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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25. 2019

현실같은 영화적 풍경 <커포티>

커포티 (2005)_베넷 밀러 감독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작가 트루먼 커포티


작가 트루먼 커포티를 아시나요? 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잘 몰랐다. 수많은 고전의 저자들과 ‘지대넓얕’ 수준의 수능용 지문 작가들은 더러 알고는 있었지만 트루먼 커포티까지 탐독할만한 독서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가 알고 보니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였다. 내가 알고 있었던 건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가 트루먼 커포티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라는 상식 정도였다.

          

나만 몰랐던 그의 유명세는 이뿐이 아니었다. 듀크대 교수 레이놀즈 프라이스는 그를 일컬어 20세기 미국의 평범한 대중들에게 이름을 날린 단 두 명의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다른 한 명의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재능으로 40대에 이미 백만장자에 오를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스타 작가 트루먼 커포티의 자전적 실화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이루는 중심은 그의 전대미문의 걸작 '인 콜드 블러드'를 집필하던 시절인 1950년대 후반에서 시작된다.


영화 <커포티>는 2005년 베넷 밀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작고한 명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커포티 역을 맡았다. 캐스팅 당시 실제 165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던 왜소증의 트루먼 커포티를 덩치가 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맡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호프먼은 완벽한 연기로 캐스팅 논란을 잠재웠으며, 이 영화로 생애 유일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다.      



커포티는 『풀잎 하프』 『티파니에서 아침을』 『크리스마스의 추억』 등 앨라배마에서 살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주제로 소설을 집필하다가 1959년 11월 아침 『뉴욕 타임스』에 실린 짧은 기사 한 줄에 의해 소설가로서의 그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 짧은 기사는 1959년,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일가족 네 명이 엽총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일면 사건 기사였다.

      

커포티는 이 기사를 읽고 즉시 저널리즘의 취재 방식과 소설적 글쓰기를 혼합한 논픽션 소설을 집필하기로 마음먹고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넬(앵무새 죽이기의 저자)과 함께 문제의 사건 현장인 캔자스로 향한다. 커포티는 사건 현장인 홀컴에 도착해 담당 형사는 물론 피해자의 이웃뿐 아니라 마을의 모든 사람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사건의 범인들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인 페리에게 강력한 인상을 받고 그의 내면적 심리상태를 기반으로 끔찍한 살인사건을 자신만의 소설로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저 대박을 칠 스릴러물의 소재라고 생각했던 일가족 살인사건의 주범이자 인디언의 피를 가진 페리를 만나면서 버려지듯 자라야했던 자신의 과거와 동질성을 느끼게 되고,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 범인들의 사형집행을 늦추고자 변호사를 구해주는 등 예기치 않은 행동으로 번지자 자신의 성공과 범인과의 연민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철저하게 커포티의 성공적 가도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으로 변질되고 만다. 영화는 그가 살인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지만 사실 그에게는 소설의 성공이 가져다 줄 부와 명예를 위해 그들이 빨리 죽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암시한다. 소설의 본질이자 제목인 ‘냉혈한’의 문장적 실체를 그들이 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죽어야만 이 소설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페리의 다급한 전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오랜 시간을 끌었던 페리의 사형집행이 드디어 결정나자 커포티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데, 그가 죽어서 기쁘다는 표현도, 그가 죽어서 슬프다는 표현도 할 수 없는 죄책감에 페리의 연락을 일부러 받지 않는다. 그러자 페리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보를 보내고 친구 넬이 그에게 이 전보를 강제하듯이 읽어준다.       


전보에서 살인자 페리는 그를 이해하며,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좋은 친구였다고 고백한다. 사형집행일 마지막 면회에서 커포티는 말없이 페리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의 의미는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만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참회의 눈물인지, 악어의 눈물인지를. 하지만 그 한 장면의 울음을 토해낸 호프먼의 연기는 난공불락이었던 아카데미를 거머쥐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커포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다룬 작품 <냉혈한>을 쓴 이후 절필했으며, 1984년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물론 그가 <냉혈한>이라는 작품에서 느낀 죄책감때문에 절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 『인 콜드 블러드』는 비평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완벽한 성공을 거두며 미국에서 그를 가장 성공한 작가이자 부자로 이끌었다. 하지만 커포티는 그러한 성공의 다음 주제로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명하고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그 시도는 놀랍게도 곧바로 응징하듯이 사교계에서의 추방으로 이어졌고. 이후 그는 재기에 실패하며 술, 마약을 전전하다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1946년 11월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포착한 커포티


그렇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난 2014년 가을, 문학계에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이 회자되었다.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커포티의 10대 시절 단편들이 발견되면서 미국 문단이 들썩였기 때문이다. 한 출판 편집자와 기자가 커포티의 마지막 유작인 '응답받은 기도'의 나머지 부분을 찾던 중 뉴욕 공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커포티의 미발표 초기 단편들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상상력과 기억으로 이루어진 빛나는 문장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논픽션 소설이라는 창의적 장르로 성공가도를 완성하고, 그 성공적 글쓰기를 타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논픽션의 세계(사교계의 민낯을 밝히는데)로 구현하려다 몰락한 작가. 그가 30년이나 지나 다시금 때 묻지 않은 추억의 문장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이다.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를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평가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그려진 아름답고도 무상한 세계…. 우화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진정으로 훌륭한 우화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과 따스함, 희망을 준다. 커포티는 우리에게 훌륭한 우화란 어떤 것인지, 그 실례를 멋지게 보여 주었다. “     


Philip Seymour Hoffman as Truman Capote in 'Capote'


이 영화에서도 역시 커포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나쯤은 확실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소설가 역시 인간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상상력이 아닌 인간에게서 추출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픽션과 논픽션, 구성과 재구성, 양심과 번뇌. 이 모든 것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요지경 세상. 이것이야말로 현실 속 영화적 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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