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도버로 가는 배 위에서 / 깔레-도버

깔레-도버해협

by 다모토리


영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칼레에서 씨 프랑스에 캠핑카를 싣고 도버로 향하던 날. 날씨는 무척 우중충하다. 바다는 늘 그렇게 우중충했던 느낌이 나의 기억이자 출발점이다. 넓은 바다로 나가자 곧 바람이 거세지고 날이 더욱 찌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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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하던 사람들은 뱃머리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금방 지겨워졌는지 그만 선실로 죄다 들어가 버린다. 이젠 그 넓은 배의 갑판에 나 혼자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바다를 보고 앉아 있다. 그러다가 선미에 따라오던 갈매기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멍하니 잠자는 나를 깨웠다.



어릴 적 강원도 작은 어촌마을 거진에서 화진포로 소풍을 가던 날. 걸어서도 아니고 차도 아닌 통통배를 타고 소풍 길에 올랐다. 도시 아이들은 놀라서 까무러칠 그런 기행들은 시골 어촌 동네에서는 다반사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바라본 바다는 사실 깊은 생각을 감추고 있었다. 꼬마 아이에게 보여주지 못할 부분과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바다는 파도로 가려 숨기고 있었다고 나는 커 가면서 믿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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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는 즐거움이 아니라 전쟁터였고 사람들은 바다를 무서워했다. 이웃의 몇몇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를 둔 녀석들도 있었고 그렇게 바다는 관광지의 산호초 넘실대는 멋진 휴양지가 아니라 늘 두렵고 습하고 침침한 무덤 같은 곳이었다. 나의 바다는 여행이 아니라 생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도버로 가는 내내 바다는 깊게 그리고 진하게 나에게 얘기한다. 구름이 수평선에 맞붙어 가라앉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섬으로 떠나가는 나에게 비로소 얘기한다. 바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살아있다는 게 가끔 몸서리치게 두려울 때가 있다. 살아가는 여러 행위들을 감당하지 못할 때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 이기지 못하면 진다는 그런 강요당한 생각들 때문에 우린 겁쟁이지만 그것을 파도처럼 숨기고 산다.



정말 즐거워서 깔깔대고 흰 이빨을 드러내고 웃어야 할 때도 아이처럼 웃지 못하고 점잖을 떨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서도 늘 있는 척. 그런 척 저런 척하면서 스스로 마스터베이션을 하며 산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왔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대륙이 완전하게 시야에서 사라진 바다 위의 배는 그저 통통배일 뿐이다. 난 수평선을 보면서 한참을 후회한다. 나는 그저 나인데. 왜 나는 늘 내 맘속의 나처럼 살지 못했을까? 왜 바다는 그저 두렵다는 편견만 가지고 살았을까? 인생은 그렇게 답답하고 갑갑하고 도피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왜 좀 더 깔깔대고 미친놈처럼 시원하게 웃어보지 못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바다와 교감한다. 하지만 바다는 말이 없다.



톰톰한도버로 가는 내내 나는 살이 톰톰한 명태가 성어로 자라 동해바다를 거슬러 올라오는 그 바다 밑의 장관을 상상했다. 그건 내가 어릴 적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즐거운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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