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첩첩산중에서 망망대해까지 (춘천-속초)
어릴 적 우리 마을엔 담이 없었다. 그 길의 절정은 거진 4리에 있던 수협에서 거성초교까지 올라가는 언덕길이었다. 이른 아침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양쪽에 늘어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느 집의 밥숟가락 개수를 알 정도였다. 심지어 등굣길에 친구 엄마에게 잡혀 아침밥을 한번 더 먹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동네가 한 집안처럼 느껴졌고, 모두가 가족이었다. 그 하이라이트는 여름날 언덕길에서 펼쳐지는 저녁 만찬이었다.
긴 여름 해가 떨어질 때쯤 길 옆에 늘어선 집들에서는 줄지어 멍석과 밥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기 집 앞에 밥상 하나를 놓고 그렇게 저녁거리가 차려지면, 그 밥상이 줄줄이 붙어 매일 저녁 기다란 마을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아버지들은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뷔페를 즐기곤 했다. 가끔씩 언덕길 중간에 있던 국수 만드는 강릉집에서 특별히 흑백텔레비전을 마당으로 꺼내 마을 사람 모두가 김일 레슬링을 함께 시청하는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세상이 늘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거진은 명태잡이 호황으로 개도 만원짜릴 물고 다닐 정도로 돈이 넘쳤고, 전국에서 외지인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하나둘 집 앞에 담을 치기 시작했고, 이후 등굣길 만찬은 자연스레 없어지게 되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란 믿음이 종교의 교리처럼 된 세상. 우린 누가 먼저 담을 쳤는가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가난해서 외려 행복했던 시절이 짠한 추억으로 남아있음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버스오딧세이