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철원 말고개_슬픈 리벤지의 주인공 ‘왜장’

CHAPTER 1_ 추억을 달리는 시내버스 (서울-춘천)

by 다모토리


철원군 마현리 5번 국도를 타고 산양리로 넘어가다 보면 철원군과 화천군 경계에 있는 고개를 하나 넘게 된다. 해발 690m의 말고개다. 말이라는 단어는 보통 큰 고개, 꼭대기를 의미한다. 이곳 말고개 역시 고개가 험준해 말도 힘들어 한다는데서 붙여진 지명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지금의 말고개는 포장도 잘 되어있고 경사가 완만해서 그런지, 고개가 높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이런 말고개는 전국 각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명 중 하나다.


물론 우리 민족은 그 흔한 지명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입혀야 직성이 풀린다. 이 말고개에도 역사적 픽션이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아무개 왜장이 고개 부근의 천불암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말을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왜장은 화가 나 애마를 죽이고 그 피를 천불암에 뿌렸다. 그 후 결과는 뻔하다. 왜장과 군졸들이 말고개를 넘다가 벌을 받아 죄다 골짜기에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다.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 중에 임진왜란만큼 전 국토가 초토화된 참변은 드물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지명 중 험준한 곳엔 반드시 ‘왜장’에 대한 리벤지 스토리텔링이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왜장이란 단어의 상징성이다.



삼국사기에 전하길, 일본은 무려 670년에 당나라에 간 사신이 “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라가 해 뜨는 곳에 가까워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왜(倭)라는 명칭을 고수했다. 왜는 복종심이 강하고, 체구가 작으며, 다리가 구부러진 사람을 뜻했으니,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일본인에 대한 비하의 의도를 갖고 '왜'라는 명칭을 고수했으리라. 그런 일본에게 전쟁으로 참혹하게 당했으니 그 원한이 쉽게 풀릴리 없다. 전 국토 천지사방에서 왜장이 떨어져 죽고, 폭살 맞아 죽고, 심지어 뭘 잘못 먹어서 배탈로 죽기까지 한다. 그런데 2017년 울산 중구청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도심공원에 가토 기요마사 동상을 세운다고 발표해 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 모든 신문들이 앞다투어 비난 기사를 썼는데 죄다 첫 단어가 ‘왜장’으로 시작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버스를 타고 이 말고개를 넘던 바로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