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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y 01. 2016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보고서 <컨테이젼,2011>

<컨테이젼, 2011 _ 스티븐 소더버그>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기네스 팰트로)가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하자 그녀의 남편(맷 데이먼)이 그 원인을 알기도 전에 아들마저 죽음을 당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같은 증상으로 사망한다. 일상생활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 전염은 그 수가 한 명에서 네 명, 네 명에서 열여섯 명,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

한편,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경험이 뛰어난 박사(케이트 윈슬렛)를 감염 현장으로 급파하고 세계 보건기구의 오란테스 박사(마리옹 꼬띠아르)는 최초 발병경로를 조사한다. 이 가운데 진실이 은폐됐다고 주장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주드로)가 촉발한 음모론의 공포는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원인불명의 전염만큼이나 빠르게 세계로 퍼져가는데…



 영화는 신종 바이러스의 감염을 보여주는 스릴러물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면엔 '우리 사회의 암울하고 불안한 현실'  자체가 녹아 들어가 있다. 평소 아무런 제약 없이 무한한 가능성을 무기로 무자비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바라볼  인간의 만용과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 인간들은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그저 사회망에 단순하게 접속되어 있을 따름이다. 인간은 개인이 먹을 식량을 재배할 능력도 없고, 추위를 이겨낼    제대로 만들 능력도 없으며, 외부의 적으로부터 타인은 커녕 자기 자신을 지켜낼 힘도 없다. 그렇게 약한 개개인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진 '사회'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영화에서 '바이러스'로 표현된 약간의 균열은 너무도 무참하게 전 세계적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군중들의 폭동을 야기한다. 이웃집 사람의 집에 강도가 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빈집을 뒤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라는 방어막을 도구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그에 의지하고 의존하는 자주성을 잃어버린 개개인이 되어 버렸으며, 그나마 사라진다면 우리 인간들은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사악한 본성이 여과 없이 분출되리라는 사실에 감독은 주목하고 있다.
                             


영화 제목이 '컨테이젼' 것은... 그러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무엇엔가 접촉하는 행위 때문에 인류는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되며, 무엇인가를 접촉하지 않고 살아갈  없는 인간들에게 이는 치명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중에서 로렌스 피시번이 아이에게 묻는다.

"악수의 유래가 뭔지 아니?"

 한마디가 바로  영화의 키워드를 내포하고 있다. 나의 오른손에는 무기를 들지 않았다. 인류는 그렇게 낯선 이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관계설정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관계의 중심은 '컨테이젼'이다. 바로 접촉인 것이다.  접촉이 살인 무기로 변하는 순간, 인류는 살아있어도 죽은 것임에 다름이 아니며  사회는 관계망의 커뮤니티에 정체성을 상실한 그저 허울 없는 개체들일 뿐인 셈인 것이다.                                         


바이러스라는 단순한 개념 속에 사회망과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없는 불안감의 증폭과 왜곡까지 그리고 서비스로  영웅주의도 놓치지 않는 감독의 배려가 곳곳에서 보이는 작품이다. 기네스 펠트로와 케이트 윈슬렛이  데이먼과 만난 신선한 충격도 영화의 잔잔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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