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포천-관인면] 행복을 태운 시골버스

CHAPTER 1_ 추억을 달리는 시내버스 (서울-춘천)

by 다모토리


행복한 포켓몬을 만나다


포천시 소흘읍에서 출발하는 일반 59번 시내버스는 포천에서도 다소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관인면까지 운행하는 버스다. 하루에 운행 횟수도 적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버스가 아니기 때문에 버스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다. 아침시간에는 배차시간이 짧다고는 하지만 도시의 시내버스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해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간신히 버스에 오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차에 오른다. 승객들 중 근처 학교로 등교하는 동네 아이들과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궁금해서 어르신께 물어보니,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오늘이 마침 군 보건소에서 무료 독감백신을 접종해주는 날이라고 해서 모두들 한꺼번에 나오셨다고 한다. 시내버스가 마치 동네 경로당이 된 것 같은 북적북적한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오랜만에 만나는 어르신들이 건네는 반가운 인사와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이 깨알같이 쏟아져 나온다. 매일 같은 지역을 다니고 같은 승객들이 부대끼며 만나는 이 버스는 말 그대로 공동체 그 자체였다. 승객들이 부산하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버스는 포천시청을 떠나 곧바로 북쪽으로 이동해 신평리를 거쳐 백로주 유원지를 지난다.



나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내 옆으로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와 초등학생인 듯 보이는 꼬마가 함께 앉았다. 덜컹거리지만 시골버스답지 않게 광속의 스피드로 질주하는 마을버스에 처음엔 적응이 안 돼서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으려니까 옆에 계신 어르신이 슬쩍 한마디 하신다.


“겁나슈? 우린 나이가 먹어서 움직이기가 좀 굼뜨는데, 이 버스는 맨날 이렇게 빨리 달려, 허허”


딱 봐도 외지인처럼 보이는 내가 뜬금없이 빠른 마을버스 속도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가 보이자 농담을 섞어 차분하게 달래주신다. 그렇군,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다. 어르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농담에 같이 웃어주며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그 사이 옆자리에 앉은 꼬마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도 뭔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은근히 궁금해 슬쩍 들여다보니 요즘 한창 유행하는 포켓몬스터를 주제로 한 캐릭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광경이 궁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꼬마 옆에서 넌지시 책을 바라보던 옆자리 할아버지도 도무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이에게 다가와 묻는다.



“꼬마야, 이거 무슨 책이냐?”


“포켓몬 책이요”


“이게 그렇게 재밌니? 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포켓몬 같은 사람요”


“허허... 고 녀석 보게. 근데 포켓몬이 대체 뭐냐?”


꼬마 아이의 대답이 의외로 당돌해 보이자 부인되시는 분이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투로 할아버지의 옆구리를 툭 친다. 그리곤 두 분이 헛웃음을 나누며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는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 순간, 아주 잠시였지만 나는 뭔가 놀라운 경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돌하게 포켓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아이를 보고 내 어릴 적 꿈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릴 적 별다른 꿈이 없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호구조사의 마지막은 언제나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 나가서 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의 미간이 찡그러졌고 아이들은 즐겁다는 듯 야유를 보냈다. 태어날 때부터 너른 바다를 보고 자란 나는 사실 바다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그건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꿈도 아니었고, 나의 꿈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도 있을 리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친한 친구들에게도 나는 내 꿈을 말하지 않았다. 슬픈 추억이었다. 그러다가 이 조그만 버스 안에서 내 옆자리 꼬마가 당당하게 포켓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그동안 고이 접어 가슴속 저 끝머리에 숨겨 놓았던 나의 어린 시절 꿈이 울컥하고 되살아난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왜 포켓몬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너무나 당당하게 말했다.


“얘네들은 계속 진화하거든요. 엄청 쌔져요!”


아, 그래 바로 그거였어. 내가 바다가 되고 싶어 한 이유는 바다가 끝이 안 보인다는 너무나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 단순함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소통할 수 없었을 나이에 나는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대책 없는 인간이었는가. 삶이란 때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스쳐 지나간 시간이 그렇고, 이룰 수 없는 꿈이 그렇고, 찾지 못한 행복이 그렇다. 그렇다고 어릴 적 느끼던 그 천진난만함이 무작정 좋을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며 생활에 찌 들고, 아침 출근길 스모그에 찌 들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 치이고, 변명과 무지에 치이고 그렇게 늙어가며 한 인생은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근래에 자주 들었었다. 나는 아이가 들고 있는 포켓몬 책이 마치 당첨번호가 적힌 로또처럼 보였다. 아이의 해맑은 꿈에 그 어떠한 거짓도, 변명도, 회의도, 자책도 없음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그래, 원래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행복은 아직 만들 자신이 있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 사이 버스는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만나 경흥대로인 34번 국도를 버리고 포천군 영평리로 빠지는 37번 국도로 잽싸게 갈아타고 있었다. 그러나 버스의 속도는 아직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이웃집 토토로가 4살짜리 주인공 메이를 태우고 논밭 위를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자신이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꿈을 이룬 아이가 이젠 땅으로 내려와 행복을 찾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행복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불쑥 행복하냐고 물어본다고 그 사람이 말하는 행복이 나와 같다고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행복은 그저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고 내가 찾아야만 하는 것이기에 내가 지금 이 털털거리는 시내버스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행복과 행운을 헷갈려하지 않는 것만도 어디야? 하며 허탈한 자위를 하고 있는데 꼬마가 갑자기 나에게 묻는다.


“아저씨? 사진은 왜 찍어요? 사진 찍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때 뒤통수를 한 대 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만의 행복을 찾고자 떠난 여행에서 이 꼬마를 만난 것은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작가 기욤 아폴리네르는 행복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가끔은 행복을 찾아가는 것을 멈추고서 그냥 행복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그래, 나는 지금 바로 그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아침이었다. 버스가 영평리로 접어들자 영평 초등학교가 나왔다. 포켓몬 꼬마의 목적지다. 우리는 서로 손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아이는 수업시간에 늦을세라 같이 온 누나와 함께 조그만 분교의 교정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뛰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행복해~ 포켓몬!


슬로시티를 꿈꾸는 마을


버스는 포켓몬 꼬마를 내려놓고 이제 영평리를 지나 37번 국도를 다시 한번 버리고 북쪽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운산리를 지나 목적지 관인면 방향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 길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87번 국도다. 그 사이 사람들은 많이 내렸고 버스는 횡 하니 비어버렸다. 이제 시골길로 접어든 버스 창밖의 풍경으로 마을이나 집은 보이지 않고 높고 낮은 산들과 조그만 내천들이 수시로 변화하며 시골버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이제 거의 레이서로 변모해 있었다. 이미 시골길 한적한 도로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고 홀로 달리는 시골버스 한 대만이 적막을 깨고 있을 뿐이었다.



포천은 본래 인구가 적은 탓에 백성들이 별로 송사를 제기하지 않아 예로부터 관리가 편하다고 알려진 지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준급 인물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옛말에 ‘살아서는 포천을 가야 양반이고, 죽어서는 장단을 가야 양반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포천은 빼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응부와 대한제국 시대 유학자 최익현, 이항복이 대표적인 포천 출신 인사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포천은 사실 인물보다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자연이 으뜸인 동네다. 버스만 타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주변 풍경으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구릉들이 적당한 산세에 걸쳐 아름다운 내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넋 놓고 창밖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F1 대회의 루이스 해밀턴급 레이싱 실력을 보여준 기사님 덕분에 엄청나게 이른 시간에 관인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관인이란 말은 신라 말 궁예가 태봉을 건국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했을 때 만들어진 오래된 지명이다. 당시 궁예의 모진 학정을 못 이긴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성 밖인 이 지역에 모여 살았다고 해서 관인으로 불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동네는 평일인데도 조용하고 차분하다. 나는 이곳에서 철원 동송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환승해야 했기에 환승터미널을 한참이나 찾았지만 버스가 오는 곳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따금 오고 가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름다운 시골에서의 대책 없음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할 수 없이 관인면 파출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파출소에 있던 경찰 분이 나를 보더니 ‘길을 잘못 들으셨네’ 하신다. 동송을 가는 버스를 타려면 대략 1km 정도 더 북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자기가 데려다줄 테니 일단 타라고 하신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물론 친절엔 항상 대가가 따른다. 다음 목적지인 철원 동송으로 가는 버스를 환승할 수 있는 상노리 정류장까지 나를 태우고 가면서 관인면 자랑을 깨알같이 늘어놓으신다.


“저희 동네 와보니까 조용하고 좋지요? 우리 관인면이 이번에 경기도에서 남양주 조안면 다음으로 두 번째 슬로시티에 가입하려고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만큼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되고,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 남아있는 곳도 드물거든요. 서울 가시면 많이 홍보해주세요”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졸지에 기자가 되어 버린 나는 그 경찰관 분의 친절함 속에 묻어나는 자부심 넘치는 동네 자랑을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꼭 한 번이라도 이 곳을 진지하게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 이제 경기도를 벗어나 첩첩산중 강원도로 들어갈 준비를 단단히 할 차례였다.




⓷ 일반 59번 / 포천시청 별관-관인 버스터미널 앞

포천시 시내버스로 포천시 소흘읍에서 관인 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한다. 배차 간격이 짧은 시간대가 있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긴 시간대가 많으므로 이용 시 주의해야 한다. 관인 터미널에서 59번을 놓쳤을 경우 경기고속 시외버스 3001번을 이용해서 양문, 포천시청, 송우리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운행시간 : 첫차 05:30, 막차 19:10 *배차간격 : 1일 8회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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