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첩첩산중에서 망망대해까지 (춘천-속초)
원통에서 진부령을 넘어가는 시내버스는 없다. 일단 진부령 정상까지 올라간 후 버스를 갈아타고 고성으로 내려가야 한다. 원통을 출발한 버스는 설악휴게소에서 일차 한계령과 분리되어 진부령과 미시령 방향으로 올라간다. 버스 오른쪽 차창으로 군계교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아름다운 풍경이 반긴다. 단풍이 드는 설악산 골짜기의 진풍경이 펼쳐지는 드문 길이다.
인제 북천은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토종 깔딱메기(미유기)가 많은 일급수 청정하천으로 설악 생수가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청정 북천이 인북천과 만나면 흙탕물이 되어 내린천을 오염시킨지 30년이 넘었다. 인제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곧이어 십이선녀탕을 지나자 이름도 범상치 않은 아니오니 골짜기가 나온다. 한번 들어가면 경치가 좋아서 다시 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만큼 길이 험하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백담사 입구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렸다. 버스는 매바위 인공폭포 삼거리에서 속초로 빠지는 미시령과 이별하고 진부령 정상까지 가야 하는 나를 홀로 태우고 천천히 산능성이를 오른다.
버스에선 보이지 않지만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는 오랜 보부상 옛길이 있다. 새이령, 샛령이라 불리는 대간령으로 미시령이나 진부령 길이 확장되기 전까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한 교역로였다. 과거 미시령과 진부령이 산세가 험해 사람만 겨우 다니던 반면에 대간령은 경사가 완만하고 산세가 부드러워 영동의 소금과 수산물을 실은 우마차가 다닐 만큼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당시 보부상들이 장을 열어 물물교환을 하던 마장터 흔적이 고개 너머에 남아있다.
찻길이 생기자 옛길은 생명력을 잃었다. 먹고살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 영동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던 대간령. 긴 세월 속에 철저하게 잊히고 묻힌 채 점선 하나 지도에 올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누구라도 진부령 옛 고개를 넘어갈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은 그 당시 북적이던 풍경을 잠시 상상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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