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Kiss FM과 외계인 ABBA / 비제우

포르투갈 비제우(Viseu)

by 다모토리


젠장! 누가 Kiss FM 좀 잡아 봐~~


'지지직.........'


“얼라... 얘가 왜 이래?”


스페인의 오래된 시골마을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잘 만 나오던 라디오 주파수가 갑자기 포르투갈 국경을 지나 비제우(Viseu)에 들어오자 투명인간처럼 사라져 버렸다. 채널 이름은 Kiss FM. 스페인으로 넘어오자마자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사건들을 그나마 잊게 해주었던 라디오 음악채널이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루 종일 올드 팝송이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Kiss FM은 스페인의 음악 전문 채널인데 극도로 절제된 MC의 멘트와 우리가 학창 시절 듣던 기라성 같은 올드 팝들이 매일 흘러나와 차 안에서 그나마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었던 고마운 동반자였다. 그런 파트너가 소리 없이 사라졌으니 차 안이 벌집 쑤신 듯이 갑자기 요란해질 수밖에.


아바를 비롯해 퀸, 밥 말리, 슈퍼 트램프, 유라이어 힙 등의 촌스럽지만 굵직한 뮤지션의 곡들부터 프린스, 스팅, 엘튼 존까지 대중적인 가수들의 곡까지 도대체가 장르의 구분 없이 흘러나와 황당한 즐거움을 주던 Kiss FM은 배철수 씨가 멘트를 하지 않는 음악캠프랑 거의 비슷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에겐 정감 가는 채널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바르셀로나에서 털렸던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던 다양한 MP3와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선곡으로 노트북이 털린 이후 와인을 한잔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우리의 마음을 그나마 위안해 주던 또 한 명의 친구였다.



그렇게 KIss FM이 정처 없이 채널에서 사라진 그날 저녁 우리는 포르투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살레우(Salreu) 근처 10km 지점의 한 외딴 무인 주유소에서 잠자리를 청했는데, KIss FM 이 나오지 않는 캠핑카는 적막강산 바로 그것이었다. 멀뚱멀뚱 잠은 오지 않고 불안감은 더 늘어갔다. 우리가 있는 곳은 사방이 어두 컴컴하고 마을도 인적도 없는 무인지경의 지평선 도로. 바르셀로나에서 털릴 때와 같은 공포스러운 느낌이 다시 급작스레 엄습해왔다. 뒤늦게 잠금장치를 철저하게 설치했는데도 불구하고 Kiss FM이 잡히지 않는 이곳에서의 노숙은 와인 한 잔 편하게 마실 수 없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


“에이... 또 털리겠냐... 설마? ”


우린 말로는 그렇게 낄낄거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다 보니 나나 친구나 연실 잡히지 않는 키스 KM의 주파수를 맞추느라 번잡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모든 문은 완벽하게 잠겨 있다. 내 안의 모든 문도 잠겨있다. 우리는 이 캠핑카에서 누군가 한 명이 사라진 것을 몸으로 느낀다. 그 친구가 미처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실을 상기하고는 잠자리에서 피식하고 웃어본다. Kiss FM이 우리의 여행 친구였다는 생각을 첨 해본 것이다.



긴 여행 동안 그렇게 우리에겐 작지만 유효 적절한 친구들이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미처 몰랐던 존재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내일 다시 길을 떠나면 어디선가 반갑게 지지직거리다가 주파수를 맞추고 나를 맞아주겠지 하는 속절없는 기대감이 샘솟는다. 조그만 자전거, 라디오 채널, 그리고 널 부러져 굴러다니는 책들까지. 우리의 친구들은 그렇게 차 안 어디에든 있었다.

니스 해변에서 건진 아르헨티나산 몽돌

그렇게 작은 행복감에 스르르 눈이 잠긴다. 내일 어떻게든지 키스 FM의 주파수를 찾아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포르투갈의 낯선 땅 위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그때였다. 좀처럼 불안해하며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뒷자리에서 어느새 혼자서 홀짝거리다 와인에 취한 친구 놈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야! 근데, 아바가 외계인이라는데.... 사실이냐?”


“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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