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에필로그.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캠핑카 여행을 복기하다

by 다모토리

영국에서 다시 깔레로 넘어와 우린 한 동안을 파리 외곽 블로뉴 캠핑장에서 칩거했다. 두 달간의 여행을 정리모드로 전환하며 남은 시간을 죽 때리고 있었다. 캠핑카는 얌전하게 캠핑장에서 집으로의 면모를 완벽하게 과시하고 그 덕에 우리는 파리 근교에서 저렴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끓여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무며 과연 우리가 캠핑카에 실었었던 꿈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자문해본다.



무라카미 류의 자유로운 사고방식, 마리화나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발견한 경계의 버림, 니스 해변에서 주어 온 돌, 바짝 말려져 2달 동안 기어이 살아남은 조그만 멸치들, 스페인에서 당한 3번의 시험대, 추위를 이겨내게 해준 포트 와인,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우리는 지금 또 다시 다른 주제의 캠핑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도대체 캠핑카에 무슨 매력이 있길 래 광고에까지 나타나고 특히 애꿋은(?) 우리까지 그 여행에 끌어들인 것일까.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다지 땅덩어리가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캠핑카 여행은 이제 대세이다. 별 일 없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5시간 30분, 고속철로는 2시간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왜 캠핑카가 필요할까?



그것은 언제든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캠핑카의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멀리 유럽이나 호주, 미국 등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곳에서 그저 도로를 달리기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오랜 기간 동안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여행에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은 자칫 무모한 짓이다. 먼 거리를 가는데 도중에 밥도 먹고 간식도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땅이 넓다고 해서 휴게소가 많다는 법도 없어, 몇 시간을 달려도 음식점 하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잠도 자야하고, 씻기도 해야 하고.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하나, 캠핑카다.


캠핑카는 마음이 맞는 여럿과 떠나는 편리함도 제공해 주지만, 좀 더 자연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적절한 방안이다.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말야. 실제로 캠핑카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언제고 밥을 먹을 수 있다. 그것도 하루 세끼 꽉 채워서. 물론 원한다면 하루 다섯 끼를 먹든 누구 하나 상관 않을 테고, 귀찮으면 사먹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시장이나 할인마트에서 직접 현지 요리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는 음식은, 진짜 여행의 묘미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다. 또 하나,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새로운 '연인'이 아니라 '인연'일 확률이 높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여행의 매력 중 하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기차 여행과는 달리 캠핑카 여행은 캠핑장이라는 공동 장소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많게 마련이다.


혼자 하는 여행에 캠핑카를 이용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과연 어떤 경우에 캠핑카 여행이 더 매력적일 수 있을까. 가족 여행이라면 캠핑카 여행은 강추! 할만하다. 캠핑카 여행처럼 가족이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여행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이동 중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위험도 없고, 여행하면서 맞닥드릴 많은 일들을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에서의 교육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오순도순 여행을 하며 여행 추억을 담아 온다면 이보다 나은 여행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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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친구나 연인끼리 떠나는 여행에도 캠핑카는 매력만점이다. 제아무리 4~6인승 캠핑카라 할지라도 2종 보통 면허만 있으면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는 괜찮은 여행 방법이다. 그리고 연인. 사실 연인들에게 캠핑카 여행처럼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이 없겠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24시간 함께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 그러나 상대방을 알아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친구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캠핑카는 시시껄렁한 '수단으로서의' 탈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저 이동수단으로서만 캠핑카를 택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시내 도로가 좁은 이탈리아의 주요 관광지에서는 캠핑카 등 대형 차량의 도심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할 수 없이 외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도보나 버스 등을 이용해 도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속도 면에서도 짐을 싣고 사람도 여럿 태우기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120km/h 정도로 달리면 더 이상 빨리 달리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어디든지 빨리 가고 싶다면 차라리 떼제베나 이체 등 기차 여행을 권한다. 캠핑카는 게으른 사람을 싫어한다. 여행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든 말든 그것은 자유겠지만, 캠핑카 여행의 경우 게으름을 만끽하다간 도로 위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 차 안의 전등이나 전기기구를 위해 배터리 체크를 해야 하고 가스레인지와 보일러용 가스의 남은 양을 확인하고, 화장실 오수도 버려야 한다. 실내 청소야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자유겠지만, 만약 이상한(?) 냄새라도 배는 날이면 차를 반납할 때 심심찮은 원상 회복료를 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캠핑카는 '움직이는 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유럽에서 캠핑 여행은 이미 보편적인 여행 방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만큼 시설도 충분하고 불편함이 없다. 따라서 그곳에 걸 맞는 질서를 지켜줄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캠핑카는 캠핑장으로'라는 식이다. 겨울에야 현지 사람들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널리 용인되지만, 여름 성수기라면 잠은 반드시 캠핑장에 들어가서 자야 한다. 괜히 도로 위에 세워두고 잠을 자다가는 언제 '딱지'가 붙을지 모른다.



자, 캠핑카를 빌렸다고 치자. 도대체 어디를 갈 것인가? 캠핑카 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들이 있다. 먼저 캠핑카 여행을 추천하는 국가들.


프랑스 - 가격이나 시설, 여행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거의 모든 면에서 단연 프랑스는 캠핑 여행의 최적지로 꼽힌다. 대부분의 캠핑장이 좋은 시설을 유지관리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친절함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그러나 결코 오버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다.



독일 - 좀 딱딱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소 낙후한 캠핑장들도 있기는 하지만 안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가족끼리 조촐하게 캠핑 여행을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스위스 - 길을 가다 아무 데나 차를 세워도 경치만큼은 스위스를 따라갈 나라가 없다. 많은 캠핑장들이 알프스 주위에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이용료가 높은 것이 흠인데, 그래도 유스호스텔이나 호텔보다는 현저히 저렴하니 캠핑장의 판정승. 시설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포르투갈 - 개인적으로 가장 친밀감이 가는 곳이다. 여러 유럽 나라들의 캠핑장들을 방문했는데, 포르투갈의 경우 저렴한 데다 시설도 괜찮은 편이며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스페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큰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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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북유럽으로 분류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스칸디나비아 3국이나 덴마크에서와 비슷한 북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캠핑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그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자유스러움'이다. 아예 캠핑장에

'장기주차'하며 유유자적하는 이들을 적잖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여행은 몰라도 캠핑카 여행에 있어 다소 추천하기 힘든 국가들도 있다. 좀도둑이 많아서든 도로가 좁아서든. 그렇다고 그곳으로 차를 몰아가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국경을 넘기 전 다시 한번 쉼 호흡을 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 -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번 여행 중 일어난 사고 중 95%는 스페인에서였다. 남정네 둘이 자고 있는데 캠핑카 문을 몰래 따고 들어와 노트북과 카메라 등을 슬쩍 해간 간 큰 도둑에서부터 비리경찰, 끝까지 우리를 따라와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도망간 놈도 스페인에서였다. 이런 것들을 감내할 수 있다면, 스페인의 깊은 시골을 꼭 방문해보길. 스페인만큼 푹 삭힌 홍어 같은 유럽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다.


이탈리아 - 운전하기 가장 곤란한 나라다. 일단 이탈리아 외의 자동자 넘버를 단 차량은 조심해야 하는데, 굼뜨기만 한 캠핑카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탈리아 번호판 코드인 'I'를 달고 있지 않으면 결코 봐주는 법이 없다. 고속도로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가면 도로 표지판을 보고도 길을 찾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좀도둑도 좀 된다.



체코 - 아직 캠핑 문화가 우리나라처럼 보편화되지 않아서인지 체코 차량보다는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에서 오는 캠핑카들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만 좀도둑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아직 캠핑 시설이 전국 곳곳에 갖춰지지는 않았다.


영국 - 일단 자동차는 도로 왼쪽 길로 다닌다. 이런 도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라면 간혹 역 주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가능성이 높다. 캠핑장 이용료가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물가 역시 높은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캠핑카 여행은 영국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저렴한 편이기는 하다.


자, 이제 떠나자. 그것이 기차 여행이든 조촐한 텐트 하나 갖고 승용차 빌려 하는 여행이든, 아니면 캠핑카를 타고 가는 여행이든, 여행은 결국 하나. 하지만 가장 자유롭고 독립적이면서도 일행과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백미는 역시 캠핑카로 떠나는 여행이다. 캠핑카 여행은 시즌이 따로 없다. 미국이나 호주와는 달리 짧은 시간에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유럽으로의 캠핑카 여행. 백문이 불여일행이랬다! 자! 이제 그 매력 속으로 한번 빠져 들어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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