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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Sep 25. 2016

핵폭탄보다 무서운 금융카르텔 [투빅 투 페일>

[Too Big to Fail, 2011] 커티스 핸슨

[Too Big to Fail, 2011] 감독 : 커티스 핸슨

     

초등학교 시절. 아마도 3학년 때였던 거 같다.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조그만 어촌, 세계화의 그늘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골 촌 바닥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상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덕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토론이라는 주제를 칠판에 적고 아이들에게 서로 의견을 얘기하라고 시킨 것이다. 의견을 얘기하라니... 


한국 전쟁이후 수복지구의 초등학교 담벽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표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가 대문짝 하게 학교 건물에 찍혀 있는 수복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무슨 평화에 관한 토론을 하라는 것인가? 토론이 뭐지? 그 날의 주제는 이랬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핵폭탄은 과연 필요한가?"     


일본이 미국에서 투하한 두 발의 핵폭탄 때문에 기브업 한 것을 대충 알고 있던 나에게 핵폭탄은 그저 달달한 달고나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런 나이였다. 파리채로 세게 맞거나, 물 묻은 걸레로 얼굴을 강타당했을 때 느끼는 아픔이 고통의 전부였던 시절... 사람이 죽으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대미지가 온몸에 가해져야 하는지 전혀 모르던 그 시절. 핵폭탄은 그저... 나쁜 놈들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즐거운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었다. 혓바닥에 침까지 묻혀가며 나는 괴상한 나만의 논리를 펼쳐갔다. 대충 기억해보면 이렇다.   

  

"미국은 좋은 나라다.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북한 괴뢰군을 물리치는데 너무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한방은 핵폭탄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의로운 국가가 핵폭탄을 가져야 나쁜 국가들을 응징할 수 있음으로 핵폭탄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주인은 당연히 미국이 되어야 한다..."

머... 이렇게 발표를 했던 거 같다. 선생님은 그냥 웃으셨다. 그러고 물으셨다.      

"그럼 핵폭탄이 없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게 더 좋다고 보냐?"     

"예..."     

당시 나는 왜 우리나라가 미국의 53번째 주가 되지 않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힘도 없는 나라가 편안하게 살려면 미국하고 합병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말이다. 엄마한테도 그런 말을 했다. 그러자 엄마는 생긴 게 달라서 안되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그 질문에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한마디 하셨다.      

"쟤는 커서 뭐가 될라고 저러나.... 참"      



애니웨이... 미국은 그때부터 나에게 상당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초등학생 3학년이 되기 전에 미국은 존재감조차 없는 나라였다. 나에게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커다란 학교 벽의 문구와 짙푸른 바다 그리고 우리 집 앞마당 구슬치기 구멍이 세상의 존재감 모두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에게 미국은 정의로운 이상한 나라였다. 왜 지네 국민들까지 죽여가면서 남의 나라 전쟁을 도와주는 것일까? 그 대답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세계의 정의를 지키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국민의 생명을 버려가면서 남의 나라를 돕는다는 것이었다. 우헐 젠장할.. 그들은... 미국은... 슈퍼맨이자 어메이징 어벤저스였다.      


나는 미국에 곧 반해버렸다. 우리나라는 엿 같았으며, 미국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핵폭탄은 그렇게 나에게 순종적으로 다가왔다. 뭔가 빨간색을 뒤집어쓴 괴뢰집단과 소련, 중국 등 이런 공산당 국가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30여 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엿같은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미국이 망하길 기다리는 오매불망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북한산에 올라가 태평양 너머 거대한 나라를 저주하는 외로운 파르티잔이 되었다.  어느 날 커티스 핸슨 감독의 [Too Big to Fail, 2011]을 보았다. 갑자기 미국이란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영화였다. 



'팍스 로마나'라는 말이 있다. 식민지 자제들이 로마에 가서 공부를 하며 눈깔이 돌아가 자신의 모국이 로마의 엄연한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앞잡이로 정치 세력화되어 식민지배를 토착화시키는 반문명적 침탈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임금을 없앤 국민들이 섬길 사대부가 없어지자 미국을 사대주의 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모기지론 부실로 미국 경제가 파탄이 나던 2008년 당시 미국 재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축으로 삼고 있다. 내용은 다들 아시는 대로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축이 되고 뒤이어 터진 AIG 구제금융, 그리고 심지어 사회주의 정책인 은행의 국유화까지 감행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비열함을 음울하게 보여준다.      



언듯 보기에, 전 세계의 금융위기를 미국 자체 내에서 어느 정도 해결한 모양새로 영화는 흘러가지만... 결국은 영화 제목처럼 서민들의 대출을 씨받이로 삼아 거대한 부를 치부했던 주요한 거대은행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새로운 카르텔을 이뤄내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고 보면, 그들 스스로 이 거대한 신 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이 뭐가 문젠지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현재 전 세계 금융시스템은 한마디로 도미노 구조로 되어 있다. 미국의 모기지론 파생상품이 한창 유행할 때 전 세계 국가들은 모든 돈을 털어 넣어 이 시스템에 동반 승차했으며, 이러한 구조는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힘 약한 나라들이 곧바로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곧 죽을 것처럼 미국 내 글로벌 금융위기를 묘사하는데. 여기서 약간의 모순이 드러난다.      


영화의 줄기를 이끌어가는 미국 재무장관 헨리 폴슨을 연기한 윌리엄 허트


다 아는 사실이지만...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는 놀라운 금융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오일달러!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러를 찍어 전 세계에 마구 뿌려댈 수 있다.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강점을 이용해 미국은 모기지론 사태에 있어서도 강제로 거대은행의 지분을 국가가 인수함으로써 - 자본주의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애덤 스미스가 봤다면 혀 깨물고 죽었을- 총체적인 주가 하락과 신용부실을 일단은 안정화시킨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러한 작금의 공황 직전 사태를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국 거대 금융의 카르텔이 드러난다. 그들은 거대 자본을 이용해 전 세계 시장 곳곳에 신용대출을 뿌릴 대로 뿌려놓고,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 그다음, 경제가 침체되고 대공황이 우려되는 사태를 만들어 시장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시장은 금방 혼비백산하고 개 난리를 치며 고꾸라진다. 그런 다음 정부가 다시 나선다. 엄청난 인수합병과 M&A가 뒤따라 이어진다.

                                 

영화는 망해가는 리먼브라더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CEO인 리차드 펄드는 괜찮다고 하지만.......

  

이를 통해 미국의 거대 금융 카르텔은 입에 침도 안 묻히고 자본과 시스템을 통합한다. 거기엔 보이지 않는 천문학적인 이익이 동반된다. 미국이 부실해서 만든 이러한 불황의 도미노는 허약한 개도국에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다. 곧바로 주가 폭락이 끝없이 이어지고 부실한 금융권은 뱅크런을 경험한다. 디폴트 위기에 닥친 국가들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미국의 거대 금융 카르텔은 미소를 지으며 개도국의 금융개혁을 요구한다. 이 개혁의 골자는 다름 아닌 국가 기반사업인 전기, 통신, 수도, 발전, 금융, 연금 등의 매각을 요구한다. 힘없는 개도국은 눈물을 머금고 국가기반산업을 해외기업에 매각한다. 수혜를 받은 글로벌 기업은 점차 사용료를 올리고 폭리를 취해도 그 나라 국민들은 꼼짝달싹 할 수 없이 돈을 내야 한다. 의료보험, 국민연금은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초토화된다. 아파도 병원 못 간다. 국민들의 생활은 초토화된다.      

                                                                            

리먼브라더스가 망하면 은행들이 줄도산 할거라 우려하는 헨리 폴슨이 도움을 청하려는 바로 이사람. 워런 버핏이다.


모기지론도 그렇다. 파생상품이라는 것이 아무리 시장에서 잘 팔리고 부동산 경기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상, 금융감독기관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으며 이를 무리하게 제어하지 않은 것은 결론적으로 미국, 그것도 연방준비위원회를 위시한 금융권력의 카르텔이 일부러 그런 환경을 조장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황의 후폭풍은... 생각만 해도 오싹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워런 버핏의 슬쩍 지나가는 한마디에 다우지수가 널뛰기를 하고 전 세계 환율조차 삐걱거리는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이란 놀랍기도 하지만 실제로 조작하기도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놈만 입 꾹 닫으면 쏟아지는 돈으로 태평양을 덮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대 금융대란에 딱히 좋은 방법이 없는 상태로 나오는 버냉키 역의 폴 지아메티. 그의 걱정뒤에는 사실상 악마의 미소가 숨어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매우 긴장감이 있고 스피디하다. 재밌기까지 하다. 실제 공황 직전 상황까지 간 미국 금융시스템의 멘붕상태를 적나라하게 그렸다. 워런 버핏의 한마디도 촌철살인이다. 재무부 장관이 건 전화벨이 울리는 데 받지 않자, 손녀가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얘네들은 뭐든 다 중요하다고 하지... 나 참"이라고 투덜거린다.     


그리고 이 영화의 나머지는 다 개구라다. 개구라엔 머가 답이지? 몽둥이다. 미국은 실제로 몽둥이로 흠칫 두들겨 패도 시원찮은 나라 중 하나다. 강대국의 이점을 이용해 전 세계의 이권이 되는 곳에 피를 뿌려대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나라에도 물론 정의로운 마이클 샌들 같은 이들도 있다지만. 그런 건 위안이 될 턱이 없다. 물론 그들의 공익이 우선이겠지만도... 우리는 이제 영화에서도 미국에 속고 있음이 안타깝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우리를 식민지화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늘리는 신 자유주의 종속 국가 중 하나로 철저하게 만들고자 하는 글로벌 깡패 들일뿐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정말 위대한 뮤지컬 쇼이자, 감동과 전율이 폭발하는 진정한 버라이어티 쇼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폭리를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스템을 고발하는 듯한 영화까지 만들어 한번 더 개도국 국민들의 뒷주머니를 털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나 화가 난다. 이제 핵폭탄은 도대체 어디에 써야 하는지, 초등학생 때 썼던 공책 여분에다가 다시 곰곰이 적어본다.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나는 미국이 언젠가는 망하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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