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산양리터미널_사방거리의추억

CHAPTER 1_ 추억을 달리는 시내버스 (서울-춘천)

by 다모토리


민통선을 뚫고 산양리 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세상에 오지도 이런 깡촌 오지가 없다. 화천으로 넘어가는 7번 버스는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아 넋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을이래야 길쭉한 신작로 하나뿐이라 어디 마실 삼아 돌아다닐 곳도 없다. 딱 마을에 갇혔다.



다행히 터미널에 7번 버스를 기다리시는 어르신이 계셔서 말동무를 해주셨는데 41년생 우리 아버지랑 동갑이셨다. 조금 말을 터 드리자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지난했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원래 여가 사방거리라고 했지. 전쟁 끝나고 수복된 이후에 여기서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산양리에 자리를 잡았어. 그래서 그 사람들하고 전국에서 온 사람들까지 모여 산다고 해서 사방거리라고 불렀지. 그때는 여기에 장이 서면 사람들로 가득 찼어. 화천의 최고 꼬댕이 마을 발골서부터 모인 장날 상인들이 여기에서 다음장으로 산지사방 흩어진다고 해서 사방거리라는 말도 있었지”



어르신은 이 동네 마현리에서 나셔서 젊은 시절에는 파로호 양식으로 꽤나 큰돈을 벌으셨다고 한다. 그 돈을 밑천으로 서울로 올라가 오토바이 헬멧을 만들어 일본까지 수출하는 사장님이 되었는데, 인생 딱 한 번 사기를 맞아 집도 절도 다 털리고 낙향하셨다고 한다.



“기냥 팍 한강에 코 박고 죽을라 그랬지. 근데 사람 목숨이란 게 그렇게 쉽게 정리가 안돼. 가족들 생각에 차마 죽지는 못하고, 다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온 거야. 요즘 말로 하면 귀농이지. 평화의 댐인가 뭔가 생기고 이 동네 평야는 다 잠겼어. 이젠 파로호 고기잡이도 예전 같지 않고 해서 요즘은 민통선 안에서 재래 양봉을 하는데 노인네 둘 정도는 그냥저냥 먹고는 살아.”

파로호는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 1개 연대가 중공군 3만여 명을 수장시켜 얻은 이름이다. 41년생 김 씨 성의 어르신은 산양리에선 보이지도 않는 파로호를 떠올리며 푸념 같은 추억을 되새김하고 있었다.



“파로호 물고기가 맛있는 이유가 다 있어. 전쟁 때 그놈의 중공군 놈들이 3만이나 물고기 밥이 되어줬는데 지들이 안 맛있고 배기겠냐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신작로 저편 끝에서 너무나 한가롭게 들어오는 화천행 7번 버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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