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런던 잡생각 & 나오키의 선물 / 런던

런던 (London)

by 다모토리

유럽에 있다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오면 낯설어지는 게 있다. 일단 돈이 달라진다. 영국은 아직 유로가 아니라 파운드를 쓰고 있으며 하늘을 찌르는 물가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15년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 다시 브렉시트(Brexit)로 유럽연합을 탈퇴하려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캠핑여행을 하면서도 영국을 방문하는 것은 그래서 예산을 짜는 일에서부터 복잡해진다. 물가 걱정, 환율 걱정 등 모든 게 초 긴장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런던에 들어가면 이 모든 고민은 다 사라지고 그들의 무리 속에 텀벙하고 빠지는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런던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런던에서 전통적인 신사를 찾기는 이제 조금 힘들어진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신사들이 죄다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파묻혀 있거나. 혹자는 런던을 영국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 생각에 대체로 동의한다.



전체 영국 사람들의 생각과 런던 사람들의 생각부터 생활패턴 등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라크 참전에 관하여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영국 전체의 설문 내용과 런던의 결과는 판이하게 틀린 결과가 나왔다. 영국 전체 국민의 50% 이상이 참전에 찬성하는데 반해 런던의 경우 80%가 넘는 시민이 반대를 했고 거기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전 데모까지 벌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런던은 더 이상 한 국가의 도시라기보다 세계의 도시로 자리 잡은 듯하다. 전 세계의 인종이 있고 전 세계의 음식이 있으며 세계 최고의 귀족이 있고 빈민가가 있다. 전설적인 락 그룹에서부터 거리의 악사까지 모두가 공존한다.


전통적인 신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 아직도 그들을 위한 많은 샵 들이 첼시와 리젠트 스트리트에 건재하고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영국 젊은이들을 위한 또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가는 샵들과, 바, 클럽들로 런던은 넘쳐난다.



이제 영국의 미래는 형식보다는 내용을, 보수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지향하는 영국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 그들은 가죽 구두보다는 스니커즈를 신고 낡은 청바지에 낡은 티셔츠를 입고 가장 최신의 일렉트릭 음악을 들으며 김이 다 빠진 맥주 한 잔을 들고 세계를 논한다. 또 이게 그들에게는 가장 멋있는 트렌드 중의 하나이다. 내가 참석한 어떤 파티에도 어정쩡한 정장을 입은 녀석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만난 어떤 영국 여자애도 화장을 한 이가 없었다. 이제 런던에 더 이상의 껍데기는 없다. 이게 형식을 밥보다 중요하게 얽매어 살아왔던 나라의 결과, 즉 현재이다. 이래서 나는 런던을 좋아한다. 첨언하면, 캠핑카 여행을 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그 리스트에 영국도 꼭 끼워넣길 바란다. 런던의 자유분방한 트렌드와 스코틀랜드의 신비감 그리고 에든버러의 친근함까지 덤으로 느낄 수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파리와 런던. 주마간산이 아니라 오래오래 천천히 걸으면서 느껴야 할 도시들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직접 체험해야 감칠맛이 나지 않을까?


나오키가 선물한 음악 ‘섹시 뮤직’!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세상의 어느 구석이라도 거기 친구가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물론 런던은 타향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거기에 함께 한 기억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이름은‘나오키’ 일본인인 이 친구는 우리나라 극우들이 보면 굉장히 황당해할 만큼 자기 나라를 싫어하는 친구다.



물론 나도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싫긴 하지만 이 친구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심하다. 이 친구, 런던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간단하다. 바로 그 일본이라는 나라가 싫어서다. 우리가 런던에 도착한 첫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나. 일단 우리는 아는 한국 친구 집을 무작정 찾아갔으나 거기서 쫓겨나다 시피하고 찾아간 것이 바로 나오키다.



이 친구는 런던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헤어디자이너 일을 하는 친군데 이 친구 전화하자마자.. 안 오고 뭐하냐고. 난리다. 마침 휴가 간 다른 친구의 집이 비었으니 그곳에서 며칠이라도 지내고 가란다. 한번 통했다 하면 전기가 찌~리릭 올 정도로 시원시원한 성격의 나오키 답게 우리가 오자마자 그는 올가닉 푸드점에서 사 왔을 토마토와 다른 야채들로 바로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오랫동안 캠핑장에서 생활했던 우리는 그저 고맙고 맛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집에다 짐을 풀고 안전한 위치에 캠핑카를 주차하고 시내로 관광을 나온 우리는 런던의 골목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샘의 말대로 영국은 아니 런던은 캠핑카를 타고 돌아다닐 만한 여지가 없는 그런 골목들로 즐비했다. 여기선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다시는 예전의 황당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말이지.


런던을 걷는다. 토튼햄 코트 로드, 옥스퍼드 스트릿, 코벤트 가든,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음식도 먹고-왕케이의 싱가포르 누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저렴한 가격과 양과 맛이다.- 팔리아멘트, 빅벤까지. 때는 12월 31일.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이라 교통은 여기저기 통제되고 불꽃놀이가 12시를 기해 템즈강 위로 시작된다고 교통경찰에게서 들은 우리는 일찌감치 최고의 명당을 찾아 자리를 잡았으나 날씨는 너무 춥고 시간은 너무 일렀다.



저녁 8시. 배는 고프고 날씨는 고픈 배보다 더 추웠다. 우리는 캠핑카에서 싸가지고 간 주먹밥을 눈물, 콧물과 섞어가며 야외벤치에서 대충대충 먹고 난 다음. 트라팔가 광장에서 벌어질 불꽃축제와 굿바이 세리머니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밖에 나와 앉아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다는 것과 10시 이후에 런던 외곽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끊긴다는 소식이었다. 버스가 다니지 않으면 택시를 타면 되었지만, 그럴만한 돈이 우리에겐 없었다.


“ 야, 이제 어떡하지?”


우린 조금씩 갈등이 일기 시작했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버텨 보자고 했으나 이미 여행은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잔고도 그만큼 줄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오키가 소개해 준 따스한 집으로 지금이라도 돌아가자는 제안에... 우린 그냥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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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들른 트라팔가 광장에는 각국의 새해맞이 행사를 중계하기 위한 대형 멀티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놀랍게도 한국의 아리랑 TV가 나오고 있었다. 그 속엔 윤도현 밴드가 등장해 목청껏 소리 높여 자신들의 히트 곡을 부르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이 여기서 보니 왜 그렇게 쟤네들이 촌스러워 보이는지.. 참. 자랑스러우면서도 촌스런 그런 이상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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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손과 발이 얼어붙는 것보다 불꽃놀이에 대한 아쉬움이 더 고통이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나오키가 나눠 주고 간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한 대씩 말아 피면서 영화 노팅힐의 얼빠진 남자 주인공 친구처럼 혓바닥을 소파까지 늘어뜨리고 TV에서 나오는 오래된 뮤직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봤을까 정신이 몽롱해지는 사이 이상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놀란스의 그 유명한 ‘섹시 뮤직’이었다.


‘오 마이 갓! 여기서 놀란스의 뮤직 비디오를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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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아이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폭죽음을 들으며 우리는 그렇게 나오키가 임대해 준 런던 외곽의 작은 판잣집에서 놀란스의 ‘섹시 뮤직’을 들으며 복잡 다난한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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