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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23. 2017

지리산 골짜기를 돌아 통영 앞바다에 너울지다

오랜만에 지리산 화엄사를 찾았다 



여기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두류산이라고도 불린다. 몇 년 전부터 이 지리산 종주를 준비하다가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다름 아닌 대피소 예약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체력이 소진하여 감히 엄두를 못 내다가 폭염을 피해 지리산을 다시 한번 찾았다. 나름 감회가 새롭다.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일주문 편액은 1636년 화엄사 중건 때 인조의 숙부 의창 군 이광이 썼다. 의창군은 당시에 명필로 인정을 받았던지 대웅전 편액도 그의 작품이다. 화엄사는 현재 조계종에 속해있지만 통일신라시대부터 화엄사상을 널리 알려온 절이다. 하지만 곳곳에 콘크리트 전각들이 들어서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옥에 티다. 스님들이 염불 대신 돈을 탐하면 천년고찰도 순식간에 무력화되는 건 수덕사를 보고 익히 안타까워 한 바 있으나 화엄사도 예외는 아닌 듯.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선다. 스님들과 신도들의 모임 장소로 쓰이는 이층 누각인 500년 역사의 ‘보제루'를 돌아서면 화엄사의 중심 영역이 등장한다. 사찰들은 일반적으로 누각 아래를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게 되해 있지만 지리산 화엄사는 일층 기둥을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이는 각황전, 대웅전, 대 석단들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절 중심 영역의 경관을 강조하고자 한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보제루는 주변의 콘크리트 전각들 사이에서 장식을 거의 하지 않고 단청도 칠하지 않은 상태로 창건 시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보제루 뒤편 마루에 앉아 화엄사 각황전을 올려다본다. 때마침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각황전은 국보 67호로 우리나라의 불교 전각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기로 손가락에 꼽힌다. 현재의 전각은 1702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각황전 마당 앞에 보이는 저 석등은 높이가 무려 6m 40cm나 되는 현존 석등 중에 제일 크고 웅장하다. 이는 각황전보다 훨씬 앞선 9세기 말 것이어서 국보 서열도 12호로 각황전보다 긴 역사를 자랑한다. 화엄사 대웅전의 탁 트인 넓은 마당은 주변의 여러 전각 지붕들이 에워싸고 있어 흡사 연꽃의 우아한 곡선을 그려내고 있다. 이내 마음이 아늑해진다.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대웅전의 석단 아래 양쪽으로 보물로 지정된 9세기 말 서오층 석탑과 동오층 석탑이 굳건하게 세월을 지키고서 있다. 섬세하고 화려한 서오층 석탑이 불국사의 다보탑을 닮았다면 동오층 석탑은 단순 담백해서 마치 석가탑을 연상시킨다.        



각황전 옆 마당에서 약수를 들이켜고 앉아 망연히 담벼락을 바라본다. 화엄사라는 이름은 '세상의 아름다운 꽃들은 물론 이름 없는 온갖 꽃들을 포함한 꽃들의 장엄'을 뜻한다는 말을 되뇌며 그 어렵고 순망한 화엄경의 이치를 고졸해본다. 나 같은 백치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의 세계 이리라. 세상을 버리고 나를 해탈하며 얻어내는 억겁의 해방은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 것인가. 천지에 모든 것이 아름답고 그 진위가 지극해 차마 모자란 것이 없다는 진리는 또 얼마나 벅찬 것인가. 화엄사 물 맛이 그윽한 이유를 알겠다.    



이쯤에서 각황전의 유래에 관해 슬쩍 들여다보자. 각황전의 원래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화엄사를 중수하면서 처음 전각을 지었을 당시는 석가모니의 등신불만한 황금 부처상인 장육존상을 봉안하고, 벽에는 화엄경을 돌에 사긴 석경을 두르고 ‘장육전'이라 불렀다. 부처의 몸을 일컬어 ‘장육금신'이라 말한다. 당시에는 금색 장육 불상을 모시는 신앙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이 장육전은 다른 전각과 함께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린다. 이후 1636년 대웅전이 중건되고, 장육전은 1702년(숙종 28)에 중건되었다. 장육전 완공 후 숙종은 이 전각에 ’각황전‘이라 사액했다.         



숙종이 전각을 중건하고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내린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장육전이 불탄 뒤 그 재건을 고민하던 벽암스님은 제자인 계파 스님에게 중책을 맡겼다. 계파 스님은 중건 불사 성취를 위해 대웅전에서 100명의 스님이 백일기도를 올리게 했다. 자신은 기도승을 시봉 하는 공양주를 자원해 밥 짓고 물을 기르며 기도승들을 봉양했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에 노장 스님이 말했다. “지난밤 꿈에 하얀 노인이 나타나 장육전 중건을 위한 화주승은 물 묻은 손으로 밀가루를 만져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는 사람으로 삼으라고 일러주었소.” 이에 따라 모든 스님에게 차례로 손을 물에 넣었다가 밀가루를 만져보게 했다. 그러나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계파 스님이 시험해본 결과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았다. 계파 스님은 할 수 없이 화주승을 맡게 되었으나 수행만 했던 터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그날 밤 대웅전에서 밤새도록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노인이 나타나 “그대는 내일 아침 바로 화주를 위해 길을 떠나라. 그리고 제일 먼저 만난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라고 말했다.          



스님은 용기를 얻어 날이 밝자 지체 없이 일주문을 나서 마을 어귀로 향하는데, 뜻밖에도 마을 일대를 돌아다니던 걸인 노파가 절을 향해오고 있었다. 스님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으나 노파에게 간곡하게 시주하기를 청했다. 계파 스님의 청을 들은 노인은 한 동안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더니, 화엄사를 향해 합장하고는 “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룩하겠으니 문수보살이여, 가피를 내리소서"라고 한 뒤 길옆의 늪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스님은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고 죄책감을 못 이겨, 그 길로 전국을 떠돌다가 5년 후에는 한양까지 가게 되었다. 하루는 창덕궁 앞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어린 공주와 마주쳤는데 공주가 스님을 보더니 반가워하며 달려와 누더기 자락에 매달렸다. 그리고 태어난 이후 한쪽 손을 한 번도 펴지 않았던 공주는 스님이 그 손을 만지자 손을 폈다. 그 손바닥에는 ‘장륙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거지가 공주로 환생했던 것이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숙종은 스님을 대궐로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들었고, 이에 감동한 임금은 장륙전 중건을 명했다. 그리고 전각 이름도 ‘왕을 깨우쳐 전각을 중건하게 했다’는 의미로 각황전으로 바꾸도록 했다. 이는 전해오는 이야기다. 각황전 상량문 기록에 의하면, 각황전은 숙종의 아들로 나중에 영조가 되는 연잉군과 그 모친인 숙빈 최씨가 대시 주자인 것으로 되어 있다.    

 


각황전 마당 오른쪽엔 보물 300호 사자 탑이 서 있다. 사천왕상이 사방으로 새겨진 네모난 기둥을 사자 네 마리가 머리로 받치고 있는 독특한 석탑이다. 절에서는 노주라고 부르는데 벽에 붙어 있지 않고 전체가 노출된 기둥이라는 뜻이다. 사리를 모셨거나 공양대로 썼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화엄사 입구 계곡에서 봄바람에 널브러진 할매 보살들을 바라보며 화엄사를 뒤로 한다. 지리산 274킬로미터 들레길 자락의 입구를 장엄하게 지키고 있는 화엄사는 천년 동안이나 넉넉한 품으로 사람들을 보듬고 있다. 생활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사실 재미와 볼거리보다는 마음을 쉴 수 있는 힐링 공간이 필요하다. 화엄사는 여느 사찰처럼 도시의 삭막함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스님과의 대화, 숲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여유. 지리산 화엄사 템플스테이를 통해 자연 속에서 가려진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화엄사를 뒤로 하고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고개, 성삼재로 향한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갯마루에 주차장과 휴게소, 전망대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걸어가는 코스가 산책하기에 일품이다. 늦봄의 따사로움이 성삼재에 이르니 시원한 바람이 자연 에어컨을 방불케 한다. 실로 이것이 여행이로구나 하는 감동이 일렁인다. 지리산 종주라 함은 보통은 여기 성삼재를 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 노고단~임걸령~삼도봉~토끼봉~명선봉~형제봉~촛대봉~연하봉~제석봉~천왕봉의 지리산 주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을 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삼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노고단 정상까지 산책을 한다. 시간은 대략 40여분 정도 걸린다. 산책길로 조성되어 이즈음에는 다양한 지리산 야생화를 만날 수 있으며 가는 길 곳곳에 쉼터와 계곡이 졸졸 흘러 재미를 더 한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면 컵라면은 취급하지 않고 그냥 라면만 파는데 취사도구를 가져가면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다. 물은 지천에 널려 있다. 숲에서 들리는 다양한 새소리가 자연 속 힐링을 도와주고 나무 가지가 햇빛을 막아주어 산책을 시원하게 배려해준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걸으면 좋을만한 추천 길이다. 그럼 함께 걸어가 볼까나.         

 


성삼재-노고단 탐방로 길은 무엇보다 지리산 야생화를 만나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원추리, 기린 꽃, 패랭이꽃, 동자꽃, 노루오줌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로감을 덜어준다. 단 한 여름 성수기에는 탐방시간이 정해져 있어 시간을 지켜 일정한 인원만 탐방하는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어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땀을 오히려 식히는 아름다운 힐링 길. 여기서부터 지리산이 시작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은 이들에겐 이 길이 마지막 코스이기도 하다. 언제 또다시 올 날을 기대하며 그때는 반드시 8리터 배낭에 종주 준비물을 가득 싣고서 돌아오리라 다짐해 본다.          


두류산이 가장 크도다 
신선이 표피 자리 펼쳐 놓았네 
나무 끝에 두 다리가 솟고 

구름 속에 몸 반쪽만 내놓았네
어떤 이는 삼무에게 곤란당했음을 기록하고
혹은 진나라를 피했다고 말하네 

어찌 그윽하게 살 곳이 없어
세상 풍진 속에 백발이 새로워졌나.          

 一牧隱李稽                    



지리산에서 하루를 묵고 반나절을 들여 지리산과 진주를 가로질러 남하했다.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이 이곳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 통영은 이 여름 적조현상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었다. 신이 내린 천연자원의 보고라 불리기도 하는 통영은 그야말로 산해진미의 고장으로 예로부터 천혜의 비경과 더불어 풍부한 생물자원으로 인해 먹고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도 전통의 다찌집부터 충무김밥 등 전통음식들이 건재 해국 내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로 등장하는 곳이다.    



통영 바다에 이른 해무가 드리워진다. 그 위로 잔잔한 갈매기 날고, 면면에 튀어 오르는 멸치 떼 위로 여명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이 바다에 음악이 출렁인다. 바다 여울을 눈에 담고 있으면 귓가에 일렁이는 불멸의 음악. 그렇다. 이곳은 바로 윤이상의 고향이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 고국에서 추방된 윤이상이 결국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먼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후 통영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국제음악제가 생겼다. 이제 그의 명예는 사회적으로 복권이 되었고 작곡가로서 윤이상의 위치나 명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낮은 현대음악의 한계 때문에 그가 어떤 곡을 남겼는지 우리는 아직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했다. 평소 잘 아는 선배님이 꽤 오래된 클래식 마니아이신데, 윤이상의 음악을 이렇게 표현한 게 기억난다. “윤이상은 베토벤과 바흐에 견줄 수 있는 세계적인 클래스다"라고.       



1592년, 이순신 장군은 통영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펼쳐 왜적 함대를 무참히 격파한다. 그 유명한 한산대첩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순신과 통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다. 그의 일생에 중요한 스토리텔링이 바로 이 통영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제영은 충청, 전라, 경상도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본영인 삼도수군 통제영을 줄임말로 1593년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충무공이 한산도에 세웠원고 다. 1895년(고종 32년) 병영이 폐영될 때까지 292년간 조선수군의 총지휘부로 부동의 자리를 유지해왔으며 209명의 통제사가 재임했다. 충무공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과연 어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소름이 돋는다.      



통영의 곡식은 바다에서 나온다. 해남 진미다. 도대체 저 바다에 필 공공 숨겨놓은 것일까? 예로부터 통영음식은 전국에서 알아준다. 조선시대 통제영 때부터 통제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음식 솜씨에 궁중음식의 전통이 접목돼 해 일명 ‘통영상'이라고 하면 전국에서도 제일 ‘큰 상'으로 알아줄 정도였다. 최근까지도 자식 혼사 상 차리기에 기둥뿌리가 흔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통영의 음식은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멋과 격식 또한 매우 높다. 충무김밥, 통영 꿀빵, 욕지고구마, 통영 멸치, 통영 멍게 등 통영의 다양한 맛은 말 그대로 바다에서 건지고 바다에서 요리하는 것이리다. 통영의 밤은 일명 ‘다찌'로 통한다. 통영에서는 예부터 술을 주문하면 안주는 제철에 나는 해산물과 나물 등을 마음대로 안주로 먹을 수 있었던 지역 술 문화가 조금씩 진화해 오늘의 통영 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통영 다찌'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음식문화는 일본어인 다찌노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일부 통영 사람들은 '다 있지'라는 말이 줄어 '다찌"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행객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다찌집이 더 이상 서민적인 술집이 아니라는데 있다. 이웃들이 얼굴을 익히고 나서야 주인장이 알아서 상을 차려준 배려의 음식문화는 이젠 획일적인 코스 요리로 전락했다. 유명한 다찌집들에서 기계적으로 내오는 접시들을 대하게 되면 잔잔한 정이 사라진 시대의 흔적만을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오히려 서호시장이나 중앙시장에서 소쿠리 째 자연산 횟감이나 돌 멍게, 전복을 사서 직접 숙소에서 썰어먹는 게 훨씬 속 편하고 알뜰한 술자리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광과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미록도 미록산 정상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 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 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시인 정지용이 8·15 해방 후 청마 유치환의 안내를 받아 해발 461m의 미륵산에 올라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적은 기행문 중 일부다. 시간이 흘러 600만 명이 넘는 후세들이 정시 인과 똑같은 눈의 호사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발품을 팔아 미록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 미록산 정상을 운행하는 ‘하늘 버스인 미록산 케이블카 덕분이다. 



지리산과 더불어 통영은 도시의 형태나 길의 구조, 맛과 전통에 있어서 꽤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없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투박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세련된 문화로 무장하고 있으면서도 잔정 또한 풍부한 곳이었다. 특히 충렬사 부근 대교동에서 맛본 ‘동네 충무김밥’ 아주머니의 친절함은 여행객의 누적된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맛도 그렇고. 너무 짧은 일정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시간 되면 꼭 다시 찾고 싶은 한려수도의 진정한 수도. 통영이었다.     






통영 관련 사이트

통영시청 www.tongyeong.go.kr

통영 국제음악제 www.timf.org

청마문학관 www.gnty.net/literature/     


여행 팁      


1. 충무 할머니 김밥

처음 선원들 식사용으로 만들어 팔던 원래 보통 김밥이었지만 쉽게 변질이 되는 것을 고민하다가 김밥과 내용물을 따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슷박(무김치)과 주꾸미 무침(귀할 땐 오징어무침)을 곁들여 먹는 맛은 일품이다. 원조 3대 충무 할머니 김밥 055-645-9977, 뚱보 할머니 김밥 055-645-2619, 한일 김밥 055-645-2467     


2. 쑤기미탕

쑤기미는 삼식이와 비슷한 생선으로 통영에서만 잡혀 거의 전량 일본으로 수출이 된다. 독이 있는 등 쪽의 가시가 특이한 생선으로 통째로 끓여 내어 약간의 소금간과 고춧가루를 곁들이면 아침 해장 매운탕으로 좋다. 진미식당 055-643-0240, 이 집은 자연산 쑤기미만으로 요리를 한다. 쑤기미탕 12,000원           


3. 굴

전국 최대의 굴 산지인 통영 일대는 굴 요리로도 유명하다. 요즘에는 냉동기술이 발달해서 1년 4계절 굴을 즐길 수 있다. 향토집 055-645-4808     


4. 멍게 유곽 비빔밥 도다리쑥국

봄에 맛볼 수 있는 도다리쑥국은 도다리를 무를 넣고 맑게 끓여 자연산 쑥을 넣어 같이 낸다. 간은 소금과 후추로만 해서 쑥의 향과 도다리의 담백한 맛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멍게의 향과 유곽(대조 개)의 씹히는 맛이 어울리는 음식으로 멍게 유곽 비빔밥도 별미다. 통영 맛집 055-641-0109, 멍게 유곽 비빔밥 8,000원, 도다리쑥국 10,000원     


5. 실비(다찌) 집

통영에만 있는 대폿집으로 술값만 있고 안주 값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소주 1병 1만 원, 백주 6000원에 푸짐한 해산물 안주를 즐길 수 있다. 굉장히 훌륭하다. 한바다 회 실비 055-643-7010, 울산 다찌 055-645-1350     


6. 전혁림 미술관

서양화가 전혁림의 삶과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운이 좋으면 95세의 전혁림 화백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다. 1층부터 3층까지 있는 전시 공간은 운영자의 세심한 손길이 흠뻑 느껴지는 공간으로 아주 인상적이다. 055-645-7349     


7. 통영 국제음악제

작고가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를 재조명함으로써 통영이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국제적인 음악축제이다. 매년 3월부터 시즌별로 운영이 되고 있다. (재)통영 국제음악제 사무국 055-645-2137     

8. 한려수도 케이블카

도남 관광지 하부정류장에서 시작하여 미륵산 8부 능선까지 약 2km를 운행한다. 이동하면서 보는 미륵산의 풍광과 전망대에서 보는 한산대첩의 현장과 한려수도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통영관광개발공사 055-649-38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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