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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Dec 25. 2016

새로운 인생을 대하는 태도 <오슬로의 이상한 밤>

<오슬로의 이상한 밤, 2007_밴트 하머>

<오슬로의 이상한 밤, 2007_밴트 하머>

     

영화의 주인공 오드 호텐은 기관사다. 그의 삶에서 40년 동안 변함이 없는 건, 매일 같은 시간에 운행해 온 오슬로-베르겐행 기차 노선뿐이다. 그는 은퇴할 날이 다가올수록 삶은 막막해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런데 은퇴하기 하루 전, 그는 은퇴 파티에서부터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겪게 된다. 그 사건으로 그는 결정적으로 평생에 단 한번 마지막 기차 운행 시간을 놓치고 마는데... 낙심한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엉뚱한 사건들은 계속해서 벌어진다. 과연 오드호텐은 과거의 단순하고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벤트 하머. 노르웨이 산드피요르드 출생으로 주요작 [키친 스토리](2003), [삶의 가장자리] (2005) 등이 있다.


우리에게 좀은 익숙한 영화 맷 딜런 주연의 '삶의 가장자리'를 연출한 벤트 하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노르웨이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원제는 [O' Horten]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의미한다. 북유럽의 진주라고 불리는 노르웨이 영화답게 영화는 내내 아름다운 북유럽의 설경과 밤거리를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아무리 달려도 마주치는 열차 하나 없는 노르웨이의 설경을 따라 달리는 기관차는 마치 설경을 넘어 낙원으로 향해 달리는 느낌마저 준다.      



주인공이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철로는 그야말로 설원 그 자체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영화 전체의 느낌을 복선으로 잔잔하게 깔아준다. 마지막 운행을 지각으로 놓치고 안타까워하는 그의 얼굴에 흐르는 기운은 앞으로 살아갈 막막한 노후의 인생에 대한 생각뿐이다. 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창밖을 보고 지내는 어머니와 아무도 없는 차가운 실내공기가 느껴지는 독신생활의 작은 보금자리. 침대가 아닌 기다란 소파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노후한 그의 삶에는 작지만 온화하게 느껴지는 희망이 하나 있다. 처음과 끝 부분에 등장하는 베르겐에 살고 있는 그녀가 유일한 희망이자 소망이다.     


나이가 들어 희망이 없어지고 노쇠해지면 어떤 상태가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은 은퇴라는 것이 삶의 역동성에서 비껴가는 덤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은 그 시선을 비웃는다. 여기에서 오드 호텐이 느끼는 처음의 감정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그가 은퇴를 하고 나서 갑자기 야밤에 황당하게 일어나는 다소 엉뚱하지만 유쾌한 소동(에피소드)들은 당연히 지루하게끔 상상되던 노년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희망을 얻기 시작한다.      


황당한 사건으로 연결되는 주인공의 송별회 자리=


쳇바퀴 돌듯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내야 했던 지난 세월을 그는 후회한다. 삶에 있어서 도전은 시와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노인의 집에서 가져온 오래되고 낡은 스키를 신고 어머니의 꿈이었던 스키점프를 하기 위해 한 밤중에 스키 점프대로 올라가 몸을 던진다. 그의 몸이 공중에 올라 달 덩어리를 향해 날아가면서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 달 덩어리는 사실은 하얀 설원을 통과하는 깊은 터널이었던 것이다. 그 터널을 지나온 주인공 오드 호텐은 사복을 입고 노인에게서 데려 온 개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기관사 생활을 하며 평생 왕복을 하는 거점이었던 베르겐. 이제 그는 다시 오슬로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47년간 그래 와야 했던 인간의 당위성, 합리적인 사고, 일상의 영위, 사람의 가치와 보존을 송두리째 던지는 새로운 도전이다. 노인이 된 오드 호텐의 웃는 모습은 전체 영화에서 처음 부분에 슬며시 보인 이후, 비로소 마지막 부분에서 완성된다. 감독은 그 웃음을 천천히 클로즈업한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른 말이 있었다. 바로 로마시대 철학자이자 논객이었던 키케로가 '노인론(OLd age)'에서 주장했던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첫째, 노년이 되면 일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박.      

“육체는 쇠약하다 하더라도 정신으로 이뤄지는 노인의 일거리는 없는가. 큰 일은 육체의 힘이나 재빠름이나 기민함이 아니라 사려 깊음과 영향력과 판단력에 의해 행해진다.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그 힘에 맞춰하려고 하는 바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     


둘째, 쾌락을 즐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박.      

“이것은 비난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칭찬거리다. 플라톤은 쾌락을 악을 낳는 미끼라고 했는데 이런 미끼와의 전쟁에서 자유로우니 노년이 얼마나 좋은가”.      


셋째.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박.      

“노년의 결실은 앞서 이뤄놓은 좋은 것들에 대한 풍부한 기억이다. 봄은 청년기를 의미하고 농부에게 미래의 열매를 약속하지만 남은 시기도 열매를 추수하고 저장하는 일에 알맞다”.     


새로운 인생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깨우침의 문제인 것이다. 즐거운 인생을 찾으려고 노력해본 사람은 그것을 안다.  주인공이 겪었던 쓸쓸한 은퇴와 남은 생의 외로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그를 심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기도 했지만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반짝이는 문이기도 했다. 늘 그렇듯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교훈을 던져주는 잔잔한 보석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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