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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Jan 28. 2019

사무라이는 두 번 웃기지 않는다 <사무라이 픽션>

<사무라이 픽션_1998 /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

코믹통쾌/유치발랄을 버무린 맛깔난 사무라이 비빔밥


<사무라이 픽션_1998 /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


1998년 전국이 IMF 광풍에 신음할 때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선배와 이 영화 <사무라이 픽션>을 보았다. 사실 이열치열이라고 경제도 안 좋은데 죄다 잊을 겸 살벌한 거 한 편 보자는 심정으로 들어갔는데, 영화가 코미디였다. 포스터만 보고는 유혈이 낭자할 줄 알았다. (사실 포스터의 실루엣 이미지는 너무 강렬해 나중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 빌'에서 차용하게 된다)


물론 우리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외려 이 영화 때문에 잠시지만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로는 특이하게 흑백영화로 제작되고, 엄청난 사운드 트랙과 스피디한 촬영기법 덕분에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의 액션극이었는데 줄거리는 말 그대로 황당무계 사무라이 픽션이다.



내용은 전혀 칼을 쓰지 못하는 사무라이 집안의 아들 헤이지로가 덜 떨어진 친구 두 명과 함께 집안의 가보인 도쿠가와의 보검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덤 앤 더머에 덤 하나가 더 붙은 느낌이다. 악당의 검술에 천만분의 1도 안 되는 실력을 지닌 이들은 일단 무작정 돌진하고 본다. 물론 택도 없는 아웃렛 검술로 상대가 안되니 이번엔 돌팔매를 익힌다. 돌팔매 사부의 따님과 중간에 썸 타는 러브라인도 끼여있다.

                                           


쓸데없는 긴장감에 웃음이 흥건하게 터진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한몫한다. 뭔가 대책이 없으면서도 막무가내이자 좌충우돌형 주인공을 열연한 배우는 당시 전혀 알지 못하는 연기자였다.  그런데 요즘 일드나 일본 영화를 자주 보면서 어떤 이의 얼굴이 딱 떠올랐다. 그게 뭔가 낯이 익다 싶어서 찾아봤더니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여자 성주 나오토 라>에서 인상적인 조연으로 등장한 후키코시 미츠루였다. 그가 바로 사무라이 픽션의 덜덜이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여자성주 나오토라>에서 인상적인 조연으로 등장한 후키코시 미츠루


당시엔 이 친구가 움직이는 것만 봐도 웃겼던 기억이 나는데, 이젠 중후하게 나이가 들어 중년을 연기하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 영화를 보다가 문득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사무라이 픽션은 찰리 쉰의 <엉덩이에 총을 쏜 남자>와 거의 막상막하급으로 복창 터지게 해 준 코믹 사무라이 액션극으로 기억된다. 지금 봐도 너무 웃기다. 영화의 슬로건대로 절대 두 번 웃기지 않는다. 딱 한 번에 웃긴다. 영화 속에는 특별한 캐스팅도 있는데 일본의 최정상급 뮤지션이 직접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가 바로 호테이 도모야스다. 그가 작곡한 14곡의 O.S.T는 락에서 프렌치 팝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호테이 도모야스

영화감독인 나가노 히로유키는 원래 호테이 도모야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감독이었다. 이게 그의 첫 장편영화다. 이 영화 뒤로 이름을 들을 수 없는 걸 보니 아마도 영화계를 떠난 듯하다. (본래 직업인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돌아갔을 수도 ^^)    



나에겐 웃기면서도 슬픈 진짜 추억의 영화였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퍽하고 터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하나는 주인이 부른 닌자가 지붕에서 떨어질 때마다 넘어지는 장면, 그리고 악당을 쫓아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덜덜이 세 친구를 카메라가 앞에서 쭉 찍다가 애들이 힘이 빠지니까, 그냥 버리고 달아나는 씬이다. 아, 어쩌려고 이러나 싶을 때 터지는 그 웃음이란, 뭐라고 할까... 참으로 헛헛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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