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Praha)
'계란 1개, 옥수수 2스푼, 소시지 1개, 치즈 2장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바케트 반 토막'
프라하 근교 까르푸 주차장에서 맞은 우리의 아침식사 메뉴다. 캠핑카 여행이란 늘 차에 물을 가득 싣고 항상 식사메뉴를 쇼핑하면서 다녀야 하기 때문에 캠핑장이 없는 지역에서는 늘 이렇게 대형 할인마트의 주차장을 이용한다. 그래서 더 즐거운 것이 캠핑카 여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단촐하고도 멋진 아침식사였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체코에서는 할인마트에서 숙식하는 방법도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하나의 코스였다. 아침 장을 본 덕에 따뜻한 바케트로 맛있는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이곳에서 2박 3일간 묵을 요량으로 프라하 근교의 조그만 캠핑장에 차를 주차시켰다. 친구가 작년에 이 근처에서 캠핑을 하다가 노트북이니 디지털 카메라니 죄다 털린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에 조금은 긴장했지만 우리가 찾은 캠핑장은 다행히 인심 좋은 할머니가 주인장이어서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을 받은 전형적인 시골 오토캠핑장이었다.
하루 종일 짐을 정리하고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167번 마을버스와 4번 트램(Tram)을 갈아타고 프라하 시내로 나갔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역사적인 도시 프라하를 지금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이건 15년 전 기대심리였다는 --;) 그것도 캠핑카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서 들어왔으니 감회가 더 새로웠으리라. 언젠가 우리 집 꼬마에게 사주었던 책 중에 작가 피터 시스의 ‘세 개의 황금열쇠’라는 책이 있었는데 보석 같은 글들과 함께 꼼꼼하게 그려진 펜화들은 당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보았던 프라하의 비밀스럽고 몽환적인 느낌은 어린 꼬마들보다 나에게 더 흥미로운 자극제가 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는 지금 그 동화책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프라하에서는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걸었다. 프라하는 여느 도시와는 달랐다. 프란츠 카프카가 그랬고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요셉 쿠델카가 그랬다. 그들도 이 길을 걸었고 또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 길 위에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고민하며 펜으로, 카메라 앵글로 자신의 신념을 담아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보석 같은 도시, 어찌 보면 역사의 굴곡으로 점철된 인간의 도시. 프라하는 나에게 그렇게 수많은 장르로부터 예고없이 마구 다가왔다.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문외한이 보더라도 절절하게 자신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놀라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발이 아프도록 걸으며 느끼는 것은 하나였다. 나답게 사는 것! 내 멋대로 사는 것!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미래가 있다! 프라하의 조그만 돌무덤 길들이 나의 발밑에서 속닥이듯 전해준다.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며 나름대로 상투적인 삼류 감상에 젖어있을 때 옆에서 들리는 외마디 소리.
“에? 500 코루나라고? 어쭈.. 이 자식들 봐라”
아니나 다를까, 친구 녀석이었다. 우리 일행은 경비 문제로 인터넷을 이용해 여러 가지 볼 일을 볼 요량으로 시내로 나와 인터넷 카페를 찾았는데 거기서 그만 된통 바가지를 맞은 것이다. 15분 정도 인터넷을 사용했는데 우리 돈으로 무려 1만 6천 원이라니! “체코는 진짜 물가가 싸거든”이라는 말을 늘 달고 다니던 녀석이 그만 자신이 바가지를 쓰자 뚜껑이 펑~하고 열려 버린 것이다.
친구가 화가 나서 대들고 따지고 해봐야 소용없었다. 상상 속의 프라하와 현실 속의 프라하는 그렇게 길거리에서 바가지를 맞느냐 피하느냐로 간단하게 내 머릿속에서 다시 리셋되고 있었다. 여행은 꿈이기도 하고 또한 지독한 현실이기도 하다는 어떤 여행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린 뒤통수 맞은 돈은 아쉽지만 잊기로 하고 카를교 건너편 광장에 있는 올드타운 홀 앞에 운집한 관중들과 함께 시계탑 종 치는 소리를 들으러 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곳에 오면 저 종소리를 듣는다는 패키지스러운 경험들. 그랬다. 캠핑카를 버리면 언제나 우리는 패키지 덩어리들이었다. 평소에 세계 역사나 인문학을 알뜰살뜰하게 공부한 적이 없으니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시계 타종이 싱겁게 끝나고 두 번째 패키지 코스인 프라하 성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후 늦은 저녁식사를 위해 움직인다. (15년 전 당시엔 프라하 성 근처에선 밥을 싸게 먹을 수 없어서 다시 카를교로 내려와야만 했다.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
이미 중앙역 근처에서 한 번 강력한(배신감?) 뒤통수를 맞은 터라, 우린 1차 대전 참호 속에서 우글거리는 듯한 카를교의 관광객들을 피해서 이곳 식당은 아예 포기하고 현지 주민들이 이용할 법한 어스름한 뒷골목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우리가 찾아간 레스토랑은 카를교 근처 지하에 있는 지다르(ZDAR)라는 조그만 선술집이었다. 너무 작아서 일반 관광객들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더 많았다.
당시에 처음 안 사실이지만 카를교 지하에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배수로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홍수 때 블타바 강이 넘치면 이 배수로로 물이 빠져나가도록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현대식 관개수로 공사가 끝난 후에는 쓸모가 없어져 지금은 이렇게 레스토랑이나 Bar로 꾸며져 사용되고 있었다. (지금도 있으려나?) 우리는 지다르(ZDAR)에서 감자와 스테이크 그리고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며 식사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맛이 너무 좋아 분위기가 한껏 업되며 조금 전 기분 나빴던 감정들을 금세 잊고 연신 원더 풀을 외쳐댔다. 게다가 여기 주인이 한국에서 15년 간 살다가 온 아줌마여서 우리를 아주 반갑게 대접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프라하의 선술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맥주에 관한 한 유럽에서 체코를 따라갈 곳은 없을 만큼 술의 역사가 깊은 나라. 1인당 맥주 소비량 세계 1위, 최초의 맥주 양조법에 관한 기록이 있는 나라, 세계 최초의 맥주 박물관 개관, 세계 최초의 플젠식 맥주 생산, 맥주공장 종업원이 대통령이 된 나라...기타 등등 체코는 진정 맥주의 천국으로 불릴만한 나라였다.
한마디 더 거든다면 플젠식 맥주 제조법은 유럽에서도 역사가 아주 오래된 제조방식인데, 아편의 일종인 로더넘을 섞어서 만드는 방식의 맥주 중 시초가 되는 제조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불법이라 더 이상 로더넘을 섞지는 않지만 예의 그 뿌연 맥주의 본래 성분은 호밀이 아닌 마약이었던 셈이다. (아, 난 진짜 여기서 오리지널을 맛보고 싶었다 --;)
그렇게 왁자지껄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에 하루를 정리하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이는 프라하 사람들이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보다는 선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나도 평소에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프라하의 선술집이 맘에 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런 선술집의 분위기가 체코의 불안한 역사 속에서 시민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물론 맥주의 종류도 다양해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16세기 초 왕실에서 마셨던 맥주의 황제 부드바이저 드래프트의 그 쌉싸름한 맛은 정말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저렴한 가격에 얼큰하게 취해 선술집을 나올 때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ZDAR'라는 의미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평온하고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아주 평범한 뜻이란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바람은 인생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이런 긴 여행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닫고 싶은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누구나 원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소소한 바람. 나는 그날 밤 캠핑장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며 캠핑카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ZDAR - 이 캠핑카 안에 있는 모두에게 언제나 평온과 행복함만이 깃들기를 바라며....'
물론 그런 바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신은 항상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도 역시...
Damotori's travel notes
프란츠 카프카의 길...
프란츠 카프카가 자신의 집이 있던 거리인 황금소로 22번지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이 다리를 건너며 그는 자신의 불확실성에 대한 질문들을 수 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확정되어 있는 삶을 포기하고 무한한 자신의 내면세계에 적잖은 꼬랑꼬랑한 골목들을 만들며 그 속에 숨어있는 그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프라하는 적어도 나에겐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