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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Aug 24. 2016

인간의 얼굴로 만든 신의 이야기 <잔다르크의 수난>

<잔 다르크의 수난, 1928_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잔 다르크의 수난, 1928_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잔 다르크의 수난, 1928>_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1927년에 만들어진 이 놀라운 영화는 한 때 인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한 위기를 극복하며 기적처럼 살아나 빛나는 영화적 미학을 오늘날까지 보여주는 무성영화의 역작이다. 영화 <잔다르크의 수난>은 실제로 여러 번 불타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1984년 덴마크의 어느 정신병원에서 원본 하나가 극적으로 발견되면서 비로소 복원되었다.


칼 테오도르 감독이 <잔다르크의 수난>을 촬영하고 있는 장면. 카메라 감독은 루돌프 메이트이다.
영화의 주인공 마리아 팔코네티. 영화는 수개월에 걸쳐서 진행되었던 잔혹했던 잔다르크의 종교 재판을 여 주인공의 표정만으로 강력하게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세상에서 영화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란 듯이 증명하며 종교적 주제를 리얼리즘과 형이상학과의 관계로 풀어가는 세계영화사의 기념비적인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를 감독한 칼 드레이어는 파리의 하원 도서관에 있는 실제 잔 다르크의 재판기록을 토대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거만하고 권위에 빠져있는 재판관과 신학자들, 숭고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젊은 잔 다르크가 있는 조그만 재판장의 먹먹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감독은 그 조그만 공간 속에서 대립하는 극 중 캐릭터들의 상징들을 카메라로 집요하게 담아낸다. 그것은 극도로 클로즈업된 배우들의 얼굴이다. 영화는 클로즈 업에서 시작해 클로즈 업으로 끝이 난다. 감독은 배우의 얼굴에 집중하는 독특한 영상미학에 대해 "사람의 얼굴은 정신이 드러나는 풍경'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압도적인 인상은 인간 그 자체다. 인간의 얼굴에는 믿음과 배신, 냉소와 야유, 의심과 욕심, 추함과 아름다움, 신념과 두려움 등이 뒤섞여 나타나는 진한 페이소스로 가득 차 있다. 솔직히 그것은 '마리아 팔코네티'가 보여주는 놀라운 연기가 한몫을 하고 있지만 여러 배우들이 구현하는 인간의 다면적인 표정이 상징하는 적나라한 민낯이 실제적인 주인공이다. 



관객은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 그 조그만 공간에, 그 다양한 군상들의 얼굴과 과감하게 조우하고, 또한 대화를 섞으며, 심지어 견뎌내기까지 해야 한다. 흑백의 무성영화가 이러한 감정적 울림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솔직히 기적이다. 전사로 각인된 잔 다르크가 평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이 드라마의 절정이다. 


인간의 얼굴에 새겨진 슬픔, 분노, 증오를 질 들뢰즈는 “얼굴의 돌림과 외면에 대한 놀라운 기록”이라고 했다. 칼 드레이어는 이 영화에서 극적으로 사용한 최소한의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소리가 사라진 영화에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이것은 차라리 인간이라는 군상들의 처절한 자기고백이 아니고 대체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묻는다.      



"대답하라! 너는 주의 은총 속에 있는가?"     


잔이 대답한다.      


"제가 주의 은총 속에 있다면, 하느님께선 저에게 계속 은총을 내려주실 것이며, 제가 은총 속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선 제게 은총을 주실 거예요!"     



칼 포퍼가 그랬다. 지구 상에 천국을 구현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은 지옥을 만들어 낼 뿐이라고.... 천국은 멀고 지옥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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