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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Jan 28. 2019

웃음과 눈물의 난장유곽 대잔치 <막말태양전>

막말태양전 幕末太陽傳. 1957, 유조 카와시마

막말태양전 幕末太陽傳. 1957, 유조 카와시마


1862년 일본의 에도 근방에는 두 곳의 유명한 유곽이 있었습니다. 물론 에도의 도처에 종교기관인 신사, 불각의 문전과 경내에서도 당당하게 유곽이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후대에 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유곽으로는 북쪽에는 요시와라, 남쪽의 시나가와였죠. 북쪽의 요시와라는 엄청난 재력을 갖춘 유곽들로 인해 명성이 자자한 게이샤들이 들끓었고, 남쪽의 시나가와는 말만 요란한 떠벌이 주정뱅이들 소굴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일본에는 일찍이 유곽가라 불리던 장소가 각 도도부현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거기엔 유녀들이 있고, 남성들이 매춘을 하는 기루(색시집)가 줄지어 거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일본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던 곳이 현재 도쿄도 다이토구 센조쿠 4쵸메에 있었던 '요시와라 유곽'이죠. 이 요시와라 유곽이 에도에 탄생한 것이 1617년 정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400년 전에 만들어져 거듭된 화재와 관동대지진, 매춘 금지법 등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가며 지금은 약 140개의 점포가 줄지어 있는 소프 거리로 남아있게 됩니다. 


반면에 시나가와 유곽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는 외국인이 등장합니다. 네덜란드 상인 시볼트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에도까지 여행하면서 1826년 4월 10일 외국인으로는 처음 시나가와 숙소를 방문합니다. 시볼트는 당시 시나가와를 바라본 광경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죠.


"가도의 양측에 유곽이 있다. 구애는 대담하게 이루어지며,  밝게 개방되어 있는 객실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시설은 일본 요리 상점과 같이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한 유곽에서 나오는 유녀들의 모습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커피전문점에서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당시의 시나가와 유곽을 묘사한 그림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요시와라 유곽이 아니라 당시 치바현이 건너다 보이는 남쪽 유곽인 시나가와가 배경입니다. 여기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들과 일본의 전통 1인 만담극 라쿠코의 이야기를 짬뽕해서 만든 재기 발랄한 코미디물입니다.



영화 <쇼군>에서 마을 수령으로 등장했던 프랑크 사카이가 열연한 주인공 사헤이지가 끌고 가는 이야기는 라쿠코 '이노코리 사헤지居残り佐平次 '에서 빌어왔는데 유곽에서 술을 공짜로 먹고 눌러앉아 일하면서 오히려 유곽의 훈남이 된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나가와 신쥬(동반자살), '삼매기청', '오미다테(고르기)의 이야기를 조연들이 뒤죽박죽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게다가 워낙 오래된 흑백영화라 지금 보면 화면이 어색하고 때론 어설프지만 19세기 말의 일본 풍광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있어 매우 흥미로우며, 그 유곽에서 벌어지는 여흥의 분위기는 심지어 흠칫하고 놀랄 정도입니다. 특히나 주인공 사헤이지(프랑크 사카이)의 연기는 독보적으로 유머러스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적 몰입도를 완성시켜주죠. 영화를 보다 보면 그때 사람들이 어쩐지 지금보다 더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해방 이후 오즈 야스지로를 포함한 일본의 신주류 감독들이 보여주는 영화에서도 도시 외곽에서 여흥을 즐기는 장면들이 곧잘 나오는데 바로 이 시나가와의 술집 형태를 그대로 본뜬 듯한 여인숙들이 등장합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만약 내가 말도 안 되는 타임슬립으로 에도 막부 시절에 떡 하니 도착한다면 당장 시나가와에 달려가서 밤새 사케를 들이붓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이었습니다. 요시와라는 형식이 딱딱해서 별 재미가 없을 듯하거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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