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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Aug 25. 2016

누가 월러스를 만났을까 <디 엔드 오브 더 투어>

2번의 인터뷰, 2편의 영화, 2명의 월러스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 낯선 동음이의어가 전달해주는 영화 속 이미지가 마구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시작은 월러스(Walrus)였다. 그것은 의미 없는 존 레넌의 음악 속에 존재하는 바다코끼리였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찾아온 월러스(Wallace)는 인생이란 여행의 끝에서 만난 또 다른 영감을 지닌 글 쓰는 바다코끼리였다. 그들은 영화 속 내내 웅얼거리고 또는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응징했다. 난 이 두 월러스가 엄청난 공통점이 있다고 단박에 느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런 영화 리뷰를 쓰기로 했다. 돈도 안되지만 궁금했다. 내가 아는 월러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래서 이번 리뷰는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첫 번째 월러스(Wallace)를 만나다     


'디 엔드 오브 더 투어(The End of the Tour) 2015'


첫 번째 월러스를 만날 영화는 제임스 폰 솔트 감독이 연출한 2015년 영화로 데이비드 립스키의 2010년 회고록 'Although of Course You End Up Becoming Yourself'를 바탕으로 만든  '디 엔드 오브 더 투어(The End of the Tour)'라는 영화다. 여행의 끝이다.


 

이 영화는 너무 유명해져서 외로운 작가를 정작 유명해지고 싶은 작가가 인터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도 모두 실존 인물이고 내용 역시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극적인 긴장감이나 반전 같은 스토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뉴욕 타임스'지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들이 2015년 최고의 영화로 꼽았을 정도로 제목만큼 긴 여운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레스'


영화의 주인공은 극을 이끌어가는 롤링스톤지 기자역의 데이비드 립스키이지만 정작 중요한 인물은 우리 시대의 토마스 핀천 또는 존 어빙으로 추앙받는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레스이다. 월레스는 1996년 출간한 자신의 두 번째 소설 [무한한 흥미(Infinite Jest)]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이 소설은 [타임]지가 20세기 100대 영문소설로 선정하기도 했는데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으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와 함께 '인터넷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물론 이 작품은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2008년(끝)에서 1996년(시작)으로 돌아가는 여행


영화는 주인공 데이비드 립스키(제시 아이젠버그)가 유명 작가이자 자신의 친구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제이슨 세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지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립스키와 월러스의 관계가 시작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가로 성공하겠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던 롤링스톤지의 기자 립스키는 1996년 당시 '무한한 흥미'라는 소설을 펴낸 월러스가 미국 평단의 극찬을 받자 질투와 부러움을 지닌 채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북투어에 동행한다. 당시 월러스는 34세였고, 립스키는 30세였다.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에 있는 월러스의 집으로 찾아간 립스키는 그로부터 5일 동안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온갖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고 토론을 펼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서로 친구가 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친구 맺기 과정을 그냥 담담한 일상적인 대화로 담아내는 것 이상, 그 이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들이 나누는 소설, 마약, 여자, 술, 담배, 개, 외로움 등등 소소하고 하찮은 그런 일상적인 물음과 대답 속에 어떤 사람의 인생의 끝이 가느다랗게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 영화에서 월러스는 말한다. 인간들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적 도구들이 외려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고독의 끝으로 몰아 부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차라리 외로움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개랑 사는 게 훨씬 편해요. 섹스는 못하지만 늘 다른 사람한테 상처 주는 기분은 느끼지 않아도 되거든요'  

'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분명 외로운 사람들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왜 1000페이지나 되는 책을 읽겠어?'

                                                         

데이비드 포스터 월레스 역을 맡은 배우 제이슨 시겔


그는 자신이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쓴 이유를 사람들의 슬픔을 끝내고 싶어서였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외로움은 끝내지 못하고 결국 2008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때론 사랑받고 싶어도 했지만 외로울 뿐이었던 어떤 작가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무 여자랑 잘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랬다면 분명 외로웠을 테니까. 그녀들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 '명성'을 좋아한 거니까.'


그는 여행의 끝에서 말한다. 인생이란 뭐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영화에서는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등장하지만 그는 기어이 묵직한 바다코끼리의 그것처럼 삶의 담론을 내어 놓는다. 우리가 번역되어 알 수 있는 유일한 저서는 그가 자살을 선택하기 3년 전인 2005년 5월 케니언 대학 졸업식에서의 강연을 엮은 <이것은 물이다>라는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구나 여행의 끝에서 한 번쯤 되뇌어볼 만한 그런 질문이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깐 동안 말없이 헤엄쳐 가다가 결국 물고기 한 마리가 옆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

-본문 중에서




두 번째 월러스(Walrus)를 만나다     


                                                                        

두 번째 만날 월러스는 'I Met The Walrus'로 2007년에 개봉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1969년에 당시 14살이었던 제리 레비탄이 캐나다 토론토에 묵고 있던 존 레넌의 호텔방을 몰래 들어가 존 레넌과 인터뷰한 내용을 38년 후 감독이 여러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어서 완성했다. 작품 길이는 5분 남짓이지만 높은 영상미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화제작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1969년 어느 날이었다.


i met the Walrus를 제작한  Jerry Levitan의 14세 당시와 현재 모습


비틀스를 흠모하던 캐나다의 14살 소년 제리 레비탄은 자신의 영웅인 존 레넌이 "bed-in" for Peace 이벤트를 위해 토론토에 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무작정 그를 만나기로 작정한다.  소년은 토론토의 여러 호텔들을 랜덤 하게 수색하며 존 레넌을 만나기 위한 용감한 시도를 하는데, 그 사실을 존 레넌이 알고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한다.      



이 무모한 프로젝트는 결국 현실이 되었고 이후 소년은 자신의 영웅과 보낸 시간을 테이프 레코더에 녹음하여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관했다. 그리고 무려 38년 후 소년은 어엿한 감독이 되어 자신의 인터뷰 파일에 다양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어서 또 하나의 존 레넌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I Met The Walrus'는 그렇게 탄생한 인생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14살의 소년과 그의 영웅이 나눈 40분가량의 대화를 5분가량으로 압축해 상징적이고도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했다. 이 단편 애니는 당시 존 레넌의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아주 심플하고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30년 전에 있었던 인터뷰이지만, 아직도 그의 메시지는 현대 세계사에 큰 일침을 가할 만큼 파워풀하고 직설적이며, 또한 감동적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I Met The Walrus'일까?



먼저 비틀스의 노래 'I am the Walrus'의 탄생 동기를 알아야 한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경위는 무척 흥미롭다. 감독이 이 노래의 제목에 존 레넌을 비유한 것은 그가 존 레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번에 해석하게 해주는 단서다. John의 친구인 Pete Shotton에 의하면, 어느 날 John은 자신이 졸업한 학교인  'Quarry Bank'의 한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거기엔 이런 얘기가 적혀 있었다.      


자기 학교의 문학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비틀스 노래를 틀어주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가사를 분석하게 시키고 비틀스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의 해석을 들려주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John의 재학 당시 John에게 "넌 뭘 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던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존은 그 편지를 보고 대번에 " I Am the Walrus"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다.     


[The Beatles] I Am the Walrus    

I am he as you are he as you are me  내가 그 인 것처럼, 네가 그 인 것처럼, 너는 나야
and we are all together 그리고 우린 함께야  
See how they run like pigs from a gun  사람들은 총으로부터 돼지처럼 도망치지
see how they fly 그들이 나는 걸 봐  
I'm crying  난 울고 있어
Sitting on a cornflake 옥수수 알 위에 앉아서  
Waiting for the van to come 밴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Corporation T-shirt, stupid bloody Tuesday  조합 티셔츠, 바보 같은 피의 화요일  
Man you've been a naughty boy  넌 못된 아이였나 보구나
you let your face grow long  그렇게 울적해있는 걸 보니...      
I am the eggman 난 달걀 맨이야  
they are the eggmen 그들은 달걀 맨이야  
I am the walrus  난 해마야
Goo goo g' joob... Goo goo g' joob
Goo goo g' goo goo goo g' joob goo..........      


John은 어릴 적 부르던 의미 없는 허밍에다 맛없는 semolina (푸딩의 일종), 고양이 밥으로 사용하던 pilchard(정어리류)등을 조합해 "I Am the Walrus" 가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자식들한테 이것도 한 번 해석해 보라고 해."      


한마디로 자신을 저주한 교장에게 가해진 멋진 복수전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비틀스 멤버들이 찍은 이 뮤직비디오는 기괴하고 코믹하기까지 하다. 제리는 이 노래를 존 레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자신이 14살 때 만난 존 레넌의 사상을 그는 무척이나 상징적으로 들었으며 후일 이 이야기를 모든 이들에게 호기롭게 전달하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의미 없음의 복수전이 무려 40년의 칼을 갈고서야 등장한 작품이 바로 이 인터뷰이자 세상에 대한 존 레넌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I Met The Walrus' 2007 _ 감독 / 제리 레비탄


Jerry : 존, 당신이 미합중국에 입국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John : 많은 이들이 내가 입국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단다. 그들은 내가 폭력적인(난폭한) 어떤 혁명(소요)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봐.. 실은 그렇지가 않은데.. [화면 속의 칼을 들고 있는 기사의 칼이 꺾인다. 이는 존이 원한 것은 폭력적인 무언가가 아님을 말함] 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나를 원치 않았는데, 그건 내가 추구하는 평화(평화로움) 또한 싫어서였겠지. [이 부분에서 V자 모양의 손가락이 나타났다, 이내 총을 쥐는 모습으로 바뀌는 데… 여기서 v자 모양의 손가락은 미국에서 가로로 눕혀 쓰이며 평화를 상징하는 데 쓰인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은 영상물이 39초쯤 경과되었을 때, 존이 ‘peace is big…’이라고 이야기하려다가 버벅거리고, 다시 ‘war is big business’라고 말을 바꾸는데 이에 맞춰 평화를 상징하던 손가락의 크기를 재려던 가늠자가 나타났다 재빨리 사라지고 총을 쥔 손으로 바뀐다.]  그들은 전쟁을 좋아하지. 왜냐하면 전쟁이 그들을 살찌고(fat) 즐겁게 유지시켜주거든.  [여기에서 'fat' 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뜻하며, 여기서 어떤 남자가 크레인 위에 서서 뚱뚱하게 살이 찐다. 당시 미국의 상황을 비꼬는 것이다]   나는 전쟁 반대론자야, 그래서 그들이 나를 멀리하려 하지만, 내가 나서야 할 것 같구나. 왜냐하면 그들은 대중 앞에서 그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야만 하거든. [뚱뚱한 남자가 서 있던 크레인의 끝 부분에서 존이 배출된다. 크레인은 아무래도 위치가 높이 있으니까 앞서 이야기한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존이 배출된다는 것은, 그들의 물질적 풍요를 방해하는 존을 멀리하려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배출된 존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화면이 위쪽으로 이동하면서, 존이 빨려 들어간 곳이 연단의 하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존이 개입함으로써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그들의 물질적 풍요를 위해 전쟁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도록 한다는 함수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Jerry: 토론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을까요?      


John : 너희 스스로를 돕는 게 나를 돕는 거지.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시작되어 그려지기 시작한 존의 얼굴 뒤에 존을 조작(?)하고 있는 젊은 사람의 모습이 형상화된다] 군사적 혁명가(급진주의자들)에게 군사적으로 일어난 혁명 (운동) 중에 단 한 가지라도 처음의 약속대로 된 혁명 (운동, 전쟁)들이 있는지 한 번 물어보렴. [앞서 젊은 사람이 매달려 있던 봉(poll)에 ‘1’이라고 쓰여있는 깃발과 함께 승마해 있는 군인이 나타난다. ‘1’이라는 숫자가 깃발에 써져 있는 건, 아무래도 깃발이 군사적(폭력적)인 혁명(내지는 전쟁)의 목표나 취지를 상징하는 거 같다_번역자의 주]  그들이 하고 있는 건 단지 그곳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을 반복하는 것뿐이야. 그리고는 제정 왕국이 되어가는 거지. [지구가 잘게 쪼개지고, 쪼개진 지구의 부분 부분들을 다시 지어나가는 사람들…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제정시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때려 부수는 건 가치가 없지만, 기계(물질적 생산수단) 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에는 편하거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항인데, 그건 비폭력적인 저항이어야 해. 왜냐하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하기 때문이야. 네가 만약 거칠게 저항한다면 너도 얻어터지고 마는 것, 그뿐이거든. 그게 우주(만물)의 이치란다. 그들은 모든 무기(폭력의 수단)를 가졌고, 그들은 모든 자본을 장악했어. 싸우는 방법 또한 알고 있지.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억압하며 그들이 그래 왔기 때문이지. 그들이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비폭력과 유머(웃음) 일 테지. 그리고 평화를 촉구하는 방법이 많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것들.. 평화에 오줌을 누는 것 [강아지가 소변을 본다], 평화를 위해 웃음 짓는 것, 평화를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 평화를 위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 등 네가 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평화를 위한 것이지. 무엇을 하든지 그건 사람들에게 달렸어. 너는 ‘정부(정치집단)가 전쟁을 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전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라고 하면서 정부를 비판해서는 안돼. 실은 우리가 그것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거든. 우리가 진정 원한다면 바꿀 수가 있는 거야.     



jerry : 폴과 링고, 그리고 조지는 어떻게 지내나요?      


John : 우리는 서로 독립된 개체라고 보면 된단다. 그리고 조지는 그의 삶의 방식으로 그것을 해 나가고 있다고 나에게 이야기 하지. 길거리에서 ‘나는 평화를 원해!!’라고 외치며 궁극적으로 네 친구인 타인들을 때리는 건 옳은 게 아니야. 머리를 쓰면서, 너 자신을 훈련시키는 게 나을 거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우린 폭력 그 자체로 존재해 왔기에, 그게 꽤 어렵긴 하지. 우린 내면에는 모두가 히틀러(악)이기도, 예수님(선)이기도 해. 그리고 너의 좋은 부분들부터 작용시키고 노력하렴.      



Jerry : 신문에서 읽은 바와 같이, 조지는 정말 훌륭한 기타리스트인 것 같아요. 나는 그다지 조지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약간 그를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이 사람(현실)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죠. 그들은 하나님과도 같은 상징적인 무언가 처럼요. 학교에서의 경험으로 비춰보면, 제가 만약 친구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뭐야?’라고 물으면 그들은 ‘비지스’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럼 전 ‘왜 비틀스를 안 좋아하지? 그들이 얼마나 환상적이고 대단한데…’ 등등의 이야기를 하겠죠.. 그럼 녀석들은 ‘왜냐하면… 음… 예를 들어 마리화나 소지 혐의라든지… 그들이 모두 히피라는 점.. 그리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아니면, 그들이 난잡스러움(?)’ 등등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John : 아~.. 그래, 그 아이들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Jerry : 네… 그들은 마치 로봇과도 같죠.      


John: 네가 어떤 부분을 듣고 있든지 간에, 음악의 모든 부분에 걸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존재하지. 나 또한 내가 곡을 쓰거나 노래할 때 그런 것들을 가져오고 있단다. 하지만, 어떤 곡들은 작곡을 하고, 연주하고 녹음한 후 몇 달 동안 듣지 않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는 누워 멍하니 있다가 ‘그래! 비틀스 앨범 한 번 들어보자’ 하고는 과거를 회상하며 접하게 되는 거지. 나는 객관적이지는 않아. 나의 노래는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해. 그건 UK나  USSR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어. 거기엔 모든 것이 존재한단다. 그건 한 송이 꽃과도 같아.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잖아. 그 자체라는 거…. 네가 만약 충분한 시간 동안 그것을 들여다본다면, 음악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여행의 끝에서


그런데 말이죠... 어떤 월러스는 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이 뭔지 진지하게 알려주려고 했던 바다코끼리였다면 어떤 월러스는 말이죠... 그냥 물에서 즐겁게 노는 천상 바다코끼리였다는 사실이죠... 내가 어느 섬에 다가가 수많은 무리의 바다코끼리 떼를 만나면 거기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지닌 바다코끼리를 골라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죠? 그게 인생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내 눈엔 그 바다코끼리가 보인단 말이죠....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면... 영화를 좀 더 자세히 봐야 해요... 바다코끼리라고 다 같은 습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더라는 것인데...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처럼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끝에서 봐야만 그게 보일지도 모르고, 존 레넌처럼 진정한 자유의 끝에 서면 그게 확실하게 보일지도 모르지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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