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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Feb 03. 2019

만화를 삶으로 승화시킨 '다쓰미 요시히로'를 향한 헌사

<동경 표류일기 (Tatsumi, 2011) _에릭 쿠>


싱가포르 출신인 '에릭 쿠'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동경 표류일기’는 감독이 일본 만화계의 헌신이었던 '다쓰미 요시히로'에게 존경을 담아 헌사하는 작품이다. 1951년 만화 '유쾌한 표류기'로 데뷔한 다쓰미 요시히로는 올해 3월 7일 악성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난 일본 만화계의 거장으로 만화 장르에서 '극화(劇画)'라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창시자였다.     


우리가 그 옛날 동네 만화방에 앉아 킬킬거리다가, 때로는 뜬금없이 숙연해하며 이현세나 허영만 화백의 장편만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다쓰미 요시히로의 극화라는 만화 장르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만화를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다쓰미 요시히로


그렇게 전후 일본이라는 격동의 시대 속에 그려진 다쓰미 요시히로의 극화들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일본에서 만화라는 장르가 대중문화를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극화는 성인만화에 리얼리즘을 도입한 장르로 1957년에 다쓰미 요시히로가 고안, 1970년대에 비약적인 진화를 거쳐, 이후 만화의 표현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감독의 성찬이 담긴 이 프롤로그가 끝나면 다쯔미 선생이 생존 당시 스승으로 대하며 존경해마지 않던 또 다른 거장 '데즈카 오사무'의 추억을 떠올리는 유명한 단편 '극화 표류'가 삽화 형식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단편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속 스승인 데즈카 오사무란 인물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프롤로그만 보자면 아마도 감독인 에릭 쿠 역시 이런 감정을 지니고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영화에는 다쯔미 요시히로를 대표하는 유명한 단편 중 엄선된 5편이 애니메이션으로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옥’, ‘내 사랑 몽키’, ‘남자 한 방’, ‘안에 있어요’, ‘굿바이’ 등은 모두 독특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일본의 전후 시대 암울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당시 민중들이 살아가면서 감내해야 하는 시대적 아픔과 그 안에 혼재된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 ‘동경 표류일기’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일본 만화계의 거장, 다쯔미 요시히로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와 작품성 모두 만족할 만한 평점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누군가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쓰미 요시히로'라는 작가를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별 다섯 개 만점이라는 평점보다 더 가치 있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언제나 악연이었던 일본의 격동사에서 고민하던 외로운 만화가가 시대를 넘어서 삶의 향수와 노스탤지어, 그리고 꿈같은 시절을 동경하는 삶의 코드를 함께 공유해 주고 있다는 것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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