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다로까(daroca)
성체 기적의 도시, 다로까(daroca)
스페인 중부의 요새도시 다로까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정오. 천년의 요새도시 다로까의 성곽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영롱하게 빛나고 그제야 우리는 바로 며칠 전 스페인 입성 이후에 벌어진 놀라운 사건사고들의 후유증에서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일요일이라 마을의 상점 문이 굳게 닫힌 다로까에서 오후 내내 요새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고 산책을 즐겼다. 다로까는 언듯 보면 중세 시절의 오랜 고성의 도시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마을엔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바로 성체의 기적과 관련된 이야기다. 스페인 입성 후 대부분 양아치와 관련된 사건을 겪으면서 이베리아 반도 중앙 도시들의 역사에 대해 공부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마침 모든 의심들이 풀리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되찾고 있었다.
이런 푸근함이라니, 낯선 도시에 도착해 한적한 성당에 들어가 미사를 보는 듯한 그 느낌. 다로까는 바로 그런 분위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뭐, 상점들은 죄다 문을 닫았지만 길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당나귀와 대성당에 놓여진 성체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작은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만큼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잠시, 타임머신을 돌려 1239년 2월 23일로 돌아가 보자.
흔히 '정복자'라고 불리던 스페인의 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야곱(Jakob) 1세. 그는 수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 회교도들과 장렬하게 싸웠다. 그는 말로르카(Mallorca) 성과 메노르카(Menorca) 성을 탈환하고 발렌시아(요즘 여기에 발렌시아 1군 이강인이 있다^^)로 향하던 중 중부리아나(Burriana) 부근의 코델(Codol) 산 위에 요새를 세운다. 당시 그의 군인들은 다로까 인근 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자 무어족의 벤 자얀(Ben-zayan) 왕은 고작 4천 명밖에 되지 않는 이 그리스도교 군대를 궤멸시켜기로 작심하고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사면초가에 빠졌던 야곱 왕은 오로지 하느님의 도움을 믿으며 불리한 전투를 감행해 승리한 후, 그 기세를 몰아 발렌시아까지 정복한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 전역엔 이슬람 군의 거대한 성채가 무수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1239년, 무어족의 대군이 발렌시아를 쳐들어오면서 발생했다. 당시 발렌시아 성에는 달랑 천 명밖에 되지 않는 적은 수의 그리스도교 군대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숫자가 너무 적고, 또한 야곱 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하느님에게 특별한 기적과 은총을 바라기로 한다. 성 안에 있던 여섯 명의 중대장들은 고백성사를 보고 영성체함으로써 하느님의 특별한 도우심을 얻고자 했지만, 갑자기 적이 공격을 개시했다는 전갈에 깜짝 놀라 무기를 잡고 전쟁터로 돌진했다.
하지만 하늘이 감동했을까. 지휘관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본 건지 마블코믹스의 주인공같은 강건함을 내려 결국 승리를 이끌게 된다. 사제들은 전투를 하는 동안 돌더미 속에 성체를 싸서 숨겨 두었던 성체포를 꺼내 가지고 급히 달려와 성체포를 제대 위에 펼치자, 여섯 개의 성체에 피가 묻은 채 성체포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다로카에서 바로 그것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1239년 2월 23일의 승전은 성체의 기적 덕분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자 이 경건한 보물을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최고 지휘관 돈 베렌구어(Don Berenguer)는 발렌시아의 성 안에서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그곳에 성체포를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군인들은 제비뽑기로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놀랍게도 세 번씩이나 다로까가 제비뽑기에서 뽑혔다. 하지만 더 많은 병사들을 투입하고, 희생도 많았던 다른 여러 교구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한 가지 방책을 세우는데 합의를 본다.
피 묻은 성체가 담긴 성체포를 궤 속에 넣은 다음, 그것을 아직 그리스도교의 영역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어린 암당나귀의 등에 싣고 자유롭게 달리게 한 것이다. 이 당나귀가 멈추는 곳에 이 보물은 보관될 것이었다. 암당나귀는 성체를 싣고 산을 오르내리고 초원과 논밭을 지났다. 성직자들은 당나귀를 따라 촛불을 켜고, 지휘관들은 병사들과 함께 당나귀의 뒤를 따랐는데, 가는 도중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무어족의 암당나귀는 그렇게 여러 도시와 성 그리고 작은 마을을 느긋하게 지나다가 갑자기 한 구빈소 문을 지나 다로까의 문 안으로 들어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러자 성직자들은 깊이 감동하여 여섯 개의 성체가 담긴 성체포를 산타 마리아 대성당 안으로 옮겼으며, 우리가 오늘 본 대성당 옆에 있는 소성당의 제대 위에 놓여진 성유물 궤 속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후 7백 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모든 스페인 왕들은 이 '성스런 신비의 성체'를 만나보기 위해 다로카를 순례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곳 다로까의 마을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런지 당나귀 요람에 잠든 예수를 상징한 설치물들이 골목에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다른 마을과 틀리게 왜 이렇게 당나귀가 많은 걸까 했었는데, 히스토리를 듣고 보니 끄덕끄덕 이해가 갔다. 그것도 그리스도 영역에 한 번도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무어족의 어린 암당나귀라니. 좀 웃기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합의가 외려 깨지지 않고 순탄하게 결론이 난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그러니 우리가 이곳을 순례하는 이유도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순진한 상상과 잠깐의 퍼포먼스로 끝이 났다. 그 작은 도시를 떠날 무렵 또 한 번의 회오리가 우리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다로까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유서 깊은 마을이라 간선도로가 마을을 빙둘러 우회하여 지나간다. 그 우회도로는 약간 높은 산 중턱에 있어서 마을을 조망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다. 한마디로 포토존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다로까 도로를 달리다가 차 안에서 이 멋진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잠시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출발했다. 절대 서지 않았다! 바로 그때. 사이드 미러 뒤로 뭔가가 번쩍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난 경찰차. 우린 그냥 지나가는 경찰차인가 보다 하고 계속 길을 나서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경찰차가 우리를 보고 사이렌을 울려 대는 것이다. 아! 이거 또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우리는 동네를 벗어나자마자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러자 경찰차 안에서 나이 든 경관과 파트너로 보이는 젊은 경관 둘이 내리더니 다짜고짜 캠핑카로 와서는 난리를 치듯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뭐야, 이거는 또? ”
우리가 손짓 발짓해가며 얘기를 파악한 결과 내용인즉슨, 우리가 정차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도로에서 정차를 했으니 벌금을 내라는 소리였다. 아이 씨발, 이거 또 뭔 개소리야? 우리 일행이 이 짭새들이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헷갈려 잠시 황당해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놀부같이 생긴 고참 경찰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빨리 벌금을 내지 않으면 우리를 경찰서로 데려가겠다고 윽박지른다.
“뭣이라! 우릴 연행하겠다고? 아놔, 진짜 환장하겠네.”
정차를 한 것도 아니고 일요일 아무도 없는 도로 위에서 이런 봉변을 당하고 있을라니까 정말 울화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 녀석들이 내라고 우기는 벌금이 무려 400유로였다는 거다. 400유로라... 칼만 안 들었지~ 이런 날강도가 어딨는가? 그 순간 내 머리가 십 년 동안 쓴 적 없는 수도꼭지 틀듯이 우자작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차 안에서 며칠 전 휴게소에서 도난당한 내역을 적은 조서와 난자당한 타이어 사진을 보여주며 필사적으로 저항, 분노, 대들고, 항거하기 시작했다. 저항의 내용은 이랬다. 우린 잘못 없다. 일단 서지도 않았고 너네 나라 들어와서 벌써 세 번짼데.. 한 번은 완전히 털리고 두 번째는 타이어 박살 나고 세 번째 너희는 우리에게 잘못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벌금 400유로를 내라니 너네가 그러고도 도둑놈 시키들이냐? 경찰시키들이냐?
그러자 짭새 두 분들이 움찔하더니 저만치 가서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쑥덕거린다. 돌아와서 한다는 말은 더 가관이다. 벌금을 디스카운트 해주겠단다. 200유로만 내란다. 이 얘기를 들으니 더 화가 치민다. 친구가 발끈하며 차라리 경찰서로 데려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경찰들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어차피 증거는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박박 우겨봐야 신상에 좋을 건 하나도 없는 불리한 상황. 그렇게 한동안 옥신각신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무지하게 지루한 시간이 한 시간 가량 지났을까? 젊은 경찰이 무전기에 대고 뭐라고 불라 불라 지껄인다. 그제 서야 우리는 시간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 이제 승산 없는 싸움에서 빨리 튀어야 했다.
이대로 경찰서로 끌려가면 우선 시간적으로 불리하고 일정도 차질이 생길 노릇이다. 그렇다고 200유로를 눈뜨고 다 줄 수도 없는 노릇. 그때 내가 차에서 내려 우리 돈 보따리를 꺼내어 보여줬다. 너네 스페인에 와서 다 털리고 남은 거라곤 달랑 이게 전부다! 라며 쇼당을 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우리 민족이 깨달은 유일한 전술이지만 실패를 반복했던 배수의 진을 쳤다. 이것 자체가 거부되면 까짓것 우리도 될 대로 되라였다.
우리가 제시한 것은 84유로. 그것 두 사실은 무지막지하게 큰돈이다. 캠핑카에서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으며 아끼고 아끼던 경비였으니. 우리가 눈 시퍼렇게 부라리면서 더 이상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나쁜 경찰분들도 한동안 고민하더니 자신들도 그것만이라도 받아가야 했는지 뻔뻔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범칙금 영수증도 없다. 쓰벌 놈들이 돈만 낼름 받고 사라져 버렸다. 84유로를 길거리에서 도둑맞은 우리가 길가에 뻘쭘하니 서 있는데 차를 몰고 휙 돌아가며 늙은 경찰이 빨리 여기를 뜨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가운데 손가락을 모두 모아 가열차게 하늘을 갈라주었다.
“개떡~~뻑커!!! 지랄 염병하고 있네... 개 짭새들이”
낯선 스페인 땅에서 쓰리 고에, 피박에, 광박까지 덤탱이로 후려 맞은 우리 일행은 쓰디 쓴 입맛을 다시며 그제 서야 또 다른 깨달음 하나를 건졌다. 하느님과 성체 기적의 기를 받아, 더불어 무어족 암당나귀의 기까지 빨아내며 내가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를 곰곰하게 생각해도 아무런 생각이 안 났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완벽하게 빨리고, 털리고, 당해야만 이 여행이 아름답게 끝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이 시추에이션.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이 순례길이 아니겠냐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너무 편하면 순례길이 아니지. 너네가 독일 넘버 달고 이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집에 고이 돌아가기는 틀렸다는 예언이 마치 당나귀 말로 귓속 언저리에서 속삭이듯이 들렸다. 그리고 방금 우리는 또 하나를 배웠다. 스페인에서는 어떤 경찰이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벌금을 요구하면 무조건 싸우다가 벌금을 깎아야 한다는 생존불변의 원칙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