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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04. 2019

인공지능 셰프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그린 북>   

그린북 (2019)_피터 패릴리 감독


2019년 아카데미가 작품상으로 지목한 영화 ‘그린 북’. 이 영화는 1960년대 초 미국, 이탈리아계 이민자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셜라 알리)의 우정을 담은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조연상, 극본상을 수상해 3관왕에 올랐다.


이 영화를 본 후 난 한참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재밌다’ ‘그치, 보길 잘했어’하는 탄성 대신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입속에서 삐죽삐죽하고 튀어나오려고 하는데 처음엔 그게 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영화 속 운전사 토니의 실제 아들이자 각본을 담당한 닉 발레롱가와 감독을 맡은 피터 패럴리의 과거 인종 혐오발언과 성추행 혐의 논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깐 동안 ‘내 입속에 가시’가 대체 뭘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린 화두는 웹툰과 인공지능 A.I란 단어였다. 아니 뜬금없이 웬 웹툰과 인공지능? 요즘 인기 있는 패셔너블한 웹툰을 접하신 분이라면 아시리라. 웹툰이라는 매체가 한 사람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제조품이라는 것을. 물론 원작 스토리의 아이디어를 내고 작화를 창작하는 메인 작가가 존재하지만 요즘 인기 웹툰들은 그러한 기본적 시놉시스에 스토리, 작화, 분위기, 캐릭터 디렉팅을 모두 분업화, 공장 화해서 창작된 종합 선물세트와 같다.


그 시대의 요구에 맞는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단기간에 소비하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인종차별, 20세기 중반의 시대적 배경, 로드무비를 버무린 웹툰 이미지가 강하게 오버랩되는 이유다.   



이는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흥행감독의 뛰어난 아이디어는 대박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공장화 된 할리우드 시스템을 통해 대중에게 감동 상품으로 재창조된다. 일단 관객이 감동하고 나면 곧장 수입으로 연결되는 대중문화의 논리로 영화가 재생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생산된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자랐다. 전쟁, 사건, 정의, 사랑, 사회적 갈등, 터부, 인종, 음악에 추억까지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모두 영화의 소재가 된다. 문제는 이 소재를 어떤 방법으로 포장하는가에 감동의 가치와 수준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까지도 아카데미 수상작을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할리우드의 놀라운 상술 속에서도 가끔 보석과도 같은 영화들이 작품상을 통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속에 인공지능 AI가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몇 해 전 이세돌과 세기의 대결을 벌인 알파고는 인간의 계산능력과 일명 직감이라고 하는 미묘한 인지능력까지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인공지능은 이제 기자 대신 매일매일 뉴스를 작성하고 심지어 소설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인간이 느끼는 수만 가지 종류의 직관과 인지에 의한 감동 포인트 수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영화 데이터를 종합하면 얼마든지 예측, 계량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린 북’에서 난 그것들을 느끼고 또 보았다. 굳이 장면 장면을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지만 그저 뒷맛이 씁쓸한 이유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당연하게 작품상을 받을 줄 알았던 나로서는 조금은 서글픈 일이지만, 개인적 호불호가 득실대는 영화판에서 나의 리뷰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므로 제켜 놓는다 해도, ‘그린 북’은 너무나 많은 조미료를 쳐서 입맛이 쓴 정도가 아니라 입안이 얼얼해 짜증이 날 정도로 큰 실망을 했기에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에게 ‘그린 북’은 웹툰의 트렌디 한 공장 상품화, 할리우드 식 감동의 보편화, 인공지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감동의 적절한 포인트들이 너무나 부드럽고 새끈 해서 보다가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와는 정 반대의 입장을 지닌 분들도 영화판에 수두룩하게 많이 있으니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는 힘들 것 같다

- 영화 저널리스트_장성란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 시네브리프_박병우 기자     


개성 강한 캐릭터와 웃음, 감동, 주제의식의 적절한 균형

- 연합뉴스_조재영 기자     


다만, 올해 <그린 북>에 밀린 <로마>를 비롯해 1977년 <록키>에게 밀린 <택시 드라이버>, 1991년 <늑대와 춤을>에게 밀린 <굿 펠라스>, 1999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게 밀린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3년 <시카고>에게 밀린 <피아니스트>, 2006년 <크래쉬>에게 밀린 <브로크 백 마운틴>에게 쓸데없이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P.S>  영화를 보면 여행 중 글 솜씨가 없는 토니가 돈 셜리에게 아내에게 보낼 편지 문장을 받아 적는 대목에서 추신으로 “애들한테 뽀뽀해줘”라고 넣어도 되냐고 묻자, 돈 셜리가 이렇게 말한다. “그건 쇼스타비치 7번 교향곡 마지막에 소 방울 짤랑거리는 거 같은 거예요” 그러자 토니(관객)가 되묻는다. “아, 그러니까 그거 좋은 거죠?”... “퍼펙트,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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