



2003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중국정부로부터 최초로 ‘역사문화명 도시’라는 칭호를 받은 저우좡의 역사는 무려 900년이나 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900년 전 송나라 유지였던 ‘조우 디’라는 관리가 자신의 땅을 지역사람들에게 내놓으면서 건설이 되었다. 



청후, 바이센후, 난후 등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강줄기가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곳에 건설된 쑤저우(蘇州)의 저우좡은 ‘동양의 베니스’로 불릴 만큼 운하가 발달한 곳이다. 대문을 나서면 골목길 대신 좁다란 운하가 발길을 가로막아 이곳 주민들은 지척의 거리도 나룻배를 타고 왕래한다. 채소도 운하에서 씻고 물고기도 운하에서 잡다보니 예로부터 중국 제일의 수향(水鄕)으로 불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운하가 ‘우물 정(井)’자를 그리며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저우주왕에서 다리는 마을을 하나로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원래 명·청시대의 돌다리가 30여 개 있었으나 지금은 13개만 보존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쌍교다. 세덕교와 영안교가 종횡으로 이어지는 형상이 마치 고대의 열쇄처럼 생겼다고 해서 열쇄교로도 불리는 쌍교는 저우주왕을 서양에 처음 알린 다리로도 유명하다.



상하이 출신 화가인 천이페이는 1984년에 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쌍교 그림에 ‘고향의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침 미국의 한 석유회사 사장이 이 그림을 구입해 덩샤오핑에게 선물하면서 쌍교는 중국과 미국의 우정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이 그림은 유엔에서 발행하는 공식 엽서의 도안으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2003년에는 저우주왕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명· 청시대에 건축된 100여 채의 주택과 60여 채의 누각으로 형성된 저우좡은 시간이 정지된 마을이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청나라 시대의 복장을 한 만화경 상인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중국 최고의 비단 생산지답게 노파들은 가게에서 직접 물레를 돌려 실을 뽑는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만 아니면 영락없는 명·청시대 풍경이다.



1000여명의 마을 주민 대부분이 살고 있는 션팅(沈廳)과 쟝팅(張廳)은 저우좡에서 가장 큰 저택으로 청나라 때 건축된 션팅은 겉보기엔 여느 민가와 다름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100여 개의 방이 연이어 나타나 상상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설 때마다 나타는 방이 마치 인형 속에 

인형이 들어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를 닮았다고나 할까.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쟝팅은 600여 년 전인 명나라 때 건설된 저택이다. 70여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건물 안의 대청 앞과 안채 뒤에는 나룻배가 방향을 돌릴 정도로 넓은 운하가 흐르고 사철 꽃이 피고 지는 정원도 가꾸어져 있다. 창문에 기대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 대부호였던 주인의 고상한 취향을 짐작하게 한다.



이밖에도 저우좡에는 사람을 홀리는 건물이라는 뜻의 미러우(迷樓)가 있는데 요리 솜씨가 뛰어난데다 선녀같이 아름다운 딸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식당이다. 명나라 철학자인 왕양밍(王陽明)의 바둑판을 보관한 저우주왕 기원도 볼거리 중 하나다.


사실 저우주왕의 진면목을 보려면 나룻배를 타야 한다. 수십 척의 나룻배가 비스듬히 늘어선 부두에서 한가하게 뜨개질을 하던 여자 사공도 삿대만 잡으면 남자 못지않게 힘을 쓴다. 8명의 관광객을 태운 나룻배가 거울처럼 잔잔한 운하를 미끄러지면 운하 좌우로 빈틈없이 늘어선 명·청시대의 허름한 목조 건물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른다.



늙은 사공이 ‘동양의 베니스’에서 노를 젓는다. 검푸른 이끼가 자라는 아치형의 돌다리를 지나자 명·청 시대의 고 가옥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다시 세월을 거슬러 골목길보다 좁은 운하로 뱃머리를 돌린다. 저녁노을에 물든 황금빛 세상을 향해 노를 젓는 사공의 애잔한 노랫소리가 수백 년 세월을 넘나들며 수향의 골목길을 

메아리친다.


‘중국 산천의 아름다움은 황산에 모여 있고, 수향의 아름다움은 주장에 모여 있다’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싯구를 떠올리며 둥둥거리며 수향을 즐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사공이 나에게 말을 건다. 알아들을 리가 만무가지. 다행이 함께 있던 일행이 통역을 해주는데 돈을 바꿔달라는 것이다. 한국관광객들이 노래 삵으로 주는 한국 돈을 자신은 바꿀 수가 없어서 중국 돈과 교환해달라고 하는 것인데.. 여권같은 것이 있을 리 없는 수향의 사공 푸념이 무심하게 들리지 않아 중국 돈 400원 정도를 바꾸어 주었다. 돈을 교환하고 놀란 것은 그 돈이 4년간 노래 삵으로 모은 것이란다. 휴~

    


저우좡! 조그만 수로위에 작은 마을들.. 그리고 온갖 푸른 색채와 문양들이 즐비한 고대의 도시. 거기서 나는 새로운 중국을 경험했다. 낯선 여행의 비밀스럽고 즐거운 체험이라고 할까? 낯선 여행에서 자신의 이름을 잃고 새로운 이름으로 강을 찾아가는 여행을 한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은 바로 저우주왕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찾기와 그 코드가 절묘하게 같았다. 




6백여 개가 넘는 작은 수로골목에서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일상을 만들어 가는 풍경은 그것 자체로 무척 이국적이었다. 물론 나도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것을 조그만 길 자체가 잔잔하게 일러주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곤 했으니까...그렇게 낯선 땅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여행이 가능한 것은 저우좡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골목의 구조 탓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준 순박하고 때 묻지 않는 자연의 모습에서도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개발되지 않은 삶 그 자체로 온전하게 9백년을 내려왔다는 것 자체가 신비스러운 경험이기도 했지만 그런 삶을 아직도 불평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는 그곳 사람들의 인내심과 자부심은 낯선 여행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짧은 주마간산이었지만 그래도 작은 추억을 안겨준 저우좡의 추억이 그래서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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