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첩첩산중에서 망망대해까지 (춘천-속초)
기린면 현리에서 농어촌버스 1172번을 타고 인제로 향한다. 홍천에서 춘천 지맥 아래를 흐르는 내촌천을 따라온 도로는 이제는 현리에서 다시 북상해 소양강 내린천을 활기차게 거슬러 올라간다.
983m의 매봉산 우측으로 흐르는 내린천을 따라 올라가는 아름다운 길은 서리라는 마을이다. 재미난 것은 이 도로가 먼산 봉우리부터 야트막한 언덕까지 제법 다양한 고갯길을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서리에서 남면의 정자리로 넘어가는 머구너미재는 고개가 길어 뭐라든 먹고 나서야 넘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험한 고갯길인데 반해, 고개의 경사가 완만해 오가는 사람들이 "골은 깊어도 오르기엔 이곳이 최고로 편하다"라며 콧노래를 불렀다는 소릿고개가 이어져 있다. 이뿐 아니라 1930년 무렵에 3백만 원 상당의 산삼이 이기일이란 사람의 집터에서 발견된 이후 ‘김부터’라는 지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길의 진정한 역사는 따로 있다. 내린천과 양양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오마치재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 인제와 현리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중공군의 5월 공세에 한국군 3군단이 대패하여 무려 하진부리까지 밀린 말 그대로 한국 역사 3대 패전(칠천량 해전, 쌍령 전투, 현리 전투)의 뼈아픈 현장으로 낙인찍힌 곳이기도 하다.
이젠 부끄러운 역사의 기억조차 가물해진 아름다운 도로를 지나며 생각한다. 임진왜란은 명나라에, 동학농민운동 때는 청나라를 불러 자국의 농민을 진압한 이들은 누구였던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아군들을 죽게 만들고 미군에게 지휘권을 넘겨주게 된 결정적 계기를 만든 이들 또한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가.
내린천은 지나간 역사 위로 말없이 흐른다. 누구에겐 아름다운 개천으로 보이겠지만, 어떤 이에겐 안타까운 핏빛의 도랑으로 보일 수도 있음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버스오딧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