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참을 수 없는 꼬랑꼬랑함! 오~ 포르투

포르투갈의 고도시 포르투 (Porto)

by 다모토리
문득 유년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낸 이상한 도시


2002년 광주에서 개최된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 포르투 (Porto De Mon Enfance, 2001)라는 영화였는데, 당시 아흔이 훌쩍 넘었음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던 포르투갈 출신 감독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가 만든 유년시절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은 포르투라는 고향을 무대로 자신의 유년시절의 고민과 일상의 역사를 담담하지만 진지하게 담아냈다.


나의 어린 시절 뽀르또. Porto De Mon Enfance, 2001


물론 이 영화는 전혀 서정적이지 않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자신이 소년에서 10대 청년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빈곤과 두려움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어떻게든 살아 숨 쉬고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유년의 목소리로 조용하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읊조림이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는 1908년 12월 11일 출생하여 2015년 4월 2일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하지만 난 거기에서 추억이라는 코드를 아예 잊은 채 꿈마저 잃고 숨 가쁜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보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유년시절의 아픔을 통해 낯선 감동을 안겨준 그 영화는 이후 나의 머릿속 한 부분에 명료하게 각인되어 가끔 세상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단초 같은 역할을 해주곤 했다.


캠핑카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스페인을 넘어 포르투갈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나에게 추억이란 묘한 코드의 결정적 단서가 되어주었던 그 항구도시, 포르투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스페인 아라곤 지역의 국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포르투갈로 들어온 우리는 직진 주로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덕분에 리스본보다 포르투를 자연스레 먼저 선택하게 된 이유도 한몫을 했다.



포르투의 시가지는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로 확연하게 나뉘는데 구 시가지는 오래된 골목길과 성당 그리고 옛 성벽 건물들이 즐비하게 남아있어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고 큰 캠핑카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특히 시내에 있는 주차장은 다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데 대부분 너무 낮은 높이여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구 시가지의 맨 아래쪽에 위치한 도우루 강변에다 차를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여긴 사실 불법이다. 하지만 15년 전 당시에는 동네 주민들에게 돈을 좀 찔러 주면 만사 오케이였다. 물론 지금은 아예 그럴 일이 없다고 한다 ㅠ)



그런 다음 시내로 들어오자 거기엔 지금까지 보아온 이탈리아와 스페인과는 좀은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다닥다닥 붙은 골목 속의 집들과 그 속에 널려져 있는 수많은 빨래들, 반듯반듯한 시멘트 건물이 최고가를 달리는 우리네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들이 펼쳐진 것이다. 갑자기 띵한 울림이 머리를 관통한다.



흔히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네 도시는 그러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의 낡은 추억은 부셔버려야 하는 재건축 대상이고, 인구 폭발로 인한 도시 재정비는 단지 주거공간 확보가 최우선이라서 언제부턴가 소중한 골목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르투는 나이 아흔이 넘은 올리베이라의 추억조차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였다.


그들이라고 왜 반듯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네들 도시의 역사를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혹은 부동산 투자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의 방법으로 이해하며 살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도시를 보존하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지키기 힘든 인내의 산고였으리라.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리베르다데 광장 (Praca da Liberdade)과 광장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포르투에서 가장 번화하고 아름다운 알리아 도스 거리 역시 도시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포르투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는 언덕 위의 대사원이 나오는데, 이 사원은 12세기에 건축되어 지금도 2개의 탑이 초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포르투의 멋진 일몰 장면을 보던 그 감격스러운 흥분이 아직도 심장이 요동치듯 가시지 않는다. 그만큼 멋지고 유혹적인 저녁노을이었다.



이렇듯 포르투는 구 시가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멋진 골목들이 즐비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실 한 달 동안만이라도 이곳에다 방을 잡고 아예 머무르면서 천천히 돌아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였다. 그건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처음 받은 강렬한 느낌이었다.


골목길 여행 후 우리가 찾은 곳은 그 유명한 포트와인! 프랑스에 보르도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포르투가 있다! 포르투의 동쪽 지방에서 주로 생산되는 포도는 이 지역의 온화한 기온과 충분한 햇빛 덕분에 특히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도우루 강에는 지금도 라벨로라고 불리는 와인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들이 강 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와인 공장들이 주로 도우루 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직접 공장을 찾아가 와인 테스팅을 한 후 맘에 드는 것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는 직접 공장을 찾아 와인을 구입하지는 못하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싼 녀석들로 구입을 해서 캠핑카에 재워 놓고 포르투갈을 떠날 때까지 조금씩 그 맛을 음미하면서 즐겼는데, 싸다고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싼 와인이라도 내가 귀족이 되어 먹으면 훌륭한 와인이 되는 법 아닌가?



도우루 강 아래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캠핑카의 창문을 열고 와인으로 건배했다. 로마에서 이슬람 문화까지 두루 섭렵한 후 프랑스 귀족이 포도를 재배해 일으킨 도시. 포르투까지 기어 올라왔다. 이 도심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를 반추해보며 지나간 나의 유년시절 좁은 골목들을 새삼스레 떠올려 본다.


물론 나의 골목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올리베이라 감독의 그 골목은 지금도 멀쩡하게 남아있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했다. 그가 마신 포트 와인 속에 그의 추억이 흐르듯, 그가 살았던 골목 풍경 속에 그가 남긴 추억이 잔뜩 담겨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우루 강의 일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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