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맛(秋刀魚の味),1962_오즈 야스지로>
영화 <꽁치의 맛>은 평생을 미혼으로 살아온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따뜻한 일상적 시선과 마음이 담겨 있는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본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그는 1903년 12월 12일에 태어나 1963년 12월 12일 사망하기까지 총 55편의 작품을 남겼다. 1927년 데뷔작 <참회의 칼>부터 1962년 유작 <꽁치의 맛>까지 오즈 야스지로의 적지 않은 영화들은 그의 일생의 기록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한 편, 한 편은 곧 전작이 되고 전작은 한 편의 세계를 모두 담고 있다. 그가 영화를 설명하면서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두부집에서 돈카쓰를 만들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일"
'이 말은 사실상 오즈 야스지로가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영화를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유언과도 같은 충고이다. 그에게 전통과 모던, 두 개의 일본, 전쟁 전과 전쟁 후, 하지만과 하여튼이라는 그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낯선 슬픔이 감돈다. 왜냐하면 두부집은 결국 사라져 가면서도 그 집은 살기 위해 돈카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언젠가 인생은 영화가 될 것이다] 중에서
말은 그렇지만 그가 만든 돈카쓰는 다분히 전통적인 두부 맛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 두부의 슬픈 맛은 그의 유작인 <꽁치의 맛>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삶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누군가에겐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삶의 정점에 오즈의 시선이 멈춘다. 우리들은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사실 서로에 대해 일상적으로는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지 않는다. 관계는 인식의 한 부분이고 그것을 인정한 이후로는 그다지 할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무심한 일상 속에서도 나의 상처는 너의 상처이고, 나의 후회는 바로 당신의 후회로 이어진다. 오즈 야스지로는 그 비애를 일상 속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대수로울 것 없는 말속에 녹여낸다. 1962년에 이러한 삶의 디테일을 영화라는 도구를 이용해 표현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평소 홀로 살아온 감독의 유년시절의 회상이 그의 모든 영화 전 편에 아내가 없는 가부장의 주인공으로 다시 환생한다.
영화 <꽁치의 맛>의 주인공은 딸 미치코와 함께 살고 있는 초로의 신사 히라야마다. 히라야마는 친한 친구로부터 딸을 결혼시키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딸은 그저 어리게만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은사와 친구들과 정겨운 술자리를 가진 히라야마는 완전히 취해버린 은사를 집까지 배웅하기 위해 은사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 옛날 아름다웠던 은사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걱정하며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을 보고 딸 미치코를 떠올리게 된다. 히라야마는 결국 딸을 결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친구들이 추천하는 청년과 결혼시키려 결심하는데....
오즈가 영화 속에서 주목하는 주인공들은 초로한 중년의 남성들이다. 자신의 분신일 수도 있는 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계절은 딸이 지니고 있는 봄 같은 계절과는 동떨어진 가을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가족이지만 그들이 공감하는 정서는 아주 미세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오즈 감독이 1960~1962년 사이 가을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가을 햇살(1960년)', '고하야가와가의 가을(1961년)', '꽁치의 맛(1962년)'이다. 세 편 모두 가정의 해체가 주요 주제다.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오즈는 일본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점차 가족의 해체가 진행되는 그 시점을 주목한다. 마지막 엔딩에 적막하게 혼자 않아있는 히라야마의 뒷모습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는 딸의 미래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오즈는 이러한 일상적 대비를 인간의 눈높이에서 바라봄으로써 비감 어린 슬픔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때로 가장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복잡하게 보이는 인생은 갑자기 아주 단순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드라마를 영화로 보여주는 것은 쉽다. 배우들이 웃거나 울지만, 단지 설명하는 것이다. 감독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다. 나는 드라마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을 느끼게 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이 감동을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일상이라는 무심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사소하지만 조막조막한 이야기들을 낮은 시각과 사각형의 프레임에 온전하게 밀어 넣고 있다. 오즈의 미장센은 사각형의 화면 안에 계속해서 사각형의 프레임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히라야마의 집과 문들 그리고 방과 창은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가족과의 만남의 장소로부터 엔딩에서 히라야마가 앉아있는 마지막 엔딩씬에 이르기까지 가족이란 모티브의 '부재'와 '상실' 이란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포근하지만 언듯 보면 갇혀있는 듯한 그 단순한 프레임이 주는 대비적 이미지는 극의 진행에 따라 관객의 마음을 상징하는 주요한 프레임(공감)으로 서서히 살아난다. 그리고 영화가 흘러가는 데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나누는 사소한 일상의 대화를 따라가다가 엔딩에서 엎어져서 한번 울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각형 프레임이.. 전형적인 가정집 풍경이 뜻밖에 선사하는 다다미 샷의 극치다.
영화 <꽁치의 맛>에는 꽁치가 없다. 꽁치는 가을과 노년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상징한다. 시간은 삶을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살아내야 하는 숙명적인 인생이라는 초췌함과 쓸쓸함. 그리고 떠나고 이별하고 다시 그 감정의 파편을 수습해야 하는 연속적인 고통과 미련. 걱정, 여운, 초로함까지.. 대가의 수작을 보는 것은 그래서 언제나 즐겁다. 그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이처럼 효용적인 가치가 있는 고사성어인지 불현듯 다가오는 영화다. <꽁치의 맛>을 보는 순간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잊을 수 없는 엔딩의 마지막 장면. 아주 오랫동안 나를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